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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Sep 09. 2021

그래도 다시 독립, 독립

나를 위해 독립하기

그 당시 집 구하기에 지쳤던 나도, 내가 진짜로 나가버릴까 걱정했던 부모님에게도 코로나는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여름이면 잠잠해지겠지, 가을이면 잠잠해지겠지 하며 외출과 집 구하기를 미루는 사이 코로나는 오히려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독립선언 후 부모님과 나는 유래 없던 냉전 상태로 돌입했는데, 한 집에서 계속 데면데면하게 살 수는 없으니 우리는 서로 구렁이 담 넘듯 우야무야 화해를 하고 지냈다. 나는 부모님에게 잘 보인 뒤 천천히 독립을 설득할 생각이었고, 부모님은 내가 집에 계속 붙어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엄마는 나와의 다툼(?)에서 느낀 바가 있었는지 초여름 무렵 갑자기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집 전체적으로 손볼 곳은 많았으나 25년간 쌓아 올린 살림살이를 한 번에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 우선 거실과 주방, 그리고 화장실 공사를 하기로 했다. 나의 독립과는 상관없이 우리 집은 한 번 정리가 필요하긴 했다. 그래서 나도 의견을 많이 보탰고 많이 도왔다.


집을 한바탕 뒤엎고 땀 흘리면서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인테리어

내가 우리 집의 인테리어에 '함께 했다'가 아니고 '도왔다'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다. 모두가 사는 집을 위해 다 같이 힘을 맞대자고 했지만 사실 모든 것은 엄마의 선택으로 결정되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샅샅이 뒤지면서 영감을 얻고, 집의 도면을 그리면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지만 대부분 묵살되었다. 처음에는 나랑 뜻이 맞지 않아 짜증도 났지만 결국 집은 엄마가 가장 많이 생활하고 사용할 공간이기도 하고, 나는 곧 독립할 거라는 생각에 많은 부분을 엄마에게 맞췄다.


엄마는 매일 주방 상부장 색은 뭘로 할지, 벽지는 어떤 타입으로 고를지 설레는 고민에 여념이 없었다. 엄마가 신나 하는 걸 보니 좋았고, 우리 집의 큰 변화에 기대도 됐지만 이와 별개로 독립에 대한 나의 의지는 커져만 갔다. 엄마와 취향이 다르다는 걸 느끼기도 했고 엄마 거 의견을 밀어붙이는 모습에 내가 처음 독립을 결심했던 때가 자꾸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한 방, 두 침대에서 나눠서 잔 우리 가족/ 동생 생일도 한 방에서 사이좋게 맞이하기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면서 우리 가족은 일주일간 호텔에서 생활했다. 각자 출근했다가 퇴근하고 모여 매일 저녁마다 호텔 근처 맛집 투어를 하고 다 같이 호텔로 돌아와 한 방에 누워 티비를 틀고 깔깔거리며 잠에 들었다. 특별한 경험이기도 했고 재밌는 일들만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이좋고 화목한 일주일을 보냈다. 아니, 솔직히 너무 잘 지냈고 행복해서 '그냥 가족들이랑 계속 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독립은 여러 이유로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호텔에 지낼 때도, 집 인테리어를 할 때도 '내 집이라면 이렇게 꾸몄을 텐데', '자기 전에 창가에 앉아서 책을 읽을 텐데'와 같은 생각을 계속했다. 그동안 부모님과 너무 감정적으로 부딪히며 독립 준비를 했었기에 부모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독립을 밀어붙인 것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기회로 크게 깨달은 것은 나는 가족이, 혹은 내 상황이 싫어서 독립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가족들과 함께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과 나 혼자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별개의 것이고 나는 나를 위해서, 나의 발전과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서 독립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시 확고하게 굳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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