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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Nov 23. 2021

독립을 허가(?) 받다

엄마와의 1년간의 길고 긴 사투의 끝

퇴근 후 늦은 저녁이 되어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거실에 앉아있었고 나머지 가족들은 이미 자고 있었다. 집은 고요했다. 그제야 엄마와 나는 우리가 이미 한 번쯤은 했어야만 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 집을 나가려고만하니?"

"단순히 집을 나가려고만 하는 건 아니에요. 나는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고 가장 좋은 방법이 독립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지금 집 안에서도 너만의 공간, 시간을 가지면 되잖아. 아무런 방해도 하지 않을게."

"가족들이 방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무리 독립적으로 있는다고 해도 다섯 명이 사는 것과 혼자 사는  다를  같아요. 학생 때도 공부를  때면 독서실, 도서관을 녔고 지금도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면 카페에 가요. 북적북적한 집에서는 뭔가에 집중하기 힘들어요. , 그래서 집에서 조용히 쉬고 싶을 때도 집에 가족들이  함께 있을  온전히 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물론 이런 우리 가족, 우리 집의 모습이 좋을 때가  많아요.  가족들이, 우리 집이 싫다는  아니에요. 하지만, 오랫동안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원해왔고 특히나 요새는 집에 많이 있게 되면서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엄마는 우선 내가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독립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안도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조금 아팠다. 그동안 엄마와 싸우면서 홧김에 "그럴 거면 집 나가!", "나도 집 나가고 싶어!"와 같은 말들을 많이 주고받았었다. 홧김에 했던 말들이 엄마에게 '혹시나'하는 걱정을 안겨줬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집을 나가는 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아니? 혼자 살면 위험해. 돈도 많이 들고. 숟가락도 하나하나 전부 사야 돼. 알고 있니?"

"이미 어떤 숟가락 살지도 다 정해놨는데요?"


최대한 화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던 엄마가 처음으로 긴장을 풀며 어이없어서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저는 항상 독립에 대한 생각이 있었지만  번도 혼자 지내본 적이 없어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온전한 독립을 못할  같아요. 엄마 말대로 혼자 사는  후회하게  수도 있겠죠. 얼마  지나 다시 울면서 집에 돌아오고 싶다고 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한  이걸 해보지 않으면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계속 독립을 부러워하고 현실을 아쉬워할  같아요."


깊숙한 이야기부터 경제적인 부분,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ex. 지금 독립하면 결혼은 언제 하겠다는 거니?)에 대해 한참 대화를 하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이었다. 처음으로 침착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의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지만 아직 각자의 의견은 굽히지 않은 팽팽한 대립 상태였다. 집까지 다 구한 마당에 엄마와 나 사이의 논쟁은 타협점이 없었다. 지금 독립을 [하느냐 vs 마느냐] 오직 두 가지 선택지뿐이었다.


결국 시간이 늦어지자 엄마와 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로 일단 잠에 들기로 했다. 오랜 대화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게 걱정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뿌듯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제안-허락'을 받는 구조가 아닌 서로 설득을 하는 구조로 대화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틀에서는 물론 이 또한 나의 독립을 허락받는 과정이었지만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들어주었다. '엄마-딸'이 아니라 '어른-어른'으로서 대화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무언가 민망하고 어색하지만 엄마와 조금 더 친해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어 허둥지둥 출근을 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쁜 오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잘 알아보고 계약하고. 도와줄 거 있음 말해


이 말을 듣고 회사에서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모른다. 1년간 간절히 바라 왔던 말이기도 하고 엄마의 허락을 구하기까지 힘들었던 시간들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집을 계약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겁도 났다. 이제는 정말 내가 나를 혼자 오롯이 책임져야 했다. 누구를 핑계 대고 원망할 구석도 없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계속해서 함께 들었다. 나는 바로 집주인에게 연락해 집을 계약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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