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in Mar 06. 2020

우즈베키스탄에서 보내온 선물

계산적이기보다는 마음을 먼저 생각할 것.

Oh my God!


나도 모르게 이슬람교 집안에서 버릇처럼 툭 튀어나온 말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시누이가 딸아이의 옷과 견과류를 선물로 보냈는데 옷이 엄청 고전적인듯해 보였다.

뭐지? 우즈베크 전통의상 인가?

딱 봐도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옷에 정성이 느껴졌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디자인과 색깔이었는데 우리 할머니 옷이랑 똑같았다.



27년생인 우리 할머니와 17년생 우리 딸의 옷이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처음에는 기념품으로 보낸 옷이냐고 물어봤는데 누님은 일부러 크게 샀으니 두고두고 입히라는 말을 해주었다.

내가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 본 것 때문인지 나는 우즈베키스탄의 옷 스타일을 아주 많이 좋아하지 않는데

시댁에 갔을 때 많은 식구들의 옷 스타일을 보면 다들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젊은 남자들이 많이 입을법한 카라티를 시아버님도 입고 계셨는데 나이에 상관없이 사이즈만 맞으면 입는듯해 보였다.

시아버님한테는 오히려  젊어 보이셨지만 젊은 사람들은 노티가 풀풀 나는 이 느낌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시댁에서 지난번에 식구들이 한대모여 담소를 나눌 때 나는 조용히 우리 방으로 건너가려고 나오는데 문 앞에 신발이 놓여있는 걸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어쩜 그리 여자들 슬리퍼가 다 똑같던지.

나오는 시누이에게 본인 신발을 찾을 수 있겠냐 물으니 바로 찾아 신는데 그게 더 신기했다. 왜 그렇게 같은걸 입고 신을까 궁금해서 시어머니께 물어본 적이 있는데

이유는 그냥~이다.

누가 싸고 편하고 좋다 하면 다 같이 사서 신는 것이었다.

 지금은 할 말을 다 하는 나지만 예전에 시댁에서 옷 선물을 받으면 마음에 안 드니 다른 걸로 바꿔주세요 이런 말 한마디 못하고 입고 다닐 때가 있었다.

또 사람들은 어찌나 정이 넘치는지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내 친구 아들 옷까지 선물로 주었는데 나는 친구에게 차마 그 선물을 전해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 옷.

한 번 보고 두 번 보니 눈이 이상해져 버린 건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뭔가 세상에 하나뿐인 옷이랄까.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집 갈 때 입으면 딱 좋을 거 같아서

옷을 입히고 친정집에 다녀왔는데 엄마 아빠는 이 옷 하나로 너무 좋아하셨고 재밌어하셨다.

역시 나쁜 선물은 없는듯하다.

한국에서 먹는 피스타치오맛과 다르게 소금을 넣고 볶아, 짠데 중독성 있는 맛이다.

그리고 시누이가 보내준 피스타치오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귀한 손님이나 잔치 때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인데  3킬로나 보내주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피스타치오 1킬로는 한국돈 만원 정도 하던 것 같은데 그 돈이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꽤 비싼 편이다.

큰 시누이는 우리가 피스타치오 귀신인걸 알고 가끔 보내준다.

나와 남편은 피스타치오를 자리 잡고 앉아 먹기 시작하면 누가 옆에서 그만 먹으라고 할 때까지 까먹는데 남편은 많이 먹어서 가끔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도 했다.

작년쯤이었나.

시누이네 쌍둥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하여 가방이랑 안에 공책과 연필을 가득 넣어 선물을 보내준 적이 있다. 또 시누이 큰딸에게는 바비인형을 선물로 사고 조카들에게 성장에 필요한 비타민과 메이커 신발을 사서 보내기도 하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무언가 해주면 바라는 심리가 생겼는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에 없는 좋은 선물을 보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어느새 하게 되었는데 우즈베키스탄에 한번 다녀온 이후로는 그런 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갖고 싶다고 욕심낼만한 우즈베크 물건을 찾지 못해서 일수도 있고  

시댁 식구들과 정이 들고부터 물질적인걸 먼저 따지기보다 사람의 정성과 마음을 느낀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에 있을 때 내가 좋아하던 피스타치오와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만들 때 필요한 향신료와 오쉬(우즈베크 음식)를 만들 때 필요한 기름 등 을 시누이가 신경 써서 자주 보내주는데 그런 것도 당연하게 느낄 때가 있었지만 그 마음을 이제야 제대로 받은 것 같다


용돈도 마다하고 시어머니는 한국에서 우리 딸을 돌보아주시고 계시고  어머님의 빈자리를 작은 시누이가 대신하여 아버님과 함께 지내며 집안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시집간 큰 시누이도 자주 아버님께 가서 집안일도 돕고 음식도 해주고 그러면서 어머님께 매일같이 영상통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하는데 문득 내가 며느리로서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5월에 어머님은 우즈베키스탄에 갈 예정이었지만 바이러스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가게 되면 나는 고마운 가족들을 위해 한국인 며느리가 해줄 수 있는 선물을 보내려 하는데 어떤 게 내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더 잘났고 요즘 사람은 이렇다며 콧대 높은척했던 나지만 항상 나는 남편과 우즈베키스탄 가족들에게 많은 걸 배운다.

국제결혼.

맞다 틀리다, 잘났다 못났다가 아니라 다르다에 관점을 두고 나는 항상 좋은 것을 배워보자는 생각의 연습을 하고 있는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즈베크 킬른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