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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Aug 05. 2021

아니 하루에 집을 7개나 본다구요?

집 구하는 것 뿐 아니라 집 보는 것도 힘든 일이구나

다음날, 퇴근 후 약속된 부동산에 들렀다. 멀리서 부동산 간판을 확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는데 뭔가 낯선 그림에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 부동산은 내가 이제껏 봐왔던 부동산과 달랐다. 보통 사무실 안에 두 세개 책상과 중개인이 있던 부동산과는 다르게 그 곳은 20평도 안되는 공간에 30개가 넘는 책상과 사람들이 있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고객센터처럼 물건도 사람도 빽빽한 공간이었다. 어색하게 문을 열고 들어선 나를 그 많은 사람들이 맞아주었다. 그 중에 나와 연락했던 중개사분이 나오셨고 우리는 작은 차를 타고 이동했다.


부동산에서 가까운 빌라촌으로 먼저 들어갔다. 지하철역과 멀지는 않았는데 구불구불 골목길을 지나야 빌라가 나왔다. 첫번째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신축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대학생, 직장인이 많이 살만한 흔한 원룸 빌라였다. 하지만 집은 꽤 좁았다. 지난번 부동산 투어 후 교훈을 통해 이번엔 금액을 타이트하게 잡았더니 역시 집은 좁고 낡아질 수 밖에 없었다. 방은 침대, 옷장, 좌식으로 펼쳐두는 상을 놓으니 벌써 꽉 차보였고 화장실은 세면대와 샤워기는 일체형이었으며 변기까지 좁게 붙어있었다. 중개인은 이 가격에서 이 정도 매물이면 정말 괜찮은거라며 이 집은 이후에도 보러올 사람만 4명이라고 했다. 나름 예쁘게 꾸미면 잘 살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전 동네에서 봤던 집들과 왠지 한 단계 낮은 느낌이 들어 선뜻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그 뒤로 우리는 서너개의 집을 더 봤는데 집 역시 위치만 조금 다를 뿐 내부는 비슷했다. 집이 조금 넓으면 창이 막혀있거나 엘레베이터가 없었다. 무언가 하나가 플러스되면 또 무언가 하나가 마이너스되는 식으로 비슷비슷한 집들이었다. 대부분 세입자가 있어 사진을 디테일하게 찍기 민망했기 때문에 메모장에 최대한 많은 부분을 기록하며 비슷비슷한 집들을 최대한 구분하고자 애썼다.


이 동네, 이 가격이면 이 정도의 집들이 나오겠구나라는 감이 어느 정도 오자 중개사 분은 근처에 내 예산보다 조금 높은 집들이 있는데 상태가 꽤 좋다며 구경해보자고 했다. 정말 영리한 영업 방식이다! 구경이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나머지 집들을 봤는데 보증금 1-2천만원만 올려도 집은 신축이 되거나 방이 0.5-1평 정도 넓어졌다. 마음에 드는 집도 있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한 예산을 벗어나니 조금 혼란스러웠고, 그 상태에서 방을 여섯개째 보니 이전에 보았던 모든 집들을 까먹을 지경이었다.


일곱번째 집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퇴근 후 바로 와서 저녁도 못먹고 3시간째 부동산 투어를 했는데 다시 부동산으로 들어가 오늘 본 집들의 등본을 뽑아보고 살펴보자는 말에 우선 다시 생각해보겠다며 부랴부랴 도망을 쳤다. 중개인은 지금 계약하지 않으면 집이 언제 빠질지 모른다며 나를 재촉했지만, 그때는 이미 시간이 9시를 훌쩍 넘겼고 생존을 위해 독립욕보다 식욕이 앞선 나는 근처에 문을 연 밥집에 들어가 배를 먼저 채웠다.


하루에 집을 7개나 보다니. 토요일에 2시간 안되게 3개 집을 보았을 때도 체력적으로, 감정적으로 지쳤었는데 평일에 퇴근하고 7개를 보니 밥을 먹는 그 순간이 뭔가 꿈만 같았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흡입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계속 오늘 본 각각 집들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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