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알아보는 2가지 능력
나에겐 없는 능력이 많다.
- 1,000번 간 길을 매번 헤맨다. (길치)
- 건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모든 것이 새롭다. (방향치)
- 내 글씨는 나도 못 알아본다. (악필)
하지만 신은 공평하기에 없는 능력만큼의 가공할 만한 능력도 가지고 있다. 바로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다.
아쉽게도 어떤 사람의 ‘됨됨이나 인간성을 판단’하는 그런 알아보기는 아니다. (늘 틀리더라) 그저 ‘한 번 알게 된 사람을 잘 기억해서 어디서든 한 번에 알아보는 능력’이다.
이 놀라운 능력은 2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늘 공개하겠다!
먼저 첫 번째 능력! 한 번 알게 된 사람은 뒤통수만 봐도 알아본다.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이다. 멀리서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고, 머리카락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발자국만 봐도 알 수 있다. (좀 많이 갔나?) 대충 느낌이 와서 ‘저 사람 그 사람 같은데...’하고 보면 십중팔구 맞다.
나 혼자 우기는 것이 아니다. 바로 옆에 10년 이상 함께 하고 있는 ‘파랑’이 살아있는 증인이다. 파랑이 강력한 증인이 될 수 있는 이유로는 그녀의 ‘사람을 전혀 못 알아보는 능력’ 덕분이기도 하다.
그녀는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누굴 함께 지나가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늘 생뚱맞은 이야기를 한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서 인사를 못 하고 지나간 적도 많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보기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람을 잘 알아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내 이 능력은 꽤나 강력하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더욱더 굉장한 두 번째 능력! 내가 아는 사람이 시야를 넘어서는 반경에 있어도 느낌이 온다.
여기까지 읽고 무슨 멍멍이 소리냐고 떠날지도 모르겠지만 믿어달라.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 내 주변의 분위기가 내게 말해준다. 그 사람이 근처에 있다고. 꽤 멀리 있어도 그 느낌이 전해진다. 그러면 대게 그 사람을 오래지 않아 걷다가 만난다.
사실 이 능력은 주로 반가운 사람보다는 반갑지 않은 사람을 알려준다. 싸한 기분이 내 몸을 감싸 안으면 그때마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꼭 만나게 된다.
이 능력을 처음으로 제대로 느꼈던 때는 군대 첫 100일 휴가 때다. 다니던 대학교에 놀러 가서 대학가 골목길을 누비며 즐기고 있었다. 어느 순간 사람이 가득한 그 골목길 끝에서부터 굉장히 불안하고 불쾌한 기분이 나를 엄습했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싸한 기분, 아니나 다를까 걸어가는 골목길 끝에 그녀가 있었다. 휴가 일주일 전 이별을 통보한 여자 친구.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있는 그녀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뒤로 길을 종종 자주 돌아가는 편이다. 그 느낌이 왔을 때는. 분명 불편한 누군가를 만날 것 같아서.
이 능력은 한국에서만 적용되지 않나 보다. 이곳 먼 호주에서도 그럴 때가 있다. 어딘가 불편한 누군가가 있는 느낌이 들면 그 자리를 피한다. 그 느낌을 안고 계속 머물러 있으면 꼭 누구와 마주친다. 아들과 불편했던 친구의 부모라든지 한인 사회에서 불편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이 2가지 능력은 자주 매우 유용하다. 누군가를 잘 기억하고, 아는 사람을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한쪽이 못 알아보고 지나쳐서 서운한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거의 드물다. 아니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었을 때 ‘이 사람이 누구더라?’라는 표정으로 상처 주기도 하는데 그런 적이 거의 없다.
물론 나도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못 보거나 못 알아봐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모른 척했을 뿐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어색함, 불편함, 귀찮음 등등
점점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인사하고 알아가고 하는 과정을 힘들어한다. 그래서 그저 당장의 편함을 위해 알아보고도 모른 척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내 성격이다. 능력과 성격은 다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