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선택
엄마. 나 미국으로 유학 보내줘!
나는 학창 시절, 엄마에게 미국에 보내달라고 한참이나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해외에 살고 있는 친척들이 학년을 올라갈 때마다 한 반에 한 명씩은 꼭 있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우리 집은 아빠는 7남매에 엄마는 5남매지만 이렇게나 많은 식구들 중, 그 누구도 해외에 살고 있는 가족은 나에게 없었다.
그 친구들은 방학이면 걱정 없이 외국을 편하게 다녀오는 게 마냥 신기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난 영어권의 나라에서 살다온 친구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이 부러웠고, 알게 모르게 그 친구들이 멋있어 보였다.
학창 시절 나는 그렇게 해외에 대한 환상 속에 젖어 좋은 점만 보면서 외국에 나가 살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뭔가 멋진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착각한 것 같다.
부모님께 외국 타령을 백날 해봤자 철없고 공부엔 관심이 없는 이런 나를 보내줄 리가 없었고, 그렇게 나는 외국에 대한 환상을 접고 잊고 지내야 했지만 영어시험을 망칠 때면 괜히 엄마 탓을 하며 나는 내 자식에게 꼭 외국생활을 하게 해 줄 거라 다짐하였었다. 개방적인 아이로 키우겠노라 결심한 것이다.
사실 나는 자식을 낳기도 전인 오래전부터 자식에 대한 확고한 교육관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로 공부에 대한 강요를 하지 않는 것, 남들이 하니까 우리 아이도 시키자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외국어를 잘하고 멋있어 보이려는 외국생활의 환상 속에 빠진 것이 아닌 우리 아이들이 경험이 많은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나이 또래 친구들에 맞게 공부를 해야 하고 배워야 할 것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많이 보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걸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내가 서른이 넘는 나이가 되도록 해외여행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따라가지도 못하는 공부를 부여잡으며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았던 내 과거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생각들이 한국에서만 나고 자란 나보다 인생의 반이상을 해외생활을 하며 산 남편을 보면서 나의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외국인으로서 받는 어쩔 수 없는 차별들, 자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받을 수 없는 혜택들, 외국어와 외국인들과의 삶 속에서의 어려움 등을 옆에서 듣고 지켜본 나로서 그의 삶이 순탄하고, 지금의 한국생활이 다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그것도 한동네에서만 나고자란 나와는 다르게 많은 걸 보고 느끼고 경험한 남편이니만큼 언어에 대한 지식도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타지에 적응하는 능력도 힘들었던 만큼이나 장점들도 많이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외국인과 결혼하면서 나의 생각이 어쩌면 더 현실성 있는 삶이 된 것 같아 다문화가정의 삶도 괜찮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나는 아이에게, 한국생활과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생활 그리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아닌 제3의 나라에서 아이가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자랄 수 있게 키우겠노라 다짐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확고했던 나의 교육관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면서 모든 게 어렵게 느껴졌고
어린 딸아이와 뱃속의 아이를 품으며 요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생각했던 아이의 교육방식과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를 품 안에만 가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하는 것이 어쩌면 부모로서 많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올해 봄이 되면 시어머님은 잠시 우즈베키스탄에 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국에 체류 중이고 우즈베키스탄에 못 간 지 2년이나 흘렀다.
둘째 아이까지 봐주시기로 하신 어머님께선 바이러스가 주춤해지고 괜찮아지면 바로 출국하여 가족들을 보고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다녀오리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 듯하였는데 문제는 시어머님은 우리 아이와 함께 가고 싶어 하신다.
나에게 같이 가도 되는지 매번 물으시는데, 시아버님과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가족들이 꽤나 보고 싶어 하기도 하고 어머님도 임신한 나를 생각해서 딸아이를 데려가려고 하는 듯했다.
언제 가시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날은 아이와 놀다가 지쳐 어머님과 함께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또 가까운 거리도 아닌 우즈베키스탄을 엄마인 나도 없이 어떻게 보낼까 생각에 힘들어도 내가 무조건 데리고 있어야지라고 결심하는 요즘이다.
내년이면 다섯 살인 딸이기에 어머님이 가시면 내가 데리고 있다가 유치원에 보내 볼까도 생각했고,
샤로프든 에게 이야기하면 확실한 의사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주는데 그래서 더 고민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고민인 이유도 무슬림 집안의 아이로 태어나 지금의 우리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에 유치원에 미리 식단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지낼 수도 있다는 것에 미안함과 무언 지모를 불안함이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았다.
아직 우리 아이는 어린데. 한국에서의 생활이 아이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경험 많은 아이로 키우기로 나 스스로 다짐해놓고 우즈베키스탄 가족들에게도 못 보내, 유치원도 걱정돼,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어떻게 보면 다른 부모들보다 아이를 더 끼고도는 것 같아 나에게 화가 나기도 하면서, 아이를 위한 것이 어떤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많이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도 든다.
그곳에 가면 많은 가족들이 있고 또래 애들도 많아서 한국에서 시어머님과 집에서 보낼 때보다 더 즐겁게 있을 것 같아 보내고 싶다가도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프기라도 할까 싶어 여러 가지 고민들이 나의 결정에 발목을 잡는다.
성인이 되지 않은 자식에게 부모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그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
점점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듯했다.
어린 나이에 아들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로 공부시키려고 보내고 졸업 후 러시아로 보내고 한국에 보내면서 시부모님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요즘 들었다.
사실 나도 이런 개방적인 엄마가 되리라 생각하였었는데 항상 생각과는 다르게 살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태어나 두 나라 사이의 문화나 여러 차이에서 느끼는 불안함과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부모로서 더 단단 해질 필요가 있다고 항상 생각하는데 나의 하나하나의 선택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어렵게만 느껴지는 요즘, 어떻게 해야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인지 어떤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답답함에 책장에 꽂혀있는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꺼내 읽었는데 책의 중간에 이런 말이 있었다.
양육이란 없는 것을 채워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이 안에 있는 그것을 행복하게 꺼내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엄마 노릇'이라고
-엄마의 자존감 공부 中-
김미경 작가님의 말씀처럼 엄마인 내가 항상 즐겁게 살고 노력을 통해 뭔가를 이루어내고 매일 성장하면서 자존감의 텃밭을 늘 풍성하게 가꿔 아이들이 나를 통해 자존감을 마음껏 충전해 갈 수 있기를.
그렇다면 어느 나라던, 어디에 살던, 어떤 환경이던, 나도 아이들에게 늘 행복을 주는 멋진 부모가 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