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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Oct 10. 2019

우즈베키스탄 남자의 고백

카네이션 프로포즈

우즈베키스탄에 간 샤로프.

한 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되다니..


하루가 지나고 3일이 지나고 4일이 지나갈 찰나에 카? 톡!

샤로프다!!!!!

사실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연락 못한다고 한 다음날

 나는 잘 도착했냐는 카톡을 보냈었다

가고도 남을 시간인데 답장이 없어서 의기소침해 있던 중이었다


나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했어

진짜 갔네? 어떻게 카톡 했어? 연락하기 힘들다며

여기는 괜찮아 그런데 또 안될 거야

그럼 앞으로 되는 데 있으면 연락해!

우리는 몇 차례 메시지만 주고받고 그가 없는 한국이 왜 이렇게 낯선지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인데

사랑의 힘인지 뭔지

나는 매일 1일 1식과 학교 운동장에서 하루 한 시간씩 줄넘기를 했다

나를 더 가꿔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고 피아노 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5년 정도 배웠지만 지금은 학교종이만 치는 수준이여서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 학원에 가서 샤로프가 좋아했던 한곡만 팠다

그리고 사진을 예쁘게 찍어 일주일에 한번씩 사진을 보냈다!


야 샤로프 우즈베키스탄 간 거 맞아?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사진 보내달라고 해봐

우즈베크 갔대잖아..

너 또 어장관리당하는 거 아니야? 이제 외국인한테도 어장관리당하냐!!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의 말이라 나의 뼈를 때렸다

나는 연애할 때 내가 좋아해서 만난 사람도 나를 좋아해서 만난 사람도 얼마 지나면

내가 엄마처럼 아끼고 더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며칠 후 또 문자가 왔고 나는 친구의 말이 계속 거슬렸는지

샤로프에게 우즈베키스탄에서 찍은 사진 좀 보내달라 했다


유심히 사진을 보는데

뒤에 배경이 뭔가 낯설지가 않다

우즈베키스탄에 가봤어야 알지..

그런데 희미하게 보이는 배경을 자세히 보니 한국영화 포스터가 붙여진 걸 발견!

나는 충격이었다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그만 잊으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에도 한국영화 보나 보다고 친구와 나 자신을 설득하려 했지만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해졌다


얼마나 오래 만났다고 한 달간 부재중인 남자를 기다리고 

기다려도 더 이상 나에게 매력을 못 느끼겠지 생각했다

 아니 그럴 거면 왜 좋다고 했대?

순간 화도 났다

어느새 길고 험난했던 한 달이 지났다

지하철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저 멀리서 그 자식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미 전쟁터에 나갈 전투태세를 모두 갖췄다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해맑게 멀리서 뛰어오며 나에게 꽃 한 송이를 주었다

맨날 진짜 꽃도 안 사주고 꽃 사진만 보내주더니 웬 꽃!!

아니 근데 무슨 카네이션이지?

그러고 보니 오늘 어버이날인데?


오다가 길에서 팔길래 샀다고 한다........


이 사람을 어떡하지? 만나자마자 너 우즈베키스탄 안 갔지? 어장 관리했냐?

오늘은 왜 만난 거래? 무슨 의도가 따로 있냐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려고  리허설까지 하고 갔는데

오천 원짜리 카네이션을 받고 마음이 흐지부지 또 녹아내렸다


샤로프도 내가 우즈베키스탄에 안 간 걸 알고 있는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밥 먹자! 배고프지 치킨 먹을까?

우리는 치킨집으로 갔고 조용히 있다가 나는 한마디 했다

내가 선물사 오라고 한 거 사 왔어? 빨리 줘

샤로프는 페로로로쉐를 건넸다

장난해? 우즈베키스탄에서 사 온 선물 말이야


샤로프는 한 달간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무슬림이야

알고 있어 말했잖아.

응.. 한 달 동안 라마단이었어 라마단은 한 달 동안 해가 지면 밥을 먹고 하루 종일 물도 못 마셔

그것 때문에 연락을 안 했다고?

우즈베크 사람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한국사람들처럼 만나고 헤어지고 이런 거 안 해

나는 진심으로 너를 만났어 처음부터

그래서 라마단 때 한 달간 생각이 필요했어 종교가 다른 게 제일 문제였고 부모님도 허락 안 해주실 거고

근데 오늘은 왜 만났어 또? 장난쳐? 우즈베키스탄도 안 갔으면 거짓말하고 거짓말도 잘 좀 치던가 티가 너무나


그럼 우리 결혼하자

.............................................................;;;;;;;;;;;;


좋아하긴 하지만 결혼? 괜찮을까?

나는 잠시 멈칫했고 순식간에 아빠 엄마 모습이 스쳐갔다

하지만 나는 바로 대답했다


약 쉬!(좋아~)


이 남자에게 끌림이 있었다거나 미친 듯 사랑해서? 라기보다는

연애할 때 누군가 나랑 결혼할래?

했음 나는 덜컥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남자와 결혼했으니까


어느덧 우리는 결혼 4년 차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이 변하지만 않는다면 늘 지금처럼 행복하고 싶다


에필로그

나는 연애 때 기다렸던 한 달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문득 생각날 때면 괜히 엉덩이를 걷어차기도 하고 결혼 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복수들을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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