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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Aug 10. 2020

내 안의 죄책감.

아픈 것도 억울한데.

나는 암 진단 후 여러 상황들에 두려워하며 공황장애를 겪었다.


그 여러 상황들 중에는 내 병을 시댁에 알려야 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땐 그것이 왜 그리 두려웠는지. 뭐가 그렇게 죄스러웠는지.


아픈 건 난데 왜 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며 나를 더 아프게 한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암 확진을 받은 날 나는 병원에서 나온 후 몇 지인들에게 암환자가 됐음을 참 쉽게도 알렸다.

하지만 제일 먼저 알렸어야 할 친정과 시부모님께는 문자 한 통 보내지 못했다. 도저히 말할 자신이 없었 생각하면 그저 머리가 아팠다.

내 병은 부모님들만 아실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사돈의 팔촌까지 알게 될 일이다.)

그냥 이대로 영원히 비밀로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 속도 모르고 남편은 시댁에 언제 말할 거냐며 성화였다. 장기간 아이를 맡겨야 하는데 미리 말해야 엄마도 시간을 빼놓지 않겠냐며.

나는 그런 남편이 미웠다.

나의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남편이, 내 상태를 무시한 채 상황 정리를 하려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에게 짜증 한번 낼 수 없었다. 그놈의 죄책감 때문에.

암환자를 아내로 두게 된 불쌍한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그저 혼자 울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버텼다.

내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건강한 아내와 아이들과 잘 살고 있을 텐데.

나는 왜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건강한 아내와 엄마가 되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 따위를 하며 스스로 죄인이 되었다.




시부모님은 좋으신 분들이었다. 아버님 어머님은 우리 부부에게 언제나 큰 나무가 되어 주셨고, 엄마가 없는 나에게 시댁은 쉬어갈 수 있는 쉼터와 같았다.

출산 후 종종 입원했던 나를 대신해 어머님은 아이를 정성껏 돌봐주셨고 집이 근처라 평일에 불쑥불쑥 찾아갔는데도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시댁에 가면 난 아이와 놀기만 할 뿐 식사 준비와 모든 것은 부모님이 해주셨다.

그곳은 늘 행복하고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큰 병에 걸리고 보니 아니었다. 내 마음에서, 나는 그저 그 집 며느리였다.

딸이 아닌 내가, 며느리로서 시부모님께 내 병을 알리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결혼한 지 이제 7년.

암환자 며느리라니 얼마나 기가 막히실까. 얼마나 원통하실까.


시댁에 알리는 순간 나는 죄인이 될 것이다.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들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마음과는 달리 남편은 하루빨리 자기 집에 알리지 못해 조급해했고 어느 날 혼자 가서 내 상태를 말씀드리고 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지금 뭐 하고 있어? 어제 큰애한테 얘기 다 들었어. 누워만 있지 말고 산책도 좀 하고 그래. 집에만 있으면 뭐하냐, 우울하기만 하지. 이미 받아놓는 밥상인데 어쩌겠어! 무를 수도 없고. 잘 치료하면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무뚝뚝한 어머님과 무뚝뚝한 며느리의 담담하면서도 짧은 통화가 끝났다.

 

직전까지 속이 울렁거려 소파에 누워있었건만, 통화가 끝나자 묵혀있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했다.

마치 묵직한 죄책감이 소화되기라도 한 것처럼.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나는 왜 나 자신만 생각하지 못했을까 조금은 한탄스러웠다.

시댁이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마음이 이 정도로 편해지는데... 왜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느라 나를 고생시켰을까.

그냥...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칠걸.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해야 했을까.


암환자의 죄책감은 필연적인 것일까. 아니면 나만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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