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소 한 마리가 살고 있다. 그런데 이놈의 소, 송아지 적에는 고분고분하더니만 이제는 하라는 일은 안 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고집 센 벽창우가 되어 버렸다.
아들의 고등학교 생활은 작년 코로나와 함께 시작되었다. 비대면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질수록 제 방에 처박혀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이상의 시나 니체 등속을 탐독하는 것 같았다. 질풍노도의 시기, 불균질 한 감정이 정리되고 자의식이 성립하는 것이리라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행복하지 않은것 같다며 더이상 학원을 다니지 않겠노라며 일종의 사보타주를 선언했다.그날 이후 라이트노벨, 유튜브, 게임 등등... 아들은 다양한 취미를 꾸려가기 시작했다. 이 녀석 도대체 니체의 아모르파티를 어떻게 받아들인 거지?
일득 일실. 자연히 공부는 등한시되고 급기야 자기 반 축구부원보다 못한 성적표를 가져오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말로 타일러도 우이독경이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번 기말고사는 애 엄마가 다 큰 고2짜리를 옆에 끼고 공부 감시를 한다.
그러나 소를 물가까지 끌고 와도 물은 억지로 먹일 수 없는 법. 한 시간도 안되어 다시 게임에 빠진 아들에게 참다못한 아내가 일장 훈시를 한다.
"하기 싫은 것도 참을 줄 알아야지" 라며 제일 맛있는 것은 맨 나중에 먹으라는 마시맬로 이야기를 꺼낸다. 판에 박힌 이 마시멜로론에 대해 아들은 "인생은 아이스크림"론으로 응수한다. 지금 친구와 함께 롤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나중에 아이스크림처럼 다 녹아버리면 그땐 무슨 소용이냐라는 것이다.
같은 가족이지만 세대 간 행복관이 너무 다르다. 목적론적 인생론이 정형화된 사회를 살아온 엄마 아빠는 불확실하더라도 미래의 큰 보상에 의미를 두는 반면, 아들에게는 라윗 나우, 현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감정과 경험만이 행복이다.
그러니 기성세대의 부모에게는 아들이 말하는 부조리한 한국 사회와 대학공부의 무용성, 그리고 인생 의미에 대한 회의는 부적응자의 전형적인 자기 합리화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둘의 논쟁을 옆에서 지켜보다 참다못한 나는 " 하기 싫어도 그냥 하는 거지, 공부에 무슨 의미가 있어? 그리고 학생이 무슨 행복 타령이야"라고 뺵 소리를 질러 아내의 편을 들어주었다. 순간 아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열패감이 번지더니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 녀석 누굴 닮아서 저런 거야" 답답함을 표시 하자 아내는 " 닮긴 누굴 닮아. 직장 그만두고 배낭여행 다니고 싶다고 타령하는 사람이 누군데..." 아마 그녀가 보기에는 달려야 할 레일을 일탈하고 헛된 꿈을 좇는 철없는 부나방으로 부자가 동일한 모양이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퇴사를 고민하는 젊은 직장인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과감히 떠나라는 어느 심리학 교수의 조언을 보며 " 저 사람, 자기 자식이라도 저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그만두고 여행갔다와서는 평생 뭐할건데" 라며 쿨하면 다 멋있는 줄 아는 어른의 무책임한 코멘트라고 비난한 아내다.
"요즘 시대에 그렇게 말하면 꼰대야"라고 농담을 건넸지만 막상 우리 아들이 일시적 쾌락의 방편으로 현재를 외면하고 미래를 방기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과연 아들이 추구하는 행복이 진정 지속가능한 행복일지도 모르겠고, "힘들면 참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심리학 교수와 "그래도 참아야지"라고 말하는 아내, 과연 누구의 판단이 옳은지도 나도 모르겠다.
곰곰 반추해보니 나 또한 나이를 먹을수록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의문이 드는건 사실이다. 예전에는 인생은 마시멜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살아보니 인생은 아이스크림이더라. '인내는 쓰고 쓰고 열매는 달다' 에서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 쪽으로 점점 기우는 중이다.하지만 여전히 인생의 정답이 무엇인지 자신은 없다.자유와 책임이 양립하는 냉엄한 현실 세계에서 결코 조화될 수 없는 양자택일은 아직도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풀 죽은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약한 어른이 자식에게만 엄격한 이중잣대를 들이댄 것만 같아 속으로 조용히 속삭여 본다. ' 미안해 아들, 아빠도 네 생각이 맞는 것 같긴 해'
그래 지금 공부 좀 못하면 어떠랴
장래를 걱정한답시고 아이를 섣불리 기죽이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보다는 자기 나름의 고민을 시작한 아들을 믿어보기로 한다. 늦더라도 천천히, 우보천리라지 않는가
결국 아들이 학교나 공부를 억압기제로 여기는 것처럼 나 또한 여전히 일과 사람관계를 인생의 해방기제로 여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 한가지니까....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아빠 소도 얼룩소, 아빠~ 닮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