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힘든 이들에게는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계에 분명히 존재하며, 그 아픔을 힘껏 이겨낸 사람들이 분명 생동하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 우울감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혼자’ 라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신병이라는 소재를 전면적으로 다루어낸 최초의 국내 시리즈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새로울 뿐만 아니라 특별하다.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유형의 정신 질환을 다루는 에피소드별 플롯과 주인공이자 정신병동 간호사인 ‘다은’의 이야기를 다루는 메인 플롯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흔하면서도 익숙한 질환을 다룬 ‘다은’의 이야기에 가장 흥미가 갔다.
타인의 감정을 잘 흡수하는 성향을 타고난 다은은 아끼던 환자가 자살하자, 급성 우울증에 빠지고 만다. 우울감은 사람을 한없이 끌어내리고, 의지력을 상실시킨다. 우울증에 걸리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가까워진다. 다은이 며칠 동안 침대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수렁 속에 빠져버린 것으로 그녀의 상태를 보여주는 연출은 소름끼치게 정확했다. 우울증은 의지로 이겨내는 거다, 는 말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죄책감으로 힘들어하던 다은은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우울이란 감정을 마침내 인정하고 나아가게 되지만, 우울증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워지지는 않는다. 어떤 병이든 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상태에 다다르는 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가능한 것처럼, 우울증도 씻은 듯이 말끔히 낫는 병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의미가 크다.
우울이란 감정은 완전히 벗어나거나 완쾌될 수 있는 감정도 아니거니와, 기분이란 건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사실도 놓치지 않는다. 퇴원한 뒤에도 다은은 매일 아침 출근길에 칭찬일기를 쓰고, 새벽마다 조깅을 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우울증을 이미 겪었거나, 겪는 중이거나, 혹은 이후에 겪게 될 수도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위로를 준다. 컨텐츠의 가장 큰 힘은 바로 여기서 온다. ‘혼자가 아니다’ 는 감각을 꾸준히 안겨주는 것. 다루는 이야기의 본질이 무엇이건 간에, 이야기 속 캐릭터들은 분명 또 다른 어느 세계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그 이야기를 소비하는 우리들은 이야기 속 캐릭터들에 공감하고, 이입하고, 그들을 언젠가는 친구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다.
다은 외에도 수많은 ‘아픈 사람들’이 끝없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그래서 특별하다.
다양한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마냥 틀렸다고, 너는 고쳐져야 하는 상태라고 외치지도 않는다. 따뜻하지만 버석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있는 그대로의 그들에게 비장하거나 슬프거나 위기감 가득한 시선을 보내기는 커녕, 그저 지나가는 거리의 타자를 바라보는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흘려보낸다.
연민을 담지 않은 건조한 시선이 우리에게 필요하진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타자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아프다, 불편하다, 짜증난다고 규정하고 제멋대로 그들의 이름을 지어 부르곤 한다.
그러나 그들이 원한 적 없었던 그 이름들은 그들을 그 이름 속에 가두어 버리고 만다.
그러니 때론 무관심한 시선을 보내자.
어떠한 감정이 담긴, 불편한 시선이 아닌 그저 그대로의 담백하고 별 것 없다는 듯한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