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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Nov 23. 2020

우즈베크에서 온 택배

손녀딸 양말과 머리핀을 자주 사주셨던 시어머님.

종교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어머님께선 항상 어디를 나가든 말끔한 차림을 하셨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보니 한국생활을 하실 때 손녀딸에게도 비싸지 않은 예뻐 보이는 액세서리들을 많이 사주시곤 하셨다.

그런 어머님께서 우즈베크에서 빵 만드는 일로 바쁘신 와중에 손주들을 위해 우즈베크에서 깜짝 택배를 보내셨다.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병원에 있을 때 아이를 친정집에 보낼 생각으로, 얼마 전 집이 아니면 잠을 못 자는 딸내미를 처음으로 친정집에서 재웠는데 조용히 빠져나와야 하는데 눈치 없는 남편 때문에  아이가 따라나설뻔했다.

그래도 다행히 남편과 나는 아이를 울리지 않고 차에 탈수있었고 친정집에 아이를 맡기고 남편과 둘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숨길 수 없는 내 기분을 나는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아이를 신경 쓰지 않고 평소에 먹고 싶었던 매운 음식을 배달시켜 영화를 보며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에 절로 콧노래를 불렀고, 아이가 커서 엄마들이 놀러 다닐 때의 기분이란 이런 걸까  싶었다.


생각해보니 시어머님이 한국에 계실 때 집에서 아이를 전적으로 봐주셔서 나는 남편과 아주 자주 둘만의 시간을 갖고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그때는 육아가 처음인지라 그게 이렇게나 고맙고 또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 문득 어머님께 당연하게 받았던 것들을 죄송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남편과 영화를 보는데 아이가 계속 생각이 났다.

너무 편하게 밥을 먹어서 생각이 났고, 맛있는 걸 먹으니 생각이 났고, 뭐 하고 있나 걱정에 생각이 났고, 친정부모님은 고생할까 싶어 생각이 났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계속 친정엄마에게 전화와 카톡을 보냈다.

친정집에 자주 가지만 한 번도 잔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울지는 않았지만 열두 시가 넘도록 잠이 들지 못했는데, 다행히 티브이를 보다 잠이 들었다고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하루 잠깐 못 봐도 이렇게나 보고 싶은데 3년간 옆에서 먹이고 재우고 껌딱지처럼 붙어서 지냈던 손녀딸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하는 시어머님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떨어져 있는 아들도, 손녀딸도 보고 싶어 할 어머님 때문에 우즈베크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남편보다 더 우즈베크에서의 생활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위로를 해준다면 외국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있다 보면 더 애틋한 마음에 전화를 매일 같이 하니 가까이 사는 가족보다 어쩌면 더 가족들의 안부를 잘 알고 있는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옛날과 다르게 인터넷만 있으면 공짜로 국제전화도 얼마든지 얼굴을 보며 할 수 있으니 알마나 다행이냐고.

남편은 한국생활 10년 가까이하면서 사정이 있을 때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매일 집에 안부전화를 드리고 있는데 남편 덕에 나 또한 결혼하고 어느 순간부터 매일 친정집으로 전화나 가족 카톡방에 카톡을 보내게 된것같다.

오늘도 우리는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시어머님께 안부전화를 드렸는데 손녀딸부터 찾으시는 시어머님이셨고,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손녀딸 걱정을 하셨다.

그리고 통화가 끝나기 전 어머님은  택배를 보내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일주일 정도 전에 보냈는데 아마 곧 한국에 도착할 거라고.

코로나로 우즈베키스탄은 우체국이 원활히 운영하지 않고 있고 한국으로 가는 택배를 보내기가 힘들다고 하셨는데, 손녀딸과 곧 태어날 둘째의 선물까지 무척이나 보내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며칠 후 기다리던 택배 도착!

어머님이 선불로 택배비를 지불하려 했는데 가지고 오는 사람이 한국돈으로 착불로만 받는다고 이야기했다고 했다. 보낼 때 택배비가 분명 25000원이라고 했는데 지불하려고 전화를 하니 우즈베크 사람이 중간에 가격이 올랐다며 두배나 올려서 5만 원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앞뒤 상황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한국이면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이 나는 어이가 없었고 우즈베크 사람에 대한 신용을 잃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우즈베크에서 택배를 받아 딸아이와 남편과 함께 열어보았다.








첫 번째 아이템

아기 겨울 신발

우리나라 고무신처럼 이것도 기념품이냐고 물었는데 기념품 아니고 겨울에 추울 때 많이 신는다고 한다.

