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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Jan 15. 2020

우즈베크 시엄마에게 소소한 자랑거리 만들어주기

한류가 있던 곳, 남이섬에 다녀왔어요

내 일상을 들여다보면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엔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집안일을 하는데 시엄마와 함께 살면서 시어머님이 아이를 봐주시고 집안일까지 전담하듯이 다 도와주시는데도 어느 순간 나는, 평일엔 일하고 주말엔 집안일을 하는 것에도 마음속에서 뭔가 부당하다는  느낌이 싹트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은 나도 셔도 되지 않나? 가끔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나는 나 스스로가 눈치가 보여 그렇게 하지도, 하고 싶다는 말도 꺼내지 못하다가

지난 토요일. 예전부터 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는데,

시엄마에게도 죄송스럽고 엄마엄마 하면서 놀아달라고 하는 아이를 나는 또 뿌리 칠 수 없어 이번에도 과감하게 포기하고 나는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한 연예인이 겨울연가에 나왔던 배용준 분장을 하고 나왔는데 시엄마는 그것을 보고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난 듯이 반가워했다

나는 겨울연가를 보지 않아서 주인공 이름도 알지 못했는데 옆에서 남편이 겨울연가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겨울연가를 봤던 여자들은 모두 준상이와 유진 때문에 울고 웃고 했었다고 하는데

시어머니의 나이는 그때 당시 30대였고 어머님 나이 때 사람들은 대부분이 준상이와 유진의 팬이라고 한다


토요일 아침.

밥을 먹다 문득 겨울연가가 생각이 났고, 며느리 노릇도 할 겸 오랜만에 우리 가족 콧바람이나 쐬게 해줄까 싶어 곧바로 남이섬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는 연애할 때 남편과 한번 남이섬에 갔었는데 그때는 별로 재미가 없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기대를 하지 않았고 어머님과 딸에게 바람 쐬어줄 목적으로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남이섬에 도착하고 바로 보였던 건 번지점프!


샤로프 우리 커플번지 하자!  너무 하고 싶었어! 혼자는  무섭고 같이 하면   있을  같아

저런 걸 어떻게 해

평생 잊지 못할 추억 하나 만드는 거야! 둘 이하면 8만 원이래

8만 원?!!

8만 원 준다고 해도 못할 것 같아

연애 때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이번에도 번지점프는 하지 못하고 우리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남이섬으로 들어갔다


역시 이번에도 나무들과 동물은 타조뿐인가.

 겨울이라 사람이 많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외국인 관광객들과 그중 무슬림 관광객들도 많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지난번엔 없었던 기도실과 할랄음식점도 생겼다

할랄 인증 마크가 있는 아시안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중식 메뉴들이 보였고 고민도 안 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실 남편은 평소에 검은색 라면은 무슨 맛이냐며 짜장면에 대해 궁금해했었고 꼭 먹어보고 싶어 했던 음식이었다


짜장 소스와 짜장 수프에도 돼지고기 성분이 들어있어서 나는 가뜩이나 요리도 못하는데  춘장과 중화면을 사다가 직접 소스를 만들고 중화면을 삶아서 만들어 준 적이 있는데

중국집의 그 맛이 아니었다.

짜장면에 실패하고 짬뽕도 만들어줬었는데 짬뽕이라기 보단 무슨 얼큰 칼국수 맛이 맛던 것 같다

중국집 요리 비법은  아무나 가르쳐 주지 않는 음식인데 곰손으로 어찌 잘 만들 수 있을까


요리 잘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흘러가는 대로 마음껏 요리를 하는 나지만 가끔 한국음식이 이렇게나 맛있어.라고 알려주고 싶은데  손맛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때 내가 가끔 미워진다.

내가 해준 음식 맛이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 맛인걸 내 남편이 착각하며 살아야 한다니. 답답하기도 했다


우리는 메뉴를 보자마자 짜장면과 탕수육, 짬뽕을 골고루 시켜서 나눠먹었는데 남편이 너무 잘 먹어서 나는 평소보다 적게 먹은 것 같다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음식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먹는 내내 음식에 대해 논하는 남편의 모습이 참 재미있었다

친구들과 다시 와서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결혼하기 전에 기숙사 생활하며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 생각났나 보다

식당 건물 내에는 키즈카페처럼 아이들이 놀만한 곳도 마련되어 있어서 미끄럼틀도 타고 블록도 가지고 놀면서 추위를 녹일 수 있었고 2층에는 기도실이 있어서 어머님과 남편은  편하게  기도를 할 수 있었다


겨울이라 거의 어머님과 집에만 있던 아이를 데리고 나와 배도 타고 사진도 찍고  신나 하는 아이를 보니 일하면서 받았던 한 주간의 스트레스는 다 잊은 듯했다

입장료가 다소 비싸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머님도 남편도 아이도 너무 좋아했고 남편은 딸이 좀 더 크면 3년 뒤에 또 오자고 한다

어머님도 집에 가는 길에 오늘 행복했다며 손주가 커서 돈 많이 벌면 지금 자기처럼 나와 샤로프에게 해외 좋은 곳 여행 많이 시켜주는 효녀가 되라고 기도할 것이라 했다

집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시엄마는 우즈베크 가족들과 영상 통화하며 남이섬에 갔다 왔다며 자랑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 가족과 살아서일까, 예전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참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 것 같다.


집에 와서 일기를 쓰는데 평소 같으면 너무 놀기만 했다는 둥,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는 둥, 지출을 많이 했다는 둥

이런 이야기를 적었을 텐데 오늘은 너무 잘 놀다 와서 행복했고 나에게 삶이 딱 하루가 주어진다면 딱 오늘만큼의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글을 적었다


아무래도 가족은 나에게 삶의 큰 활력소가 되어주는 듯하다

무언가 욕심을 내고 바라는 것이 있을 때나

무언가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도

 나는 지금과 같이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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