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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in May 26. 2020

우즈베크 남편이 준비한 생일선물

머니머니 해도 머니

20.05.24

드디어 금식을 하는 라마단이 끝났다.

올해 라마단을 하지 않은 나지만 저녁을 두 번 차리거나 기다렸다가 같이 먹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끝나서 좋았고, 혼자만 군것질을 하고 있으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제 같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뱃살만 늘고 있다고 스트레스받던 남편이 라마단 후 5kg가 빠져서 뱃살이 쏙 들어갔다고 좋아하는데 생각지 못했던 작은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 주게 된 시간들이었다.


며칠 전 나의 생일은 라마단 기간이기도 했고 남편의 한국어 수업 때문에 특별할 것 없이 생일을 보내었다.

특별했다면 외출 후 집에 들어갔을 때 어머님과 딸내미가 준비한 소소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작은 서프라이즈가 있었다.

미니케이크와 인형 선물

뭐가 이쁘다고 이런 걸 준비해주신 건지 죄송하면서도 시어머님한테 받은 서프라이즈라 그런가 기분이 더 서프라이 했고,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딸이 어느새 이렇게 부쩍 커버렸는지 기분이 이상했다.


서로가 바빠 만나지는 못했지만 생일날은 오랜만에 친구한테 연락이 와서 안부도 묻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모바일로 보내온 메시지와 선물들을 받으면서 대수롭지 않았던 내 생일이 어렸을 때 손꼽아 기다렸던 생일만큼이나 설레고 좋았다. 남편은 생일날 무신경하게 축하한다는 말뿐이었지만 괜찮았다. 아껴야 하니 생일선물 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니까. 말을 참 잘 듣는 남편이었다.


샤로프든은  생일이 있던 주말, 라마단이 끝나는 날이니 친정부모님을 집으로 초대하자고 했고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자고 하였다.

(라마단이 끝나는 날은 무슬림들의 최대의 명절이며, 음식을 나눠먹고 안부를 묻고 무언가 나누고 베푸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부모님이 집에 오시는 걸 알고 있어서 어머님과 우즈베크 전통음식인 오쉬와 쌈싸(우즈베크 만두)를 준비하고 혹시나 잘 못 드실까 봐 나는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잡채를 만들었다.

장을 보기 위해 샤로프든과 마트에 갔는데 남편은 왜 이렇게 배가 자주 아픈지 마트에 가서도 화장실 간다고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결국 혼자 장을 보고 주차장 앞에서 기다리는 남편과 같이 집으로 향했고, 내려서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샤로프든이 트렁크에서 큰 상자 하나를 꺼내고 있었다.


뭐야 자기. 이거 내 거야?


샤로프든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엄청 큰 케이크 박스를 꺼내었다.


이렇게 큰 케이크는 처음 보네. 이런 걸 언제 준비했어. 자기가 직접 주문한 거야?


남편이 빵집에 전화를 걸어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을걸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고, 한국생활 9년 차라 그런지 아무것도 혼자 못할 것 같았던 남편이었는데 내가 너무 저평가를 했던 것인지, 이제 제법 한국생활이 능숙해진 건가 싶어 대견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감동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을 더 빛나게 했던 건 케이크 위에 초가 들어있는 봉투가 아닌 옆에 딸린 은행 봉투가 내 눈을 사로잡았는데 어느 나라든 세계 공통으로 선물 1순위는 현금이 아닐까 싶다.


사실 생일날 무신경하게 축하한다는 말뿐이었던 남편이 생일이 지나고 갑자기 이런 서프라이즈를 해주어서 깜짝 놀랐다.

필요 없다고 항상 말하는 나지만 받으면 입이 귀에걸려 상대방이 대번에 알아버리는 내 표정을 숨길수가 없었다.

남편에겐 받는 것보다 주는걸 더 좋아하는 나라고 생각했지만, 남편이 준 생일선물이 소중한 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든든한 마음을 들게 해 주어 그런 건지  아주 많이 기쁘고 좋았다.


살다 보면 남편이 다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단점보다 장점을 더 많이 보려고 할 때, 싸울 일이 생겨도 무심하게 그냥 넘어가 줄 때 그리고 말이라도 좋은 말을 한번 더 내뱉을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이런 감사한 마음을 잘 기억하고 간직해서 싸움이 나려 할 때 남편에게 받은 좋은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길 바라며 금방 금방 잘 잊어버리는 나는 오늘도 감사일기를 썼다.

이날 친정부모님도 우즈베크 음식에 이제는 입맛 적응이 어느 정도 된 건지 맛있게 다 드셨고 손주의 재롱을 보며 다 같이 식사를 하시다가 또 부리나케 가셨다.

케이크는 부모님께도 싸드리고, 시어머님은 경비아저씨와 옆집사람들에게 케이크를 나눠주자고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아 가까이 살고 있는 이모님과 앞집에 사는 친한 우즈베크 지인에게만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명절이기도 했던 이날은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가족들에게 많은 전화가 와서 서로 안부를 물었고 우즈베키스탄 가족들도 명절이라 다들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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