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중학교 졸업식, 흩날리는 진눈깨비에 운동장은 질퍽하고 식장은 어수선하다. 마침내 식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들은 사진 찍을 친구 하나 찾지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아들을 한 여학생이 부르더니 자기 옆에 세우고는 "저희 사진 한 장 찍어주세요"라며 카메라를 건넨다. 우산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다른 남학생이 서있었고, 반대편에 아들이 쭈뼛쭈뼛 자리를 잡으니 어느 노래의 제목처럼 삼아일산이 되었다. 우산 든 여자아이 하나와 남자아이 둘. 그런데 어색한 조합의 이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다.
우리가 왜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둘 중 누가 먼저 관심을 두었는지는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k와 나는 '너 서울 가면, 나도 간다' 같은 중2 남자아이들만의 의리로 형성된 일종의 연대감은 그녀를 우리 반에서 제일 예쁜 아이로 꼽는 데에도 서로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아웃사이더들에겐 그것은 단지 둘만의 생각일 뿐 그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3학년이 되어 각각의 반이 갈린 채 1년을 지내고 보니 어느새 중학 시절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던 우리는 돈을 합쳐 유행하던 심형래 캐럴 테이프와 월간 만화 보물섬을 사고는 무작정 그 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누가 초인종을 누를 것인지, 보물섬 보다 비싼 심형래 아저씨의 테이프는 누가 전달할지 따위를 두고 한참 실랑이하는 사이 동네 놀이터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굳이 가위바위보로 초인종을 누를 필요는 없었다.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는 날라리 녀석과 함께 놀이터에 있는 그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모두가 당황한 나머지 우리는 서둘러 가져온 선물을 건넸고 그 얘도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만 남긴 채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싸늘해진 분위기를 깨고 날라리 녀석이 야릇한 미소로 "니들 쟤 좋아하냐?"라고 물었다. 우리가 선뜻 대답을 못하자 "근데 중3 여자애한테 저런 걸 선물하다니, 훗~ 너희 둘 덤 앤 더머지?" 이번에는 한심하다는 웃음을 보였다. 그제야 조금 전 그녀의 표정과 행동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하다못해 릴케나 백석의 시도 아니고 만화잡지와 코믹 캐럴로 마음을 전하려 했다니 그의 말처럼 우린 바보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흰눈 사이로 썰매를 달릴까? 말까?'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더욱 우유부단하고 풋내나는 애송이로 보이게 했을 것이다.
창피했다. 어리고 어리석기만 한 내가 부끄러워서 긴 겨울방학을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 보니 졸업식이 찾아왔다. 그날도 아침부터 비도 눈도 아닌 진눈깨비가 내려 졸업식장은 마치 폐장을 앞둔 시골장터 같았다. 한참 고민 끝에 그녀 반으로 찾아가 보았지만 텅 빈 교실에는 어지러운 낙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쉬움 마음에 발길을 돌리긴 했지만 무거운 발걸음은 차마 교문 밖으로 나설 수 없어서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방학 동안 훔쳐 외운 시를 떠올리던 그때, 푹푹 나리는 눈발 속에서 누군가 나를 찾았다. 인파 속 홍해를 가르며 그녀, 아니 나타샤가 내게 다가온 것이다. " 얘, 어디 있었니? 우리 같이 사진 찍자"
순간 흩날리던 진눈깨비는 소복눈이 되어 탐스럽게 내 머리로 내려앉았다. 때마침 평소 나만 따라다니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던 k도 어디선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렇게 억세게 운 좋은 아이와 더 운 좋은 아이 그리고 나타샤를 닮은 아이, 이렇게 세명의 아이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눈 오는 졸업식, 질퍽한 학교 운동장에서 삼아일산의 모습으로.
그러나 서로 다른 학교로 헤어진 후 그녀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이사 갔다는 동네를 찾아가 밤늦도록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려봐도, 반창회 친구나 동창회 소식을 수소문해봐도 같은 하늘 아래 있을 그녀는 어디에 숨어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같은 만남의 광장이 열렸어도 오작교는 우리에게 열리지 않았다. k와 술 한잔 기울일 때면 안주삼아 "이젠 결혼했으려나", " 이젠 학부모가 다 되었겠네", "이젠 만나도 얼굴 못 알아보겠지" 흐르는 세월 속에 그저 습관처럼 그녀의 안부를 궁금해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k가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려왔다.
드디어 연락처를 알아냈다는 것, 고생은 자기가 했으니 만나자는 연락은 네가 해보라는 것 등이 k가 두서없이 떠들어댄 말의 요지였다. 우리는 중학시절처럼 "내가? 어휴 떨려서 난 못해"로 시작해서 "나이? 떨리는데 나이가 따로 있냐? " 같은 옥신각신을 몇 분째 이어나갈 뿐이었다. 그러자 차츰 현실감을 되찾은 k가 마침내 오래된 종지부를 찍었다. "하긴, 이제 와서 얼굴 보면 뭐하겠냐, 이 나이에..."
그리하여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정작 찾고 나니 되려 찾고 싶지 않은 마음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짧지 않은 나의 인생에서 선명했던 순간들도 어느새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희미해지는 시간이 되어간다. 먼지 쌓인 앨범에서 찾은 그날의 사진속에서 15살의 나는 알듯 말듯한 미소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졸업장 케이스 사이로 그녀가 건네 준 편지를 한쪽팔에 끼운 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하는 한,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