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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Dec 02. 2020

현질 얼마까지 해 봤니?

내 인생은 게임

내 어릴 적 꿈은 ‘하루 종일 게임만 하면서 살기’였다. 방에 갇혀서 게임만 하며 지내고,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과 새로 나오는 게임 타이틀(CD)만 넣어주면 평생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스타 크래프트’와 PC방의 등장으로 내 삶은 게임으로 좀 더 가득 찼다. 체력이 좋았던 시절이기에 친구들과 밤을 새워서 PC방에서 게임하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다. (우린 그걸 ‘올나잇'이라고 불렀다.)


운명의 고3 때 악마의 게임 ‘디아블로 2’가 나왔고 이것 때문에 수능 점수가 낮게 나왔다고 나는 믿고 있다. (앞으로도 영원히) 대학교에 가서도 취직 전까지도 게임은 늘 내 곁에 있는 친구였다.






그러다가 입사한 해 그것이 탄생했다. 바로 ‘스마트폰’! 


이것은 내 게임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언제나 함께 있는 그것으로 어디서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천국이었다. 마침 이동통신 회사였기 때문에 회사에서 폰을 이용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실제로 스마트폰 초기 시절 이런저런 것을 체험하기 위해 많은 것을 사용했다. 그리고 물론 나오는 게임들도 최대한 모두 해봤다. 


하지만 스마트폰 초기 시절의 게임은 내가 그동안 해왔던 게임들과는 좀 수준이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쁜 직장인으로서 가끔 짬짬이 즐기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용도 정도로 활용했다.


여전히 내게 제대로 된 게임이라 하면 PC 게임이었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신혼 생활 함께 지내는 시간도 좋았지만 서로의 취미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어느 주말 파랑이 내게 저쪽 방에 가서 PC로 게임을 하고 오라고 시간을 주었다. 기뻐하며 그때 갓 나온 게임 ‘하스스톤’을 실행하고 슬슬 빠져들고 있었는데...


한 30분 정도 지났나? 파랑이 거실에서 나를 불렀다. ‘자기~ 이제 다 했지?’


게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번 하면 아주 짧아도 2~3시간이다. (그때도 평생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유효했다) 속으로 ‘그래 하하. 때려 치자! 지금 내 상황에 예전처럼 게임을 할 수는 없겠지 ㅡㅜ’


그때 이후 PC게임은 포기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늘 있다고 했다. 허접하다고 무시했던 스마트폰 게임이 날이 갈수록 발전했다. 나와 같은 게임을 좋아하지만 PC 앞에서 진득이 게임을 할 수 없는 직장인들을 공략하면서 점점 수준이 올라갔다.


그리고 그런 게임들의 목적은 돈을 버는 ‘직장인들의 지갑'이었다. 난 과감하게 그들의 타깃이 되어주었다.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는 내게 용돈을 쓸 곳은 이 모바일 게임뿐이었다. (파랑에게는 당연히 알렸다.)


내가 유혹에 약한 것인지 게임 회사가 대단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질은 늘 필요했다. 시간이 없었고 돈은 있었기에 편한 길로 가기 위해서는 늘 유료 아이템이 필요했다. 어쩔 때는 지름신이 찾아와서(이분은 쇼핑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상보다 많이 지르는 순간도 있었다. 날아오는 카드값을 보며 스스로 한심해한 적도 많았었다.


이렇게 적당한 수준으로 인생에서의 게임과 스마트폰에서의 게임을 동시에 진행하며 살아갔다.






한 번은 이런 엄청난 위기도 있었다.


이동통신 회사의 특성상 핸드폰 요금을 지원을 받았었다. 법인명의의 폰이었기에 일정 수준까지는 별도의 개인 부담은 없었다. 그러나 유료 결제에 대한 상한을 정확히 모르고 이것저것 체험한다고 하며 좀 많이 썼던 시기가 있었다.


아마 그 당시 게임회사들과 협력을 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주 좋은 핑곗거리였다.) 어느 날 갑자기 경고 알림이 날아왔고 폰이 정지되었다. 폰이 정지된 상태로는 일도 생활도 할 수 없었다. 


방법을 알아보니 팀장님 승인을 받은 통보서를 HR 부서로 보내면 풀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팀장님께 사실을 말씀드렸다. 다행히 그 당시 팀장님께서는 내 직장 생활 최고의 팀장님 중 한 분이셨기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냐며 별말씀 없이 이해해주셨다.


이런 흑역사가 내 인생에는 좀 많은 편이다. 하하.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도 난 스마트폰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아들과 같이 있을 때는 안 하려고 노력했고 아예 파랑과 아들이 자고 있는 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러나 이놈의 요즘 게임들은 정해진 시간에 접속을 해야만 하는 특징이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을 놓칠 수 없어 폰을 확인하다가 혼난 적도 많았다. 그래도 난 멈추지 않았다. 내 유일한 쾌락적인 취미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곳 호주에 와서 지내면서도 내 게임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운전하면서 여느 때처럼 그날 아침에 클리어하지 못한 게임 스테이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 좌측통행이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인 초기여서 살짝 중앙선을 침범해서 턴을 하게 되었다. 별 문제는 없었지만 마주 오던 차량이 공격적인 드라이버였는지 내게 가운데 손가락 욕을 날렸다.


기분이 상하다가 순간 정신이 들었다. 아, 이게 다 내가 ‘게임’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구나!


차를 잠시 옆에 멈추고는 하고 있는 게임을 삭제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고 그동안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얼마 전 홀린 듯이 갑자기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정말 오랜만에 ‘인기 스마트폰 게임’ 리스트를 확인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임을 찾아서 다운로드를 하고 플레이를 시작했다.


훌륭한 게임이었다. 1년 만에 게임들이 훨씬 성장해있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뭔가 예전의 끓어오르던 열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나를 단념시켰던 것은 ‘부스터 타임’이었다. 요즘도 예전처럼 특정 시간에 접속을 하면 혜택을 주고 있었는데 그 시간에 직장인들이 자유로워지는 밤 10시~12시였다.


난 그 시간에 접속할 수가 없었다. 난 지금 8~9시면 아들과 함께 잠든다. 그 이상 깨어있을 수가 없다.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렇게 1년 만에 집어 든 스마트폰 게임은 다시 삭제되었다.






이게 현재까지의 내 게임 스토리이다. 게임을 손에서 놓은 지 1년 넘었고 이렇게 오랜 기간 게임을 안 한 것은 게임을 접한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다. 


예전에 공감했던 글이 있다.


‘직장인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현실 세계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지만 게임에서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슬픈 이야기다. 그것에 의해 나도 게임에 빠졌었기 때문에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게임에 매력을 느끼기 못하는 이유는 이제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앞으로도 아예 게임에 대한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미루어둔 PC 게임과 콘솔 게임을 할 예정이다.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이다.)


이번에는 혼자 할 생각은 아니다. 내겐 게임 마니아의 기질이 보이는 파트너가 생겼다. ‘앵그리버드’를 비행기에서 3시간 내리 했던 아들이 바로 내 파트너다.


난 아직도 어릴 적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겜보이의 야구 게임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가장 오랜 시간을 단둘이 함께 놀았던 기억이다.


나도 아들과 적당한 수준으로 현실 세계에 지장이 없을 만큼, 하지만 추억은 쌓을 만큼으로 함께 즐겨나갈 생각이다. 아들은 아직 이런 아빠의 계획을 모른다. 아빠는 그저 책만 좋아하는 줄 안다.



게임은 하지만 이것들은 절대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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