<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복씨네 가족 구성원은 제각기 다른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각자의 결핍은 질병이 되었고, 돈도 많고 초능력도 있었던 그들은 초능력도 잃고, 끝없는 부 또한 무용지물이 되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가 된 지 오래다. 무조건 돈만 많으면 행복하고, 못 이룰 게 없고, 안녕한 일상을 평생 영위하다 갈 수 있다는 믿음은 세상을 지배한다.
그러나 이 믿음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실제로 한 통계에서는, 부의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을 도달하는 순간 오히려 행복의 그래프가 하강곡선을 그린다고 이야기한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확률’이 더 높을 수야 있겠지만, 이는 정말 그저 확률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돈이 전부라 여기며 충분한 부를 갖지 못한 자신을 불행하다고 타박한다.
그런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허황한 세계 속 ‘겨우’ 경영권 다툼 때문에 싸우는 재벌들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어차피’ 이루어질 사랑 때문에 죽을 둥 살 둥 하는 잘난 부자들만 가득한 뻔한 이야기들 속에서 흔치 않게도, 마음의 병을 앓고 살아가는 부자들을 조명한다. 그들이 가진 불행은 ‘우리’와도 꽤나 밀접하고 가까운, 시덥지 않은 불행들이다.
돈으로도 메꿔지지 않는 결핍이 있다. 아니, 어쩌면 어떠한 결핍도 돈으로 메꿔질 수 없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분명 무언가가 부족한데, 채워지지 않았는데, 그게 무언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소비를 하고 뭔가를 산다. 사람을 찾는다. 입에 무언가를 쑤셔넣고, 술을 끝없이 마시고, 내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끝없이 헤매인다.
나 역시 메워지지 않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중독적인 소비를 자행했던 시기가 있다. 사실 그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다. 저걸 가진 상태의 나는 갖지 않은 나보다 더 화려하고, 예쁘고, 당당해지겠지 - 라는 근거없는 부풀린 착각에 빠져서 물건을 사고, 또 샀다. 그리고, 그렇게나 간절했던 물건을 산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 허기는 이걸 갖는다고 채워지는 게 아니었다는 걸. 남에게 잘 보이는 것, 타인의 인정 같은 것들은 물건을 사고 나를 치장함으로서 따라오는 게 아니었고, 내가 그리도 원했던 건 채워지지 않은 내 존재에 대한 ‘인정’ 이었다.
그러나 이 인정조차도,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영영 채워지지 않는 독 같은 것이었다. 존재하는 않는 허황된 타자를 비교 대상으로 정하고, 그만큼 괜찮지 않은 스스로를 타박하고 끊임없이 비교하며 그렇게 되어야만 스스로를 인정하겠다 는 원칙을 세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던 것.
지금의 나는 물질적인 것들에 덜 집착하게 됐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했던 과거의 나는 조금 희미해졌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갖고 싶은 것들이 종종 생기긴 하지만, 이 물건의 존재가 나를 더 충만하게 해줄 거란 기대는 없다. 가짜 욕심인 것도 잘 알고 있다.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채워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지금의 내가 어떤 상태이며,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를 잘 알아주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과 친해지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꾸준히 궁금해해주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그저 ‘나’로서 존재함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