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 영화내용과상관없는 관람 후기
여름 초입에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하고 싶으면 한번 보라는 지인의 추천으로 오랜만에 혼영을 하기로 한다. 평일 저녁, 종로의 오래된 극장 안에는 관객 대여섯 명만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소리를 추적하는 우주 괴생명체를 피해 안전한 은신처를 찾아 사투를 벌이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한창 몰입한 영화 중반쯤, 숨소리 조차 들킬까 봐 입을 막으며 숨어있는 주인공을 향해 에어리언이 서서히 접근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오도독...
영화 속 고요한 정막을 찢고 극장 뒤편에서 난데없이 과자 깨물어 먹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중량감 있는 입체적인 소리로 추정컨대 맛동산이나 땅콩강정 같은 묵직한 과자이다)
아~ 뭐지 ㅠㅠ 이 절묘한 타이밍은....
뒤를 돌아보니 웬 아저씨가 극장 내 음식 섭취를 금지한 코로나 방역 지침에는 아랑곳없이 바스락 봉지 소리를 내가며 리얼 사운드로 AMSR 중이시다
영화 주인공들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고군분투 중이고, 지켜보는 관객들마저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마저도 조심하고 있는데, 정말 너무 하시네, 소리에 무감각한 걸까 아니면 주위에 무신경한 건가?
이어지는 과자 AMSR은 오도독 외에도 와그작, 바사삭, 쩝쩝 까지 다채롭기도 하다.
이 정도면 가히 극장의 서라운드 돌비 시스템급이다.
특히 청각장애우인 주인공 딸이 외부와 차단되어 모든 음향이 멈추는 시퀀스에서 예의 '오도독' 사운드는 적막한 극장 안을 깊고 넓게 공명하니 시기적절한 그 센스 때문에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귀신 아니, 우주 괴물은 뭐하나~ 여기 소리 내는 사람 따로 있는데 안 잡아가고...
평소 같으면 남이 무얼 먹든 상관하지 않을 바지만, 공교롭게도 영화 제목이 콰이어트 플레이스인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진짜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 극장 안이어야 할 텐데 현재 상황과 부조화하는 에티켓이 살짝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는 극장 말고도 마땅히 조용해야 할 장소에서 여러 가지 소음에 방해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정숙'이라는 표지가 무색한 도서관, 통화 자제를 당부하는 지하철 객실에서도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청각적 거리두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은 너무 지나친 걸까?
이제 쓸데없는 현실 걱정은 잊어버리고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나저나 지구의 평화를 깨뜨리는 진짜 생명체는 어쩌면 컴컴한 극장 한켠에서 과자를 먹으며
태연자약하게 앉아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와 상관없는 쿠키 영상
자꾸 과자 소리가 거슬려 뒤돌아보았다가 그 아저씨와 눈빛이 마주쳤다.
순간 싸한 기운이... (기분 나쁘다고 뒷자리로 다가와 혹시 해코지할 것만 같은...)
덕분에 남은 시간 동안 더욱 등골이 서늘하고 심장이 쫄깃했던 한 편의 리얼 스릴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