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들면 이토록 활짝 열려 있는데 하늘길이 닫힌 지 벌써 2년이라니... 그렇다면 속절없이 허공만 바라볼 게 아니라 땅길을 찾아 떠나기로 하고 아침 일찍 여권 대신 텀블러와 플레이 리스트로 짐을 채웠다.
무릇 여행길을 떠남에 가장 으뜸가는 순간은 동트는 새벽녘에 집을 나서는 바로 시간이 아닐지. 비록 공항에서의 셀렘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배낭 메고 출발하였으니 어디라도 Bon Voage!
비행기 탑승 통로처럼 기다란 한강공원 진입 터널을 지나자마자 멀리서 짭짤한 물비린내가 코끝을 스친다.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이 강과 이어져 있는 바다의 원초적 생명력이 바람을 타고 전해져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드넓은 한강 위로 반짝이는 아침 햇빛이 포개져 언젠가 보았던 이국적 풍광을 떠오르게 한다. 지중해의 하늘과 눈부신 태양이 어우러져 낯선 여행자를 달뜨게 하는 공기로 가득했던 그 언젠가의 니스 해변처럼 ( You Are My Sunshine, 하림)
들썩이는 마음은 활주로 마냥 곧게 뻗은 산책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날아오를 것만 같다. 두둥실 구름 계단을 타고 올라가 드디어 하늘 정상으로 도약한다. 이륙 완료를 알리는 기장의 멘트처럼 오늘의 여행 일정을 안내하는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Fly the ocean
In a silver plane
See the Pyramids
Along the Nile (You Belong To Me, 카를라 부르니)
그녀의 가이드에 따라 나는 지금 은색 경비행기를 타고 대양을 고고히 비행 중이다. 발아래 늘어선 도시 속 종합운동장과 롯데타워가 마치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처럼 내려다 보인다. 주위를 감싸 오는 바람결에 가만히 무동력으로 몸을 맡기며 바람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본다
Fly me to the moon,
Let me play among the stars
Let me see what spring is like
On a-Jupiter and Mars ,
In other words, hold my hand (Fly Me To The Moon, 프랭크 시나트라)
내게도 손을 잡아준다면 달까지도 날아가련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슬슬 탄천 합수부에서 스탑 오버하기로 한다. 환승 목적지는 탄천 둘레길. 이제부터는 오롯이 두발로 걸어야 하는 길이다. 자박자박 걷는 신발 속에서 자갈 거리는 모래를 툭툭 털어내며 한발 두발 길을 잇는다.
이렇게 계속 걷다 보면 멀리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맞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친김에 하늘길이 연결되면 가고 싶은 곳의 버킷 리스트를 채워본다. 그런데 오늘 나의 여행에 길동무가 되어 준 그녀는 당신이 열대의 섬을 가든, 아마존의 정글을 가든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속삭인다.
Watch the sun rise
On a tropic isle
See the jungle When it's wet with rains
Just remember 'Till your dream appears
You belong to me (You Belong To Me, 카를라 부르니)
언제였던가? 머나먼 이국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념품을 고르고 그림엽서를 부쳐 본 적 기억이. 하지만 왠지 알제의 구도심을 미로처럼 헤매다 보면 어디선가 툭~하고 빨간 우체통을 만날 것만 같다. 그러면 사람 많은 시장 골목의 노천카페에 앉아 아무에게라도 빼곡하게 편지를 써야지.
소식을 전하고픈 대상이 있다는 것은 언제라도 반겨줄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길을 떠나는 이유가 아닐는지.
See the market place In old Algiers
Send me photographs And souvenirs
Just remember Till you're home again
You belong to me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시나브로 검붉은 석양이 뉘엿뉘엿 강 너머에 걸려있다. 현수교처럼 긴 줄에 알전구를 매달아 놓은 선상 레스토랑에 하나둘씩 주황색 불이 들어오면 어쩐지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꼬르륵~ 이제는 정말 집으로 돌아갈 시간인 것이다.
어느 작가는 '여행은 낯선 곳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여행을 못 간 것이 아니라 안 간 것이 아니었는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여행의 방향이 비록 하늘 밖이 아닌 마음 깊은 곳을 향하긴 했지만 '여행' 대신 '여행'을 한 셈이다.
어스름 새벽에 떠난 길을 어스레한 저녁이 되어 다시 밟는다. 도시의 불빛을 안은 유람선이 강 길을 따라 내려오고, 둥지 찾은 새처럼 작은 보트들이 옹기종기 메어있는 선착장에 작은 추억 하나를 남긴 채 이제 나는 이 강을 떠난다.
I'm going home to my city by the Bay
I left my heart in Han River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토니 베넷)
* 가사는 일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