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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쿠키 Nov 06. 2020

2. 19살이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싸고 멍청한 방법

19살에 처음 시작된 폭식증, 그때는 1년이면 다 나을 줄 알았다.

나의 폭식증은 19살, 2017년부터 시작되었다. 그 전에도 음식에 대한 약간의 강박은 있었다. 그러나 식습관 문제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고 스스로 식이장애라는 것을 자각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수능을 3주 남긴 중요한 시기, 시험이 다가오는 압박 속에 폭식증은 점점 심해졌다. 2017년 11월 5일, 나는 그날도 토할 때까지 음식을 욱여넣고 소리 내 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의 고통스러운 상태와 감정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다. 이것이 나의 식이 장애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다.


2017.11.05 일
식이 장애 일기


자는 시간 빼고 다 먹는다. 토요일은 오후 5시까지 자습을 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밤 11시~12시까지 쉬지 않고 먹는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원한다. 그래서 한 가지 음식을 먹으면서도 다음에 먹을 것을 생각하다 보니 먹으면서도 행복하지가 않다. 오히려 두렵다. 배부름에도 불구하고 계속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가 온다.


제대로 밥을 안 먹고 간식이나 빵을 조금씩 먹으니까 자꾸 음식을 찾는 거라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물론 그것도 맞다. 그런데 지금은 밥을 든든히 먹고도 폭식한다. 폭식은 이미 내게 습관이 되었다. 이제는 맛을 느끼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폭식하는 행위를 즐기고 있었다. 사실 안 먹어도 되는 거 아는데 먹는다. 그냥 음식이 없으면 불안하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배가 불러서 짜증이 나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더 나 자신이 미워져 ‘먹고 죽자’라는 생각으로 마구 먹는다. 음식이 앞에 있으면 다 비워야만 성이 풀린다.


그런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급식을 먹을 때는 이렇게 먹지 않으니까, 그때와 지금의 괴리감이 느껴져 더 마음이 속상하다. 나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무섭고 힘들다. 그만 먹고 싶다. 진짜 그만 먹고 싶은데 멈출 수 없어서 오늘도 먹고 울었다.


일요일은 보통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 먹는다. 점심으로 볶음 김치랑 밥 한 그릇을 먹었다. 그리고 마요네즈에 밥을 비벼서(엄마는 속 버린다며 이렇게 먹는 것을 무척 싫어하신다.) 햄이랑 또 한 그릇 먹었다. 그때부터 입이 터져서(폭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을 나는 '입이 터졌다'라고 부른다) (무려) 고구마 5개, 빵 1개, 아이스크림 1개, 젤리 2 봉지, 어묵 3장(생어묵을 그냥 집어 먹는다), 귤 5개, 아몬드까지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엄마는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건강한 간식으로 먹으라고 대용량으로 사두시곤 하는데 1달은 먹을 양을 나 혼자 4~5일 만에 바닥내곤 한다. 꿀도 막 숟가락에 짜서 그냥 먹는다. 항상 단 것 위주로 폭식하다 보니 속이 달아 불타는 듯했다.


토는 무서워서 못한다. 중학생 때 다이어트를 심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음식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이제는 폭식 자체를 즐긴다. 폭식은 나에게 화를 내고 자학하는 방식이다. 미련한 것을 너무 잘 아는데 제어가 되지 않는다. 정말 그만 먹고 싶다. 그렇게 처먹고 다시 저녁에 빵을 2개 사 와서 먹었다. 지금은 밤 10시다. 속이 너무 안 좋아서 가스활명수를 먹었다. 살찌는 건 이제 문제가 아니다. 통통한 몸매도 좋으니 폭식이라는 행위를 이제는 끊어내고 싶다. 그저 정상적으로만 먹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당시의 나는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모두 먹는 것으로 풀었다. 공부에 매진하기 바쁠 수험생 때의 폭식은 번번이 내 발목을 잡았다.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은 온전히 폭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수능을 코 앞에 둔 11월, 정점을 찍은 폭식 끝에 나는 내가 너무 밉고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 괴로운 순간을 흘러가는 시간 속에 언젠가 망각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감정을 쏟아 담았던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어김없이 음식을 찾아 먹었던 그때. 음식을 먹었다기보다 '먹는 행위', 말하자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씹는 행위'를 반복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다. 나는 폭식하는 순간에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 꾸역꾸역 목 끝까지 음식을 밀어 넣고 나면 항상 후회와 고통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폭식을 그만둘 수 없었다. 폭식은 소심한 고3이었던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가장 싸고 멍청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취하는 행동은 다양하다. 피로가 풀릴 때까지 잠을 자는 사람이 있고 땀이 날 때까지 운동을 하는 사람, 또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학입시'라는 눈 앞에 닥친 버거운 목표 앞에 쉬는 시간조차 계산해 아껴가며 달려야 했던 나는 잠, 건강, 휴식 모두 사치로 여겼다. 그래서 나는 계속 먹었고, 공부했다. 공부하기 위해 먹었고,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먹었고, 힘들고 화가 나는 마음을 남에게 털어놓는 것이 서투른 까닭에 부정적 감정을 삼켜 누르고자 먹었다.


19살의 나는 참 어리석었다.

그렇게 19살에 나의 폭식증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때는 대학에 가면, 오래가도 1년이면 다 나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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