장점-땀띠 날 정도로 따뜻하다는 것과 개성이 뚜렷함

단점-양말에 잉크 같은 게 묻어나고 신었을때 엄마가 살짝 부끄러움


그런데 다음날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갈 때 신겨서 나갔는데 아주 인기가 폭발이었다.

70대 80대 정도 돼 보이시는 할머니들이 딸내미 발만 쳐다보는듯했다.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신 할머니도 계셨고 좋은 거 신었다는 할머니와 이쁘다는 할머니도 있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일이라  당황스럽진 않았다.

선물은 다 첫째 옷 그리고 곧 태어날 둘째 옷과 양말들이었다.


내심 내 건 뭐 없나 기대도 해봤지만 그래도 아이들 선물로 나는 대 만족이다.

사실 나는 금방 크는 아이들이고 어린이집에도 다니지 않아서 옷이나 신발을 자주 사주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아이들 옷 선물을 받으면 더 좋아하는 나이다.


한국에서나 우즈베크에서나 어딜 가도 어머님은 손주 패션을 놓치지 않고 신경 써주시는 듯한데 문득 첫째를 임신했을 때, 어머님이 생각이 났다.

시어머님은 앞으로 아이를 봐주기 위해 한국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첫째를 낳기 전에 짐도 챙겨오고 이것저것 정리할겸 우즈베크에 잠시 다녀오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머님은 캐리어에 한가득 아이의 옷과 신발 등을 잔뜩 사서 챙겨 오셨었다. 정이 워낙 넘치셔서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아기 옷까지 신경써서 사 오셨던 어머님이시다.

 첫째라 나는 극성은 극성대로 심했었던 때였고 어머님이 사오신 옷들을 보고 나는 속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스타일은 완전 50년 전 할머니 스타일에, 재질은 또 왜 이렇게 구린지 아이 피부라도 상하면 어쩌나. 이런 건 차라리 안 주는 게 좋은데. 이런 거 입혀서 어떻게 데리고 나가지 이런저런 걱정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었다.

이런 내 마음은 모르고 시어머님은  친구에게 갖다 주라며 등 떠밀듯이 나에게 친구 아들 옷까지 건네주시는 어머님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실망했던 내 표정들을 어머님도 다 읽으셨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우리는 첫째를 낳고 우즈베크에 있을 때 외숙모님이 시내에서 아동의류를 판매하셔서 아이 옷도 살 겸 팔아줄 겸 해서 간 적이 있는데 한국돈으로 치면 싼 편이지만 우즈베크에선 아기 옷이 꽤나 비싼 걸 그때 알게 되었다. 두 돌 아기 옷 위아래 세트가 한국돈 만원이 넘었는데 우즈베키스탄 물가에 비해 아기옷은 비쌌고 메이드 인 차이나도 싸지 않구나 라는걸 알게 되었다.


어머님이랑 같이 육아를 하며 서로 많이도 부딪치고 했지만 남편보다 더 붙어있는 시간들이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시댁의 시 짜는 남보다 못하다는 고정관념이 어머님의 진심 어린 사랑으로 통한 건지 시어머니를 어느 순간 친정엄마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모르게 피를 나눈 가족처럼 느끼게 된듯하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아이 옷들이 그저 감사하고 단순히 옷과 선물이라는 생각보다 어머님 혼자서 손주들을 위해 시내를 돌아다니며 옷을 보고 택배를 보내고 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물건을 보는 눈도 바뀐 건지 촌스럽다기보단 한국엔 없겠지 라는 긍정 아닌 긍정적인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되면서 남편에게 우리 애는 잃어버려도 금방 눈에 띌 거라고 웃으며 농담을 건네곤 했다.


결혼 전에 엄마 아빠가 옷을 사준다고 하면 항상 괜찮다고 됐다고 말하는 나여서 엄마 아빠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옷을 사 오시곤 했었는데, 그때도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짜증을 내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어머님의 마음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면서 깨닫게 된 듯하다.


신기하게 우즈베크 남편과 살면서 남편을 보면서 또 시어머님과 시댁 식구들을 보면서 작은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계속 생기는 것 같다. 어쩌면 부유하지 않은 남편을 만난 것에 대한 선물이 아닐까 싶다.


마음은 부모보다 자식에게 더 가는 건 사실이지만, 해드릴 수 있는 다른 건 자식보다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번엔 대단한 건 아니어도 우즈베크로 한 번도 보내 본 적 없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좋아하는 시댁을 위해 한국 며느리로서 정을 듬뿍 담은 택배를 보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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