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식사, 폭식
폭식증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내가 첫 번째로 한 생각은 나의 상태와 폭식 습관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아봐야겠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폭식증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나는 폭식 후 어떤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는지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에 생각해보면 좋은 결정이었다. 폭식증을 올해로 4년째 겪으며 얻은 깨달음은 이러한 기록의 조각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먼저 나는 나에게 폭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의하기로 했다. 사전적 의미에서 폭식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교해 동일한 시간 동안 과하게 많은 음식을 먹는 행위를 반복하고 이를 스스로 조절할 수 없다는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나는 '반복적인 행위'라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행위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단순히 많이 먹는 것과 폭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폭식은 스스로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폭력적인 식사 혹은 폭풍처럼 먹어대는 행위, 그것을 나는 폭식으로 정의했다.
다음으로 폭식 후 느끼는 몸의 상태를 적어보기로 했다. 사람마다 폭식증은 원인도 증상도 다양한데 나의 경우는 다음과 같았다.
1) 토하고 싶은 감정이 들 정도로 속이 좋지 않다. 속이 쓰리고 뜨겁다.
2) 많이 먹고 나면 얼굴이 울긋불긋해지고 볼이 빨개진다. 얼굴과 팔의 아토피도 올라온다.
3) 배가 눈으로 보기에도 볼록 올챙이처럼 튀어나와서 앉아있기 불편해 항상 베개에 등을 대고 누웠다.
4) 몸의 피로가 전반에 느껴지고 무기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5) 젤리, 초콜릿 등 단 것 위주로 폭식을 심하게 하고 위염에 걸려 2일간 앓아눕기도 했다.
나는 음식을 먹는 단순한 행위가 이토록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폭식증을 통해 처음 깨달았다. 바보처럼 기계적으로 음식을 주워 삼키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TV 앞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아픈 몸은 짜증으로 이어졌고 곤두선 성깔머리는 주변인을 향했다. 내 짜증을 받아준 유일한 사람은 엄마였다. 속이 아프고 따갑다며 못된 딸은 항상 엄마를 원망했다. 내가 이렇게 다 먹기까지 왜 말리지 않았냐고 죄 없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엄마의 딸은 멍청하고 한심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못된 딸인 나 자신을 혐오했다. 지금에 생각해보면 못된 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나약하고 멍청하다고 나를 그렇게 미워하진 말았어야 했다.
폭식 후 마음에는 항상 큰 요동이 있었다. 처음 음식을 먹는 시간들은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후회가 잇달았고, 오늘을 또 폭식으로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먹고 죽을 거야’, ‘나는 나를 포기했어. 그러니까 오늘 죽을 때까지 먹을 거야’라며 엄마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날의 폭식을 혼자 합리화했다. 말하는 대로 된다고 항상 이런 말을 내뱉은 날은 토하기 직전까지 먹고 울었다. 나를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때마다 깨달았다. 내가 너무 싫고 끔찍했다. 뚱뚱해질까 봐 무서웠다. 조절 못하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배를 덮은 바지를 살짝 들고 터질 듯한 배를 꾹꾹 눌렀다. 볼록 나온 배가 너무 싫었다.
나는 폭식할 때마다 병원에 가고 싶었다. 치료를 받고 싶었다.(그러나 실제로 병원에 가는 것은 이로부터 약 2년 후다.) 영원히 폭식할까 봐 두려웠다. 삶에 대한 의지도 사라져 갔다. 모든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점점 폭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내 모습이 끔찍했고 미웠다. 왜 먹는 것 하나 조절하지 못할까 생각하며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다. 엄마는 나의 상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셨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 그렇게 먹냐고, 조절해서 먹어야지라며 매번 똑같은 질문으로 물어오는 엄마에게 나는 화를 내며 소리를 내질렀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답을 몰랐으니까.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면 엄마에게 늘 미안했다. 몸이 아프고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공부도, 운동도, 심지어 친구들을 만나고 매주 가던 교회에 가는 것까지 싫어졌다. 나는 음식 앞에 한 없이 무력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