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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Oct 27. 2020

우즈벡 시어머님께 천 달러를 보내드렸어요

시어머니를 점점 좋아하게 만드는 사람.

한 사람만이 가능한 일인듯하다.



시댁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좋다. 시어머님은 엄마가 될 수 없다. 같이 사는 것보다 독박 육아가 낫다. 등 마치 시부모님과의 사이에서 어떠한 매뉴얼이 존재하듯 머릿속에 고정관념처럼 박혀있던 나의 생각들이었다.


이 말들은 다 틀렸어. 시부모님께 잘할 거야!!

라기 보단  이런 계산적인 생각들이 점차 허물어져 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행동으로 알려준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무슬림이지만 절실하지 않은 무슬림들도 많이 있는데

술도 마시고 결혼 전 여자와 유흥도 즐기고. 무슬림이라고는 하지만 남편에게 들은 우즈베크 남자들의 충격적인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결혼 전부터 많은 우즈벡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술도마시고 담배도 피고 돼지고기도 먹는. 할거 다 하는 무슬림보다 남편이 오히려 절실한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이슬람법에 있는 부모님에 대한 효인 것 같다.

타지에 살다 보니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더 큰 것도 있지만 장인 장모님께 그리고 다른 어른들에게까지도 잘하려는 남편을 보면 남편에게 배우고 싶은 점이기도 하다.

언젠가 친정식구들과 함께하면서 남편에게는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시댁에 선물을 왕창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코로나로 택배값이 말도 안 되게 비싸진 요즘이라 남편은 차라리 용돈을 주는 게 좋겠다는 말을 했다.


자기! 말 나온 김에 어머님께 용돈 보내드려야겠어.


말을 하고 곧바로 나는 천 달러를 보냈다.


결혼 후 아끼고 모으는 걸 생활화한 내가 1000달러라는 내게 큰돈을 보낸 이유는 사실 남편 때문이었다.


얼마 전 남편과 오붓하게 겨울옷을 사기 위해 친정집에 아이를 맡기러 간 적이 있는데 1층에 무거운 짐을 같이 좀 들어달라는 아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관문을 나서는 샤로프든이었다. 샤로프든 은 현관문에 널브러져 있는 신발을 재빠르게 정리하고 아빠 신발을 아빠 앞에 놓아주었다.

남편은 항상 집에 들어설 때 친정집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서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어질러진 신발정리부터 시작하고 집으로 들어선다.

이런 별거 아닌 사소한 것들이 나에겐 꽤 감동적이고 충분히 로맨틱해 보이는 남편이다.

신발을 놓아주는 남편을 보고 생각해보니 샤로프든 은  아빠 일하는 사무실에 놀러 갔다가 부러진 쓰레기 받이를 보고 마트에서 쓰레기 받이를 구입하기도 하고 이날 제대로 된 메모장이 없이 뜯어 쓰며 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똑같은 노트를 찾기 위헤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남편이 생각났다.


저렇듯 잘하는데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나.

시댁에게 좀 잘하라고 남편이 말했다면 더 반감을 가졌을 나지만 친정부모님께 잘하는 걸 보여주면서 내가 시댁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깨우침을 준 것 같아 남편에게도 고마웠다.

 

겨울옷을 구경하는 중에 샤로프든 은 말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옷을 보면 아빠가 생각나.

우즈베크   이런  하나 사서 가져다 드려야지. 이것도 사드려야지. 하면서 눈으로 찜해놨는데 

    바로 사서 보낼 생각을  했을까.

한국에 와서  벌면서    좋은  사드리지 못한  너무 후회가 .


남편의 말을 들으니 나 또한 잘해드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 후회를 많이 했다.

한국 며느리 얻어서 자랑하고 다니셨던 시아버님께 용돈 한번, 택배 한번 보내드린 적 없는 나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또 한 아이를 임신하면서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생활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는데

시어머님의 생일에도 큰 선물을 해드리지 못한 나였다.

어머님이 가장 좋아하지만 비싸지 않은 가성비 선물을 고르다 우즈베크에 가셔서 많은 식구들에게 나눠주고 마음껏 양말 자랑을 하시라고 양말 100켤레를 사드렸는데

누군가는 좋은 선물 해드리지 양말을 해드리냐는 이야기를 했고 그제야 나는 또 아차 하기도 했다.



한참 뒤 남편이 물었다.


왜 갑자기 1000달러나 보냈어?

그냥.


나는 무심하게 이야기했지만 당장에 무언가를 해드리고 싶었고,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계실 때 우리는 어머님 덕에 맞벌이를 했고,

절약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만나 우리는 아이 옷도 먹는 것도 아껴가면서 알뜰살뜰 돈을 모았다.

많이 벌지는 않았지만 절약만큼은 열심히 하려고 했던 우리 부부였고

열심히 저금해서 더 좋은 집에 가고 미래를 위한 대비를 하려고 우즈베크에서 시어머님까지 불러 아이를 맡겼다.

그리고 그렇게 아등바등 열심히 모았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시니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부모님 용돈 드리는 게 큰 어려움이 아니라는 걸.

돈을 벌어 은행에 넣는 것보다 돈을 버는 이유를 더 명확히 하고 우리를 행복게 해준다는 걸 깨달았다.



1000달러를 받은 시어머님께 영상통화가 왔다.


빵 만들어서 돈 많이 벌었는데 돈을 왜 보내셨냐고 말하셨지만 어머님은 이날도 식구들이 모두 모인 집에서

아들 며느리 자랑하듯 큰소리로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그리고 이 돈은 쓰지 않고 가지고 있다가 내가 가면 우즈베크에 좋은 거 많이 사주신다는 말씀도 하셨다.

1000달러를 드리고 10,000달러를 받은 기분이었다.


어딘가에서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불행하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지만 더 건강하다고 더 행복한 게 아니다.

돈도 마찬가지로 더 있다고 해서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삶이 어려울 정도로 돈이 없어 불행하지 않듯,

나는 지금 이 삶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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