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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Sep 19. 2019

dear 나의 우즈베키스탄 남편님

사전을 준비해 이곳으로 오세요

안녕하세요! 

라임조노브 샤로프든 씨!

한국에서 긴 이름으로 매번 이름이 바뀌는데

요즘엔 샤비라고 불린다고요? 이것도 아랍에 옛날 사람 중에 똑똑한 사람 이름이

 샤비라며 좋아서 해맑게 웃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은행고객센터에 전화하면 라이님이라고 부르고

건설 수료증은 샤라피디라는 이름으로 직업도 만들어주었죠?

샤로, 딘, 우즈 등등등

저조차도 사람의 이름을 잘 못 외우기에 그들이 이해가 가지만

야 우즈벡!

이라고 부르는 아저씨들은 가서 무식한 코리아라고 혼내주고 싶어요!


샤로프든 씨! 이런 공개편지는 처음이네요~연애할 때는 손편지 도쓰고 견과류에 메시지를 쓴 포스트잇을 붙여 마음을 담아 주고 했는데 엄청 상남자 인척을 하길래 먹고 버릴 줄 알았던 내 편지 들을 포스트잇만 오려서 차곡차곡 모아 놓은걸 보고 살짝 놀랬어요


우즈베키스탄 남자들 다 로맨티시스트인가요?

한 달에 한번 정도는 항상 예쁜 꽃다발을 선물했던 당신이네요

물론 향기를 맡을 수 없는 사진이었지만요

사치스럽지도 않고 공짜로 사람의 기분을 업시킨 당신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어요


옷을 사러 나가면 샤로프든 씨가 옷 입어볼 때마다 너무 멋있다고 소리 지르는 내가 부끄럽다며 제발 조용히 하라는 당신이죠

당신은 나에게 원빈 장동건이에요

잘생기면 얼굴값 한다던데 얼굴값 안해준거 고맙고요

시력이 안 좋아서 그런지 콩깍지도 오래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렴 어떤가요


부모님 밑에서 세상 편한 욜로족으로 30년 가까이 살다가 샤로프든 씨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현실에 눈을 떠서 그런 건지 나라는 사람이 참 많이 변했어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어요

결혼 후 삶은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청개구리 근성이 나와서인지 일하고 살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에

없어져버린 내 시간이 더 그리워서 악착같이 잡으려고 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어요


몇 달 전 모임을 통해 만나게 된 작가님께 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돈은 많이 벌고 싶고.. 할 줄 아는 건 없고.. 취미라고 할 것도 없지만 제가 좋아하는 건.. 그저 우리 가족입니다

가족과 여행 가는 것이 좋고 남편이 좋고 아이가 좋고.

아 그리고 저는 우즈베키스탄 남자와 결혼하였습니다 라는 말들을 하였죠

 이 말을 들은 작가님께선 저에게 그렇게 좋아하는 가족에 대해  글로 한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고 브런치를 추천해주셨어요

이런 사소한 일상들을 글로 쓸 수 있을까. 남들이 봐줄까 글쓰기도 안 해봤는데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죠

하지만 작가님께선 브런치 글 10개를 쓰는 것을 목표로 한 번써 보라는 긍정적인 말들만 해주셨어요

그렇게 처음 시작한 나의 생애 첫 글쓰기는 매주 한 개씩 글을 업로드하여 이번이 바로 10번째가 되었네요

샤로프든 씨에게 또 작은 목표를 실천한 나에게 잘했다고 자랑하고 싶어 열 번째 글은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날이 왔네요

이 글을 올리기 전까지 조회수가 8만명 가까이 되었는데

이게 뭔 대수야 할 수 있지만 샤로프든 씨는 잘했다고 칭찬해줄 거라 믿어요

사실 글쓰기 초보인 제 글을 봐주시는 게 부담도 됐지만 너무 행복한 일이더라고요

저에게는 너무 큰 숫자였고 사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조회수 클릭하는데  더 열심히였던 것 같아요


샤로프든 씨

우린 3년을 같이 살았는데 저는 꼭 30년을 산 것 같아요. 결혼하고 1년은 정말 미친 듯이 싸웠고 동물의 왕국이라도 찍는 거처럼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죠 우리

달라도 이렇게 다른가 싶고 서로 처음 겪는 불편함에  자신의 힘든 것만 보일뿐 서로를 이해해줄 여력이 없었던 우리지만

그래도 다행히 우리는 안정을 찾았고 많이 싸워서 그런 건지 서로에 대해 더 많이 배우게 되었네요


매일같이 퇴근하면 지하철역으로 항상 데리러 와주는 것도 고맙고.

