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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ug 26. 2020

내일 마지막 날에는 친구들 모두 와서 인사했으면 좋겠다

한 주 먼저 시작한 방학 by 코로나 바이러스

31/Mar/2020


아들 방학이 갑자기 시작됐다.


원래는 10주를 다닌 뒤 2주간 방학을 맞는다. 

(호주 학교는 4 Term으로 운영된다 - 1 Term이 10주, 중간 방학 2주, 4 Term 뒤에는 긴 여름방학)


급변하고 강화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방침으로 주정부에서 한 주 먼저 쉬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정확히는 ’Student-Free’ 주간이며 필수적인 노동자(의료계 등)의 아이들만 학교에 나갈 수 있다. 선생님들은 출근하여 Term 2의 온라인 학습(홈러닝)을 대비하는 업무를 하고 계신다.


얼마나 이 기간이 오래갈지 모르겠지만 이제 막 학교에 정 붙이고 재미를 알아가는 아들을 보면 아쉽고 안타깝다. 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아니면 걱정이 되어서 집에서 돌보고 있는 것일 테다.


한주 먼저 방학이 시작된다고 하자 아들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내일 마지막 날에는 친구들이 모두 와서 인사했으면 좋겠다~’


괜히 마음이 짠했다.




마지막 전날 저녁에 갑자기 아들이 바빠졌다.


담임 선생님과 부담임 선생님께 그림 편지를 그리겠다는 것이었다. 그전에는 우리가 아들에게 부탁하고 꼬시고 해서 그리곤 했던 인사 편지였는데 이번에는 스스로 신나게 놀기도 부족한 저녁 식사 후 자유 시간에 종이를 펼쳤다. 늘 그렇듯 이미 머릿속에 계획이 있는 아들은 쭉쭉 그려나갔다.


설명을 들어보니 두 선생님과 달빛 산책을 가는 그림이다. 오른쪽 담임 선생님 뒤로 노란 보름달이 보인다. 검은 밤을 배경으로 칠했고, 왼쪽 부담임 선생님은 전등을 들었다. 


이 ‘달빛 산책’은 한국 굴렁쇠 공동육아의 추억이다. 1년에 1번 터전살이를 하며 1박 할 때 6살 이상 형님들만 밤에 다녀오는 나들이를 말한다. 아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추억이다. 그만큼 지금 선생님들이 이를 함께 하고 싶을 만큼 좋다는 표현이다.


그림 뒤에는 편지글을 적었다. 두 선생님 이름과 고맙다는 말을 적었고 함께 달빛 산책(A moonlight walk)을 가고 싶다고 적었다.




드디어 마지막 등교 날. 아들은 그림편지를 보고 놀랄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신나 했다. 매일 가져가는 알림장 폴더에 넣어달라고 했다.


‘선생님이 내 폴더에서 그림을 보게 되면 얼른 달려가서 ‘룩 앳 더 백사이드’라고 할 거야~’


하하. 뒤에 있는 편지글을 읽어보게 하겠다는 말이었다. 파이팅을 빌어주며 아침에 등교를 시켰다. 하교할 때 만나자마자 잘 전달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아, 이미 꺼내서 뒤를 보고 있어서 모른척하고 있다가 나를 불러서 갔어~ 선생님 뒤에 있는 노란 동그라미가 뭐냐고 해서 ‘문’이라고 했어~’


담임 선생님과 감사 인사를 나누던 중에 그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베리 스위트 한 그림이야~ 교실 안에 붙여두었어~ 내 파트너한테 사진 찍어서 보내주니, 어떤 녀석이랑 밤에 나가는 거냐고 했어. ^_^;’


대성공이다. 하하. 이런 깜찍하고 기특한 생각을 한 아들 덕분에 선생님과 즐거운 방학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곧 다시 볼 수 있기를 서로 바라며 헤어졌다. 그렇게 아들 방학이 갑자기 시작됐다.


선생님들과 달빛 산책 (A moonlight walk)






학교에서의 마지막 한주


1. 이스터 이스터 이스터

원래는 마지막 10주 차에 이스터 관련 활동이 많았다. 한주가 줄어들면서 9주 차에 모든 활동을 한 듯했다. 관련 만들기, 그리기를 매일 해왔다. 그리고 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아빠~ 이스터라서 ‘피터 래빗’ 봤어~’ ‘피터 래빗’은 토끼가 주인공인 아이들 애니메이션이다. ^^;;;



2. 이런저런 놀이들

어느 날 친구들 이름이 잔뜩 적힌 그림? 표?를 그려왔다. 뭐냐고 물으니... ‘이건 말 안 듣는 친구들 이름과 잘 듣는 친구들 이름이야~’ 본인이 생각하는 기준으로 그려온 듯하다. 아들아, 이걸 그린 너는 잘 듣고 있는 거 맞지...?


또 어느 날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되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자기는 요가를 가르쳤단다. 벌써부터 선생님 역할 놀이를 할 때인가? 


