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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22. 2021

적지 않으면 모두 사라진다

무슨 노트 쓰세요? 전 에버노트요

예전에 집안 정리를 하다가 초등학교 시절 다이어리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무슨 내용이 숨어있을지 궁금함을 가득 담고 들여다보았다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 당시의 내 생각이나 마음을 엿볼 수 있을까 했던 기대에 전혀 부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힌 것들은 모두 일정이나 해야 할 일들 투성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내 눈길을 끌었다가 결국엔 눈을 의심하게 만든 문구가 있었다.


'10분 뒤에 안경 닦기'


이게 도대체 무슨 말 일까? (사실 나는 잘 알고 있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내가 놀랍고 창피하다.) 말 그대로 저 말을 적는 시간 기준으로 10분 뒤에 안경을 닦아야 한다는 일정이다. 뜻은 이해했으나 왜 저것을 저렇게 적어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장 안경이 더러웠다면 바로 닦으면 되는 것인데... 굳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추측해보면 이 정도 가설이 나온다.


1) 안경을 닦아야 하는 데 당장은 바빠서 못하니 10분 뒤 한가해질 때 닦자

2) 원래 정해진 시간마다 안경을 닦는데 그 시간 10분 전에 셀프 알람처럼 적어둔 것

3) 10분 뒤에 안경이 더러워질 것을 미리 예상하고 적어놓은 예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말이 되는 구석이 없다. (인정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치열하게 뭔가를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는 그때의 나도 그랬고 지금의 나도 그렇다. 생각나면 무조건 적는다.






스스로 기억력이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내 기억력이 적는 기록보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적지 않고 잊어버린 적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적은 기록을 잃어버린 적은 거의 없다. (기록 자체의 훼손, 분실) 학창 시절 내내 늘 다이어리나 수첩을 사용하며 적으며 생활했다. 이 습관은 직장생활에서도 통했다. 선배나 상사가 부를 때, 회의할 때는 늘 적을 준비를 해서 참석했고 열심히 적었다. 그리고 빈틈없이 실행했고 또 이 과정과 결과를 적었다. 적는 것만으로는 공부나 일이 완료되진 않았지만 그것이 없다면 완성할 수 없다고 믿었다. 메모광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적는 행위는 내 삶의 일부였다.


한 가지 안타깝게도 '내 적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악필 손글씨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악필이다. (글씨 못 쓴다고 체벌받은 아이) 악필에도 수준이 있는데 이는 스스로 알아볼 수 있느냐에 따라 나뉜다. 남이 못 알아봐도 자신만 알아보면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가끔 스스로 해석이 안될 때가 종종 자주 있었다. 부지런한 메모 생활에도 불구하고 구멍이 생기는 경우에는 적어놓고도 무슨 소린지 모를 때였다. 열심히 적어놓은 노트 앞에서 온갖 추리를 하고 앉아있는 나를 보면서 '이럴 거면 적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이 구세주를 만나 내 적는 생활은 완벽해졌다.






'어떤 노트, 어떤 다이어리  쓰세요?'라고 누가 묻는다면 이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전 에버노트 써요.' 이 완벽한 노트는 적는 삶을 완성한다. 언제 어디서든 적을 수 있고, 적어 놓은 것을 못 알아볼 일이 없다. 원하는 대로 구분해서 적어둘 수도 있고 찾기도 쉽다. 함께하기 시작한 후 삶의 모든 기록은 이 곳에 담겨있다. 소소한 생활의 흔적, 정보부터 생각, 감정이 모두 들어있다. 내가 핸드폰을 들고 있거나 노트북 앞에 있다면 십중팔구 에버노트에 무언가 적고 있는 것이다. 나와 이 노트는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을 공유한다.




삶의 기록


말이 나온 김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살펴보자. (뒤늦게 초등학교 다이어리를 살펴보듯 나도 궁금하다) 에버노트 속의 덩어리들은 크기 순으로 이렇게 나뉜다.


'노트북 스택'(노트북의 집합) > '노트북'(글의 집합) > '노트'(개별 글)


가장 큰 메모 덩어리들


이 화면이 가장 큰 카테고리인 노트북 스택들이다. 특별할 것은 없다. 개인정보, 은퇴 후 계획, 독서 기록, 좋아하는 정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가려진 것은 회사 관련 정보인데 언젠가 사라질 것들이다. 이렇게 보니 내 삶이 참 단출하기 그지없다. (아주 만족한다.)




글 정리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에버노트다.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라가 있는 글의 시작은 모두 여기다. 이곳에서 초안이 쓰이고 다듬어져서 세상에 나간다. 노트북 스택 '블로그'와 '브런치'를 펼쳐보면 이렇게 나온다.


이렇게 해 놓아야 내가 알 수 있다


현재 올리고 있는 카테고리(블로그), 매거진(브런치) 별로 정리되고 있다. 글이 없어지거나 섞일 일도 없고 머릿속에도 함께 정리되므로 스스로 기억하기도 용이하다. 하나 둘 서투르게 적어온 글들이 꽤나 많이 쌓여있다. 이 글들은 빈 화면에서 그냥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다.




글감 놓치지 않기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에버노트의 기능은 바로 이것이다. 'Shortcut(바로가기)'. 자주 이용하는 글감 노트를 모아 놓은 화면으로 한 번에 이동한다.


한 번의 터치로 바로 이동한다


에버노트를 켜는 이유는 하나다. 무언가 떠올라서 적기 위해서다. 그럴 때면 적절한 ‘글감 노트’를 찾아서 날아가기 전에 남겨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 순간에도 휘발되고 있으니까. 켜고 바로 바로가기 목록으로 가서 필요한 노트로 이동하고 옮겨 적는다. 그리고 안심하며 다시 에버노트를 닫는다. 이것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한다.






회사생활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내 삶은 무척이나 단조롭고 평화롭다. 하지만 내 에버노트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쁘다. 예전에는 단순한 정보의 저장고에 불과했다면 요즘에는 창조의 장으로서도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적어둔 것을 활용하여 새롭게 글로 탄생시키고 있다.


혹시 자주 까먹거나 기록을 잘 남기고 싶은데 어려워서 잘 안 된다면 정답을 알려주겠다. 노트를 쓰자. 한번 쓰면 영원히 남을 '에버노트'를.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적지 않으면 모두 날아간다. 기억도 그리고 스스로도.



이렇게 쌓인 글감은 절대 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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