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Jan 30. 2021

여러 개의 삶을 살아보는 방법

모험의 세계, 또 다른 인생

몇 달 전,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필요한 영어 시험 점수를 획득했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를 위해 하루에 1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이제는 시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영상이나 책을 보면서 영어 공부를 한다.


이를 포함해서 글쓰기, 운동, 기타 연습, 독서 등 혼자 있는 시간에 하려고 했던 것들을 다하고 나면 약 30분 정도 여유가 생긴다. 이 시간은 내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날 하루를 알차게 보낸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시간이다.


(*이 사람의 하루하루 : 아빠 육아휴직 계획표, 그리고 매일 지키는 나와의 약속)






이 소중한 시간에 난 매일 모험을 떠난다. 그곳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새로운 친구가 있고,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


그곳에도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다만 그 일들은 그저 나를 위한 일들이 아니다. 세상을 위해서 정의감으로 해나가는 일이다.


이를 방해하는 무리들도 꼭 등장한다. 매우 잔인하고 파괴적인 방법으로 나를 다루려고 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처럼 나도 더 강력하게 맞선다.


이런 절대악에게 맞섬을 정신없이 해나가다 보면 어김없이 떠나야 할 시간이 찾아온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원하며 이 흥미로운 세계를 떠난다.






사실 이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약 20년 전, 그러니까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났다. 내 고3 시절을 화려하게 꾸며주었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덕분에 아직도 스스로에게 핑곗거리가 하나 있다. 이 모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높은 수능 점수를 받아서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학과에 갈 수도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이 강렬한 추억은 그런 것들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기에 전혀 후회는 없다. 그리고 좀 늦게 깨달았지만 수능 점수가 내 인생의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계속 펼쳐져서 이 곳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20년 만에야 돌아왔다.


다시 만난 그 순간, 난 셀렘과 반가움으로 벅차올랐다.






호주로 떠나기 전에 작성한 버킷리스트에 있었다. 그동안 못했던 게임들을 하나씩 플레이해보는 것이.


그 첫 번째 타자가 바로 ‘디아블로 3’였다. (고등학교 때는 ‘디아블로 2’) 나름의 양심을 가지며 영어 버전으로 플레이하고 있다. (답답하다. 많이.)


20년 전과 많이 달랐다. 게임의 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달라졌다. 20년이라는 세월 때문인지 분명히 그때의 재미와 감동과는 많이 다르다. 그땐 밤을 새워서 해도 지치지도 않고 계속 재미있었다. 지금은 체력도 줄었지만 모험을 해나가면서 얻는 즐거움의 크기도 줄었다.


세상이라는 모험을 겪기 전 고등학생이 느끼는 것과 20년 동안 세상을 겪은 지금의 내가 느끼는 것이 많이 달랐다. 실제 세상에서의 모험도 충분히 자극적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씁쓸하지만 이런 변화가 신기하기도 했다. 현실이 가상의 세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지금 현실 세계는 늘 변화의 연속이다. 그래서 이 나만의 가상의 세계로 매일 떠나는 것은 사실 어렵다. 주중에도 다른 일들이 생겨나고, 특히 주말과 방학에는 아들과 함께하기에 불가능하다.


그래도 무언가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현실과 다른 곳에서 나만의 다른 스토리가 이어져 간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이런 게 바로 게임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같은 맥락으로 책을 읽는 것도 비슷하다. 그곳에는 이곳과 완전히 다른 작가들만의 세계가 각각 펼쳐진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다. 내가 써나가는 이야기에는 그것만의 세상이 존재한다.


이렇게 현실 세상 외에 게임, 책, 글 등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은 마치 여러 개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에 여러 개의 삶을 살아보는 것. 이보다 더 매력적인 게 있을까?






게임을 너무 옹호한 듯하다. (난 실제로 게임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부모가 된 입장으로 내 자식이 이렇게 게임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아들이 최근에 게임을 처음 접했다. 이웃집에 놀러 가서 닌텐도 스위치로 ‘마리오 카트’(레이싱 게임)를 해보더니 푹 빠졌다. 그 이후 며칠 계속 이야기하더니 요즘엔 좀 잠잠해졌다. 워낙 그것 말고도 놀게 많고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난 아들의 아빠가 되면서 함께 게임을 즐기는 꿈을 가지고 있다. 아들과 함께 새로운 모험의 세계로 떠나는 그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 아마 당분간은 엄마 몰래 떠나야 할 듯싶다.



게임 중독자, 그것도 현질 중독자 아빠 이야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