또 다른 날은 팔뚝에 스티커를 받아왔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내 이름을 뤙 웨이 말고 롸잇 웨이 해서 스티커 받았지~’ 첫 글자 J(제이)의 아래쪽을 항상 반대로 썼었는데, 이제 바르게 써서 칭찬받았다는 이야기다. 잘 놀고 잘 지내고 있구나, 아들!



3. 도시락과의 전쟁(feat. 김밥)

먹는 것에 흥미가 없는 아들은 도시락을 99% 남겨온다.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 어느 날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 시작해서 기분이 나빠졌다. 시간이 없다는 둥, 친구들이 말 걸어서 그랬다는 둥, 화장실 다녀오니 끝났다는 둥. ㅡㅡ^ 아침마다 싸준 도시락을 그대로 남겨오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하다가 물어봤다.


‘아들, 밥 종류 싸주면 다 먹을 것 같아?’ (평소에도 김밥, 주먹밥 싸가면 성공률이 높았었다)

‘음…. 응 김밥 싸주면 먹을 수 있어!’


가끔 주먹밥은 해줬어도 김밥은 늘 파랑이 쌌었는데 이참에 내가 싸서 먹여보기로 했다. 마지막 전날은 파랑에게 배우면서 싸주고 (다 먹고 왔다) 마지막 날은 내가 혼자서 싸줬다, (다 먹고 왔다)


휴… 이제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김밥 머신이 될 예정이다.



4. 착한 일 하기

갑자기 아들이, ‘내가 친구들 물병, 모자 놓고 가면 찾아줘~’ (오호~ 네 것도 잘 챙기고 있는 거겠지?)


‘그게 남이 안 물어봐도 착한 일 한 거야~’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학교와 홈러닝 항목 중에 ‘Pay it forward’라고 있는데 쉽게 말하면 ‘선행 베풀기’이다. 남들을 웃게 만들고, 힘든 일을 나눠서 하고, 먼저 도와주고 하는 등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알아가는 캠페인 같은 것이다.


정말 이 개념을 알고 한 것인지, 그냥 친구들이랑 지내면서 일어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제 한 몸 챙기기도 버겁다고 생각한 아들이 남을 생각하고 돕는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아들.


이스터 토끼 토끼 토끼




집에서의 마지막 한주


1. 라이언 킹

리뉴얼된 라이언킹을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틈만 나면 보고 있다. 그 음악이 정말 멋진 애니메이션인데 아들도 마음에 드나 보다. 음악을 열심히 들으며 리듬을 타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한다.


‘이 라이언킹 음악에’ 베이스’와 ‘툰툰’이 있어~’


학교 음악 수업에서 배운 건가 보다. (학교는 위대하다)



2. 말 통로

차 타고 세 가족이 집으로 오던 길. 아들의 이야기를 엄마도 아빠도 못 알아듣고 있었다.


‘아~ 내가 말 통로 그려줄게~ 엄마 아빠 모르는 것 같아~’


말이 안 통해서 뭔가 그림으로 그려준다는 말인 것 같았다. ^^;;; 와서 뭔가 그려주었는데 그것도 뭔지 몰라서 그냥 모른척했다. 벌써부터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다니 ㅠㅠ



3. 엄마 칭찬 스티커

갑자기 본인이 받던 칭찬 스티커를 엄마에게도 주기 시작했다. 맛있는 음식 해 줄 때, 설거지할 때 등 본인 마음대로 준다. 다 붙이고 나면 자기랑 파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내 건 없어서 다행이다.



4. 책 읽어주는 아들

그동안 해온 한글 놀이와 영어놀이, 그리고 학교 덕분에 자기 수준에 맞는 책들을 읽는 재미를 붙여나가고 있다. 어느 날은 내가 졸리기도 하고 아들에게 부탁도 할 겸 영어책이랑 한글책 한 권씩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가 자신 있는 책들을 가져오더니 눈 감고 있는 내 옆에서 열심히 읽어줬다. 참 신기한 일이다. 작년 중순에 기역도, 에이도 몰랐던 아들이 이렇게 책 읽으며 날 재워주다니.


깜빡 잠이 든 나를 어김없이 깨워서는 이제 내 차례라고 했다. 그냥 자면 딱이었는데. 


잠이 덜 깬 아들 (졸리면 그냥 더 잡시다)




시작된 방학


방학이 시작되며 생긴 파랑의 요청이 2가지가 있었는데... 한 가지는 시간표를 짜서 생활하기였고, 다른 한 가지는 인터넷 신청하기였다. 두 학생이 집에서 서로의 시간과 영역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두 학생의 원활한 홈러닝을 위해 인터넷이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모두 완료했다!


아들은 방학 첫 놀이를 바닥에 분필로 그림 그리기로 시작했다. 학교에서 마지막 날 선물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여기선 이 바닥에 분필로 그리고 노는 것이 흔한 모양이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들은 곧 집 마당이 부족할 것 같다. 


이렇게 아들 방학이 갑자기 시작됐다.


마당 바닥이 부족해서 야외로 진출 중인 길거리 화가, 홍카소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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