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에서 오피스텔로 매물 필터를 바꿨다
본가 인테리어 공사를 마치고 집 정리를 하다 보니 시간은 흘러 날은 가을이 되었다. 코로나의 기세는 꺾일 줄을 몰랐고 우리 가족은 더 시간을 오래 보내게 된 가운데 나는 재택근무까지 돌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동생도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각자 집중 근무와 각종 화상 미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테리어가 된 우리 집에도 역시 각각의 공간은 없었다. 내가 공부방 책상에서 업무를 할 때면 동생은 침대방에서 상을 펼치고 업무를 했다. 그 와중에 엄마도 거실과 주방에서 할 일을 하셨고 갓 전역한 막내 동생도 다른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업무 시간도, 점심시간도 달랐다. 내가 TV를 보면서 점심을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면 동생이 나와 TV를 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간혹 내가 재택을 하며 야근을 할 때면 거실은 TV 소리와 가족들의 이야기 소리로 가득했다. 업무 시간에 벌컥벌컥 방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안 그래도 독립에 대한 갈등이 누적되고 있던 찰나에 이런 사소한 포인트들은 잠재웠던 나의 독립 욕구를 더욱 일깨웠다.
동네 찾기부터 부동산 투어까지 그 지난한 과정들을 다 거쳐야 하는 것까지 감내할 만큼 독립 욕구가 치솟았는데도 역시나 마음에 걸리는 건 부모님, 특히 엄마의 반대였다. 지난봄 이후로 혹시나 평화로운 분위기를 깰까 봐 우리 가족은 독립은 일부러라도 대화 주제에 올리지 않았었다. 때문에, 비록 나는 독립에 대한 생각을 꾸준히 해왔으나 엄마 입장에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덮은 문제가 다시 또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처럼 느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 조금씩 독립에 대한 의지를 조금씩 드러냈다.
'재택근무가 지속되면 나는 따로 집을 구해서 일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아, 이제 가을도 됐고 슬슬 독립해야겠다.'
엄마는 허공에 외친 내 말들을 모른척했지만 나는 충분히 티를 냈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독립 준비를 시작했다. 다행히 나는 이 전 두 번의 독립 준비에서 여러 교훈을 얻었다.
집을 고르기 전 명심할 것
1. 서두르지 말자.
괜찮은 집이라고 여겨 그날 밤 계약할 뻔 한 집이 서리가 끼는 집이었음을 잊지 말고 더 꼼꼼히 살피자.
2. 후회하지 말자.
좋은 집을 눈앞에서 놓치더라도 후회하거나 절망하지 말자. 그저 그 집과 나는 운명이 아닌 거다.
3.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조건을 택하자.
월세 조금 아끼자고 삶의 질을 포기하지는 말자. 월세 5-10만 원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삶의 질이 낮아진다면 무슨 소용일까? 월세 부담이 조금 되더라도 내가 스트레스받을 요인이 적다면 충분히 돈을 더 낼만하다. 어차피 나는 내 삶의 질을 높이고자 독립하는 게 아닌가?
이 교훈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나는 다시 부동산 투어를 준비했다. 이전에 봐왔던 두 동네는 접근성이 좋고 동네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 가장 큰 로망인 큰 창을 가진 집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집에서 밖이 내다보이지 않고 햇빛이 들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집이 마음에 들지 않을 거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적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독립할 이유가 없었다. 때문에 이번은 내 로망과 타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큰 창을 기준으로 세우니 빌라보다는 오피스텔 쪽이 내 조건을 만족하기 편했다. 오피스텔이 보통 월세가 더 높긴 하지만 보안도 조금 더 좋고 보통 풀옵션이기 때문에 가구에 들이는 돈도 적을 것 같았다. 부동산 앱에서 오피스텔 필터를 걸고 나니 이전 두 동네는 빌라 골목이 많아 알맞은 매물이 많지 않았다. 회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조금씩 이동하다 보니 생각보다 매물이 많은 한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친숙한 동네는 아니지만 몇 번 지나친 적이 있던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큰 대로변에 오피스텔 건물들이 꽤 많았던 기억이 났다.
퇴근 무렵 일을 마치고 오랜만에 엑셀을 켜서 그 근처 매물과 부동산을 정리하고 서너 개의 부동산에 문자를 넣었다. 그러고선 가방을 들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한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당장 볼 수 있는 집이 몇 개 있다고 하길래 나는 냉큼 바로 달려가겠다고 했다. 길을 찾아보니 회사에서도 30분 남짓한 거리였다. 오랜만에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내 인생 세 번째 부동산 투어를 하러 갔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야 만다는 각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