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환대받는 사회는 모두가 환대받는 세상이다
https://youtu.be/C6iEOLIoh5A?si=zt6oO_UR7_Y9kxu1
감상
로베르트 슈만,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연주: 정명훈)
"조용히 해야 한다면 조용히 하자는 규칙을 써주세요. 안전해야 한다면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어린이들도 규칙을 배우고 지킬 수 있어요. 어른들은 못 가는 데가 없는데 어린이들은 왜 못 가는 데가 있나요."
("우리도 규칙 지킬 수 있어요", 아이들이 직접 말한 '노키즈존 차별', 민중의 소리, 강석영 기자, 2022년 5월 4일자. https://vop.co.kr/A00001612387.html )
2022년 5월 5일,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시민단체들은 어린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어린이차별철폐의 날'을 선포했다. 목표는 어린이가 차별받지 않고 온전한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노키즈존'이라는 낯선 시스템이 생겨났을 때 당혹스러웠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배제적인 방식을 선택하고 용인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신상 카페나 핫플레이스를 보면 노키즈존인지 아닌지 꼭 확인한다. 노키즈존이라고 써놓은 장소는 가지 않는다. 어른들은 자기들도 어린이였던 시절을 잊고, 마치 올챙이 시절 없이 팔다리가 생겨 개구리가 된 것처럼 어린이들을 낯설게 바라본다. 무슨 철학이라도 되는 양 식당이며 카페에 시그니처처럼 '노키즈존' 문구를 써붙여 놓은 모습이 씁쓸하다.
'우리 가게가 노키즈존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구구절절 써놓은 업장도 봤다. 바쁜 영업시간에 손 많이 가는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업주 마음도 이해한다. 소통이 어려운 양육자와 천방지축으로 뛰는 어린이도 손님이다 보니 입을 꾹 닫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그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이 사회의 일부분이며, 불편하다고 배제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대화하고 양해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다.
어린이 동반 손님이 머물고 간 자리가 얼마나 지저분한지 사진을 찍어 올려 공유한 한 자영업자의 카페 게시판을 봤다. 댓글은 '힘들게 응대하지 말고 그냥 노키즈존 하세요'라는 권유로 빼곡했다. 논란의 글이 '그래도 어쩌겠어요, 노키즈존을 설정하는 건 내키지 않네요'라는 말로 귀결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의 이상적인 바람일 뿐일까.
어린이들은 어른들과 같은 공간에 머무를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가정에서 배운 예절을 공공장소에서 실천할 기회도,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에게 새로운 배움을 얻을 기회도 잃게 되었다. 실수하고 혼나고 훈육받을 기회조차 가질 수 없게 되면서,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조차 배울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실수를 용납해주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이 어른처럼 의젓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노키즈존'이 차별적인 표현이라며 '노배드페어런츠존(나쁜 부모 입장 금지 구역)'이라고 명칭을 바꾸자는 말도 나왔는데, 본질은 같다. 결국 아이와 관련된 사람, 아이 자신이든 아이를 대동한 어른이든, 이 사회가 끊임없이 통제하고 간섭할 권리를 갖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차별은 어린이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다. 시민의 이동을 불편하게 하는 장애인,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될 수 있는 어린이 손님,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는 소수자들(인종, 언어, 출신국가, 학력, 나이, 병력, 성적지향). 이들은 다수와 강자를 위해 자신을 숨기고 뒤로 물러나 침묵해야 하는 존재들로 여겨진다. 어린이, 약자, 소수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존재를 일상에서 지우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동등한 존엄을 지닌다. 나이가 어리다고, 몸이 불편하다고, 성적 지향이나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그 존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돈이 없다고, 가족이 없다고, 병을 얻었다고 해서 이 사회에서 덜 중요하거나 함부로 해도 좋은 사람은 없다.
이 사회가 공정하고 순수한 어린이 마음으로 살아도 괜찮은, 안전하고 너그러운 곳이 되었으면 한다. 어린이들이 환대받는 사회는 결국 우리 모두가 환대받는 사회다. 그 작은 변화가 내 피아노 학원 레슨실 문턱에서부터, 동네 카페 입구에서부터 시작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