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바비” 의 세계 속 바비들, 그러니까 여자들은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똑같다. 잘 웃고, 늘 완벽한 외양을 유지하는 것에 무척이나 부지런하고, 순종적이고, 고집을 피우지 않고, 주관이 없고, 생각이 없다.
바비들만 가득한 세계는 무척이나 평화롭지만, 바비들의 세계는 한번도 침범된 적 없는 우물과도 같은 세계이다. 때문에 바깥 세상을 경험하고 난 뒤의 바비, 이 세계가 어딘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바비는 배척당하고, 비정상인 것으로 규명 당한다.
바비가 또다른 바비들에게 던진 작은 질문은, 아주 작은 파동으로, 큰 파장으로 이어져 마침내 바비들의 세계를 바꾸어내고 만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아? 마치 짜여진 각본과 같은 이 세계에서 우리는 늘 같은 역할만 해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지?
세상이 여성에게 갖는 기대란, 고정관념이란 마치 바비 세계의 짜여진 각본과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서 질문을 던지는 것 뿐인데,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는 비정상이라고 쉽게 규명하곤 한다.
달라진 바비 세계 속 바비들은 다양한 외양과 개성을 보이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다름은 틀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음을 알고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그저 고착화된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난받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 역시 사회에 들어온 후에서야 더욱 통감하게 되었다.
개성을 차리되 달라서는 안돼. 그 간극을 넘어서는 순간 너는 틀린 사람이 될 테니까. 아주 교묘하고 미묘한 선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규정한다. 때론 ‘어떠한’ 발언들로 우린 쉽게 매도되고, 악마화되고, 성별 갈등을 조장하는 부류로 구분지어진다.
그렇게 내가 의도하지 조차 않았던 수많은 이름들이 나도 모르게 나의 존재에 덧붙여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 나는 내 다름을 드러내 보일 만큼의 용기조차 없는 비겁한 인간이라서 여전히 스스로를 끊임없이 정제하고 두려워한다. 이 말을 하면 누군가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이런 외양을 하고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면 나는 과연 ‘여자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속된 두려움들.
나 역시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나도 모르게 시선을 보내곤 하지만, 그 시선에 어떠한 의도도 섞이지 않기를, 그리고 마침내 별다를 것 없는 무관심한 시선을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노력할 것이다. 나의 평범함이, 나의 두려움이, 어느 샌가 무례함이 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