옷을 구경하거나 물건을 살 때 상품보다 가격 텍을 먼저 보는 당신이

내가 뭐가 먹고 싶다고 하면 가격도 안 보고  달려가 사 오는 것도 고마워요

해산물을 안 좋아하는 우즈베키스탄 가족과 생활하기에 해산물이라면 사죽을 못썼던 제가 해산물이 무슨 맛인지조차 잊어 갈 때쯤

추석 때 코스트코에 한 코너에서 랍스터를 파는 것 보고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보고 있었죠

이런  나를 보고 조용히 다가와


장인어른, 장모님도 랍스터 좋아해?

좋아하지 비싸서 못 먹지.

이모 제일 싱싱한 걸로 한 박스 주세요

비싼데 사려고? 이 돈이면..

괜찮아 그냥 사!

명절도 아직 삼일이나 남았는데 우리는 랍스터를 전해주기 위해 바로 친정으로 달려갔어요

비싼 걸 뭐하러 사 왔냐며 뭐라 하셨지만

명절 때 식구들이 오면 사위 자랑거리 하나 생겼다에 기분좋아보이셨어요

엄마는 바로 찜기에 쪄서 우리 앞에 내놓았고 내장에 밥 비벼 먹고 껍데기에 라면까지 끓여 아주 싹싹 비웠네요


자기 우리 엄마 아빠한테 랍스터 선물 너무 고마워.  비록 내가 많이 먹긴 했지만;

장인어른 장모님도 그렇지만 당신이 잘 먹어서 좋다


우리끼리의 대화를 들은 우리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고

또 한 번 감동시킨 샤로프든 씨께 고마웠어요

당신이 우리 부모님에게 선한 얼굴로 항상 잘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항상 고마워요

처갓집 부모님을 자신의 부모님처럼 진심으로 대해주는 모습에

난 시집살이 절대 못해! 시댁에 시자도 싫어! 라며 결혼초에 내뱉은 말들

많이 후회되고 더 잘해야지 다짐하며 노력하고 있어요

스스로 깨닫게 해 줘서 고마워요

사소하지만 작은 감동들이 모여서 제가 샤로프든씨를 남이 아닌 제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샤로프든 씨 그런데 이 와중에  할 말이 있는데.

부탁인데 몸 좀 사리면서 일해요

일 시키면 눈치도 보고 꾀도 부리고 하세요

담배 피우는 시간에 담배 안 피운다고 일하고 있고 수화기 너머로 다 들었어요

다른 사람도 싫어할 수 있어요

아홉 시만 되면 침대에 넉다운되서는 가끔씩 몸에 경련 일으키고 생전 안 골던 코도 골고 마음이 안 좋네요

우리 아빠도 젊어서 설비 일하며 할아버지가 제발 몸 좀 아끼라고 했다는데 천년만년 건강할 줄 알았다던 우리 아빠 지금은 심장수술만 두 번 애 합병증으로 약 달고 사는 거 다 알잖아요

무엇보다 샤로프든 씨는 지금 보험도 없잖아요?


그리고 운전은 자동차 전용도로라 해도 100km 이상 달리지 마세요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잔소리 맞아요

빨리 달리는 게 옆에 앉아있음 불안 불안하고 무서워 죽겠어요

뻑하면 비상등 깜빡이 2초간 누르기

끼어들기하고 뒤에서 빵 하면 왜 비상등 켜요?

사람 때리고 미안하다고 하는 것 같아요

면허 딴지 10년 된 나지만 길에 전세내고 차 몬다고 하는데

차라리 무사고로 차에 기스 한번 안 낸 제가 낫다고 봐요


샤로프든 씨

제 삶에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를 알게 된 것이 너무 기뻐요

100세 시대인 지금 인생의 3분의 1을 한국에서 보냈다면 샤로프든 씨 나라에서도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살아보고 싶어 졌어요

나중에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슈켄트에 아파트도 하나 사고

더 많은 나라들을 경험하고 새로운 문화 속에 사람들도 만나보고

모험심 강한 샤로프든 씨가 있다면 걱정하지 않아요

그러다 꽂히는 곳이 생기면 그곳에서 눌어붙어 살죠뭐

세상은 넓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롭고 신비한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제야 눈을 뜬것 같아요


산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기에 또 혼자가 아니라 든든한 지원군이 하나 생겼으니  우리가 충분히 인생에 성공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몇 번의 파도와 위기들이 올지 모르겠지만

서로에게 좋은 스승이 되어 한배를 탔으니 우리 열심히 노를 저어봐요

우리의 배는 지금은 비록 낡고 오래된 배일지라도 아주 크고 튼튼한 배가 되어있을 거예요


항상 조심하시고요

 갑자기 뭐에 열 받아서 또 화내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만약 그럴 때는 다시 이 글을 꺼내 읽어보려고 해 볼게요

더 살아보고 두 번째 편지로 다시 만나요

그날까지  다시 한번 앞으로의 저를 잘 부탁드려요


시집은 늦게 늦게 어찌어찌 갈 줄 알았는데

결혼이라는 인생 중대사를 저와 함께 하겠다고

결정한 당신에게 고마워요


저와 결혼해준 당신의 선택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샤로프든 씨!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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