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몇 주 전 주말, 엄마와 영상통화를 했다. 아들은 인사와 재롱 모두 보여드리고 자리를 떠나고 나와 파랑만 남아서 통화를 이어갔다.
(엄마) ‘아들 눈 위에 뭐 났어?’
(나) (뭐라고 둘러댈지 고민 중)
(파랑) ‘아, 다래끼 났어요~ 가끔 이렇게 나네요~’
(엄마) ‘아이고, 별거 다하네~’
(나) ‘약 발랐고, 내일이면 다 없어져요’ + (파랑에게 눈치 주기)
통화를 마친 뒤 파랑에게 내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나) ‘난 멀리 계시는 부모님에겐 항상 좋은 것만 이야기하고 싶고, 별일 아닌데 괜히 신경 쓰시고 걱정하실 만한 것들은 안 하고 싶어’
(파랑) ‘겨우 다래끼잖아?’
(나) ‘바로 엄마가 ‘별거 다하네~’하면서 걱정하시잖아, 그냥 뭐 좀 났어요 하고 넘어갈 수도 있잖아’
(파랑) ‘난 부모님과 시시콜콜한 것도 모두 나누고 싶어, 나도 그렇게 자랐고 우리 아들도 우리한테 그랬으면 좋겠어’
사실 이런 이야기를 결혼 후 처음 나눈 것은 아니다. 서로의 다른 생각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런데 아들이 생기고 나서는 서로 다른 생각이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우선 나와 파랑은 서로 살아온 환경과 과정이 달랐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학교 기숙사 생활을 시작으로 대학, 군대, 워홀, 취업, 결혼까지 쭉 나와서 살았다. 그러면서 부모님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는 어지간하면 부정적인 일(사건, 감정)을 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멀리 떨어진 부모님께 자식이 해야 하는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멀리서 얼굴도 자주 못 보는데 괜한 걱정을 끼치는 것은 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내가 감싸고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내가 알아서 풀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부모님과의 안부 전화 단골 멘트는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어’였다.
하지만 파랑은 어려서부터 나와 결혼을 하기 전까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그래서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 지냈고 두 딸이 있는 집안의 분위기 덕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가족 식사 자리에서는 늘 그날 하루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까지 모두 대화의 소재거리였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기분이 어땠고, 저런 일이 있었는데 생각이 어땠고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에는 좋은 일, 나쁜 일 관계없이 서로 많이 주고받고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서로 자라온 환경이 다름은 정해진 것이기에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서로 다른 생각을 당장 맞추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먼저 우리의 고민의 시작인 ‘아들’과 우리 부부는 어떻게 지낼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아들이 나와 똑같이 자라서 별 이야기를 잘 안 전해준다면? 음... 별로 안 좋을 것 같았다.
우리가 알 수 없는 학교에서의 일을 아들을 통해 전해 듣는 것이 많이 반갑고 기쁜데 나중에 그것이 점점 줄어들고 물어보아도 ‘응, 별일 없어’라는 대답만 듣게 되면 좀 맥이 빠질 것 같다.
내 아들에게 바라는 것이 그것이라면 나도 내 부모님께 지금과는 다르게 해야 할 것이다. (부모가 조부모에게 대하는 것을 자식이 많이 보고 배운다고 한다, 그것이 옳은 부모에 대한 태도라고 믿으며)
얼마 전에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셨었다. 이 이야기는 동생에게 들었다. 엄마는 이런 이야기는 내게 전하지 않는다. 동생에게도 오빠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늘 신신당부하신다. 나중에 내가 알게 된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만 신경 쓰면 좋겠다, 너희가 신경 쓰는 것을 내가 신경 쓰면 내가 힘들다’ 파랑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니 ‘자기가 어머님을 닮은 거였구나’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결혼 전에 엄마가 자주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서로 제 팔 자기가 흔들며 살자’ 본인들도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우리도 본인들에게 도움 바라지 말고 살라는 이야기다.
이제 막 부모가 되어보니 좀 혼란스러운 때가 가끔 찾아온다. 위로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지만 아래로는 걱정을 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 이게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것과 엄마 아빠라고 불리는 것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