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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an 24. 2021

중요한 건 '글감'이 아닌 '쓰기'

쓰이지 않은 글감은 더 이상 글감이 아니다

쓸 게 없다.
글감이 떨어졌다.

글이 쓰이는 곳을 둘러보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사실 난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게 글감인데 그것이 없고, 모자라다는 게 믿을 수가 없다. 글감이 없다는 것은 보고 느끼고 행동하고 말하고 하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살아 있다면, 그리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쓸 것은 늘 존재하는 것 아닌가? 글감은 누구에게나 늘 여기저기 널려있다.


난 글감이 넘친다. 평생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는지 쓰는 나도 놀란다. 요즘 같이 직접 만나 말하기 어려운 시대에 하릴없이 글을 쓰는 모양새인데 나쁘지 않다. 삶의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잊지 않고 글감 노트에 옮겨둔다. 나중에 보면 중복도 많이 되고,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지? 하는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는 그동안 살아온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덕분에 글감을 충분히 뽑아내고 있다. 오히려 무엇을 먼저 써 내려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이렇게 쓸 거리는 넘치는 데 모자란 솜씨 탓에 겨우 겨우 밖으로 뱉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다 보니 비슷한 글감으로 쓰인 글을 보게 된다. 이미 써 놓은 글의 주제가 겹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이 달랐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저 소재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많지 않다. 참고가 되긴 하지만 이미 내가 늘어놓은 글감 노트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치고 있어서 남의 것까지 추가할 여력이 없다. 반대로 가끔 내 글을 읽고 좋은 글감을 얻었다며 감사하다는 분들이 계신다. 도움을 드렸다는 기쁜 마음에 나중에 찾아가 읽어보면 역시나 전혀 다른 글이 되어 있었다. 이렇듯 글감은 늘 공유되지만 그것으로부터 쓰인 글은 늘 많이 다르다.


한 번은 '브런치'에서 아주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한 작가님께서 내 글을 읽으신 뒤에 '오마주'를 해주신 내 글쓰기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읽는 인간’ 작가님! 둘째 순산 후 건강히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이건 정말 사건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인상 깊은 기억이다. '댓글'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한 글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다. 그전까지 글감을 얻어간다며 이렇게 해주신 분은 없었다. 내 글을 여러 번 읽어주시고 같은 주제로 글을 가져다가 쓰도록 허락을 구하신 유일무이한 분이셨다. (역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재해석을 통해 더 큰 감동을 전해 주셨다. 그 글을 읽고 한동안 무슨 댓글을 달아야 할지 한참 고민했었다. 댓글에 대한 글을 쓰고는 댓글을 달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비슷비슷한 글감 덕분에 흔히 볼 수 있는 댓글들이 있다. ‘저도 생각했던 거예요. 먼저 쓰셨네요. 제가 쓴 줄 알았어요.’ 물론 아주 많이 공감했다는 표현이다. 하지만 정말 글감이 같다고 글이 같을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같은 종으로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우리의 인생은 천차만별이다. 글도 똑같다. 같은 글감이라고 해도 쓰이는 글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글감이 아니다. 무엇을 쓰든 누가 어떻게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 핵심이다. 글감은 같아도 상관없다. 아예 중심 생각이 같고 메시지가 같아도 상관없다. 그래도 글은 달라진다. 누가 그 글감을 꺼내서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그 다름은 써 내려가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써 볼까 생각만 했던 그 자신도 쓰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글감이 없어요.
글감이 똑같아요.

그저 쓰기에 대한 핑계다. 글감은 그저 수많은 글의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글감이 없을 수도 없지만, 없다고 글을 못 쓰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못 쓰는 게 아니고 안 쓰는 것임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알고 있으니까. 쓰고 싶으면 쓸 수 있고 쓰기 시작하면 글이 되고 글 안에는 글감이 있다. 이 말은 써보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다. 쓰고 나서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한다’와 ‘안 한다’만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쓰기에도 ‘쓴다’와 ‘안 쓴다’만 있다. 무엇 때문에 ‘못 한다’, 즉 ‘못 쓴다’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절실하게 쓰고 싶지 않기에 만들게 되는 수많은 핑계 중 하나가 ‘글감이 없다’다. 쓰고 싶으면 쓰게 된다. 그게 무엇에 대해서든 말이다.


'글감'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있다. 쓰이지 않아서 세상에 나오지 못한 글이 남았을 뿐이다. 중요한 건 글감이 아니다. '쓰기'다. 쓰이지 않은 글감은 더 이상 글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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