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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축하해! 는 몇 번 들려줘야 할까

T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감성

by 토마토남

우리가 만나고 맞이하는 나의 첫 번째 생일이었다. 우린 경주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그녀를 차에 태운 순간 들은 첫인사는 "생일축하해~!"였다. 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그 밝은 모습에 기분이 참 좋았다. 생일 축하는 아침 눈 뜨자마자 카톡으로 먼저 받기는 했지만, 역시 축하는 글이 아닌 실제 말로 듣는 게 좋긴 좋다.


들뜬 기분으로 운전을 이어나가길 10분. 교차로를 3곳 정도 지나쳤을까. 그녀가 갑자기 애타게 나를 불렀다.

"오빠오빠오빠."

"응?"

"생일축하해!"(함박웃음)

"또?"

"갑자기 또 나와서!"


그렇게 경주에 도착할 때까지 30번, 경주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또 30번, 저녁 먹고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또 30번, 숙소에 들어와 씻고 잠들 때까지 또 10번. 생일축하해!라는 말을 최소 100번은 들은 것 같다. 심지어 다음날도 생일 축하는 계속되었다. 생일은 지났지만 생일 기념 여행 중이니 아직 생일 축하도 끝난 게 아니라고 한다. 결국 1박 2일간의 여행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생일축하는 계속되었다.




생일축하해!라는 말을 듣는 초반에는 재미있었다. 나의 생일을 나보다도 더 즐기는 것 같아서 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점차 그 감정은 신기함으로 바뀌어갔다. 백이면 백, 생일축하한다는 모든 말에 매번 200%의 진심을 담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렇게 계속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지?'

'이번 생일의 축하 컨셉인가? 하지만 컨셉도 저건 불가능하다. 저렇게 쉴 틈 없이 지속할 수는 없다.'


같이 놀고 즐기는 다른 활동도 다양하게 하는 와중에 계속해서 저렇게 축하가 떠오른다는 게 신기했다는 말이다.

(물론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과, 웃음을 보면 누가 봐도 진심 100%라는 걸 알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쉴 틈 없이 저렇게 진심이 뿜어져 나오는 게, 그 진심이 축하해라는 말로 수 없이 표현이 되는 게, 컨셉이라고 해도 믿기 힘들 정도로 신기하고 고마웠다는 것이다.


그녀의 축하말은 풍부하고, 다채롭고, 매 순간이 진심이고, 끊이지 않았고, 넘치도록 밝고 행복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점차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에 주변 지인이나 친구 가족의 생일 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많아야 두 번 정도 했던 것 같다. 부족해도 진심을 나름 듬뿍 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현은 내가 수용가능한 감정의 최대치를 아득하게 초월해 버렸다. 그리고 내가 되돌려줄 수 있는 표현의 최대치 역시 아득하게 초월해 버린 것이다.


점점 축하를 받는 게 어색해졌다. 이런 축하와 분위기를 받아들이지 못해 몸이 베베 꼬이는 기분이었다. 용량을 초과했기 때문에 오류가 난 것인가. 난 해석이 불가능한 이 오류를 그녀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축하를 받아본 적이 없어서 뭔가 너무 어색하네, 뭔가 몸 둘 바를 모르겠어."

"그래? 그럼 얼른 익숙해져야겠네!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




넘치도록 축하를 받은 나의 생일로부터 1달 뒤... 그녀의 생일이 찾아왔다. 과연 나도 그녀에게 못해도 100번 이상의 축하말을 전해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한 7번 정도 말한 것 같다. 같이 생일을 즐기다 보니 100번 말해야지 했던 결심도 까먹어 버렸는데, 어떻게 그녀는 그렇게 지속적으로 축하말을 떠올렸던 것일까? 같이 노는 상황조차 뒤로하고 생일 축하가 떠오를 만큼 마음속이 축하로 가득 찼던 것일까? 부족한 축하와 별것 아닌 편지에도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며, 뭔가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와 세상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생일에는 여전히 생일축하해!라는 말을 100번 이상은 꼭 한다. 매번 진심을 담는 것 역시 여전하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나를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한, 그녀 스스로도 더 행복해지기 위한 주문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여전히 표현이 부족하지만, 진심을 담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나의 부족한 표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진심이 담긴 것을 알고 있고 아직도 종종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늘 고맙고 기분도 좋지만 사실 아직도 문득 이런 감성이 어색할 때가 있다. 그녀는 나에게 그냥 생각하지 말고 느끼라고 한다.


생각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통해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모호해도 나쁘지 않다.

감정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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