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글
익명게시판이 유행하던 학창 시절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어떤 글을 두고 누가 썼는지 내기를 하고 있었다. 각자 가진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자신이 지목한 사람이 분명하다고 목청을 높였다.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더니 한 친구가 답답한 듯이 외쳤다. '그냥 직접 물어보자! 초록Joon, 이거 네가 쓴 거 맞지?' 어떤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당황하지 않고 빠져나오기 선수였던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얼어버렸다. 내기는 거기서 끝났다. 그 친구에게 도대체 어떻게 눈치챘는지 물어보지도 못한 채.
시대를 주름잡던 대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자주 있다. 이건 그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문장들을 만날 때 그렇다. 조각조각 쪼개다 어디에 던져 놓아도 이름표가 저절로 생겨 '누구의 글'이라고 눈에 확 띄고 말 테다. 감탄하고 놀라면서 이렇게 쓰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부러움에 휩싸인다. 마주한 책과 그 작가의 또 다른 책들을 떠올려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이 작품들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세월 동안 셀 수 없는 글을 쓰고 또 썼을까. 그 따질 수 없는 오랜 시간 속에 태어난 글을 고통 없이 읽어내는 짧은 순간에 바라고 있는 내가 한심해진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 안에 내가 살아있어서 나 밖에 못 쓰는 그런 글을. 어느 누가 읽어도 단박에 이건 내 글이라고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리 복면을 쓰고 나와도 결국 누구나 알아채는 가수처럼. 어떤 곡을 불러도 자신의 노래로 해석해내는 그들이 되고 싶다. 이건 그 사람일 수밖에 없는 소리의 탄생이 글에서도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쓴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읽은 뒤 나라고 확신했던 그 친구가 느꼈던 그것을 글에 담고 싶다. 지금 쓰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다.
가끔 글을 잘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무언가 잘하고 싶다는 말은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뻔하지 않고 쉽고 간결하면서 재미있게 쓰고 싶다. 당연한 이야기를 별 다를 게 없이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한참 멀었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순간순간 드는 어정쩡한 지향점이 점점 쌓이기도 한다. 굳이 소제목을 줄줄이 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구분되고 흘러가는 글. 흐름이 끊어질까 봐 안절부절못하며 넘치도록 달아놓은 연결하는 말이 없는 글. 쓰는 나도 읽는 너도 다시 붙들어 주지 않으면 어긋나 버릴 운명이 무서워서 붙이고 마는 '다시 돌아와서'가 없는 글. 아무 문장이나 읽어도 다음 문장을 읽지 않고는 덮을 수 없는 글. 읽다 보면 읽는 줄도 모르고 어느새 끝나 있는 글.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을 거꾸로 돌리면 모두 쓰고 싶은 글이 되었다.
쓰다가 쓰다가 도저히 안되면 읽는다. 미리 깨우친 그들을 만나서 어떻게든 뭐라도 쉽게 빼먹어보려고. 그렇다고 작법서니 글쓰기 책이니 그런 건 읽지 않는다. 그 내용이 틀려서가 아니다. 제목과 목차만 봐도 아무것도 반박할 수 없는 모두 옳고 또 옳은 말이다. 문제는 그 이론 교과서는 내겐 아무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바른 책을 읽고 바른 사람이 되었다면 학교에서 소리 내어 도덕책을 읽은 우리 중에 비도덕적인 사람은 나올 수 없다. 최소한 내겐 배움과 변화는 그런 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아픈 건 맞아봐야 알고 쓴 건 먹어봐야 알기에 직접 읽는다. 좋은 책과 글을 대하면서 뭐가 다른지 스스로 찾는다. 한두 번으로는 그 차이도 모르고 시간을 허비한다. 헤매다 보면 나와 그의 차이를 미묘하게 발견하는 틈이 생긴다. 그때부터 변화는 조금씩 천천히 생긴다. 부족한 나를 비로소 인정하고 바꿔야 함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고집스러운 나에게 이런 순간은 아주 드물게 찾아온다.
멋진 문장에 반해 정신을 잃는 경우가 있다. 괜히 나도 빛나는 문장을 만들어 보고 싶어 진다. 그런 날은 문장마다 힘을 주다가 한 걸음도 제대로 못 나가곤 한다. 한 줄 한 줄이 너무 귀해서 그것을 다듬고 또 조각하다가 방향을 잃는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판단하고 멀찌감치 물러서서 바라보면 아쉬울 때가 많다. 겉모습은 그럴싸한데 속이 비어있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분명 그들의 것은 그러지 않았었는데. 눈앞의 번드르르하게 나열된 글자들에는 내가 빠져 있다. 정작 내 생각은 없었고 억지스러운 꾸밈만 남아 있다. 이건 내가 쓴 글이 아니다. 내가 담기지 않는 글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 아낌없이 지운다.
헛된 희망과 남의 것의 경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이 이어진다. 어설픈 따라함과 내 것이 아니라는 자각, 그리고 생겨나는 억울함과 실망과 좌절을 골고루 경험한다. 이러고 돌고 돌다 제자리로 돌아오면 하나의 깨달음만 남는다. 내가 쓰는 것은 나를 넘을 수 없구나.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목표가 글의 태생적 한계이자 최고점이었다. 귀에서 피가 나도록 듣는 '솔직하게 써라'가 진리구나 싶다. 진실되지 않으면 그 글은 이미 그 작가의 글이 아니다. 글에 담긴 것이 거짓이라면 누구의 글도 아니다. 글을 속이는 짓은 글 쓰는 이유를 망각하고 저지르는 잘못이다. 쓰기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담아서 보이는 행위다. 결국 글을 쓰며 나아가는 끝에는 내가 서있다. 쓰는 나를 넘을 수 없는 게 글이다.
조용히 다시 돌아온다. 글을 생각하지 않고 나라는 사람을 떠올린다. 독특하고 유일한 존재를 살펴본다. 누구와도 같지 않고 다르다. 자신도 모르게 남들에게 물들어 버려 비슷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전부는 아니다. 나다움이 넘치는 모습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난 이것을 글로 쓰고 싶다. 글만 보고도 나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그것이 담겨야 한다. 나 아니면 못 쓸 글은 나밖에 쓸 수 없다. 글에서 내가 보이기를 원한다. 나만의 특이함이 곳곳에 묻어있어서 내 삶이 드러나면 좋겠다. 아직까지 내게 남아있는 멋진 작가들의 글과 책은 모두 그런 식이었다. 어디서도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었던 그들의 고유한 멋이 있었다. 멋있어서 멋진 게 아닌 그 사람 자체여서 돋보이는 매력이었다.
이제 멀리 돌아가거나 방향을 잃을 일은 없다. 가까이 붙어 있는 나를 넣으면 된다. 그럴듯하고 있어 보이는 곳으로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나를 붙들어 두면 된다. 지금 하는 생각과 느끼는 기분을 한 치도 빠짐없이 담아본다. 일말의 거짓이 없도록, 아니 거짓을 넣을 틈이 없도록. 그렇게 쓰고 난 글은 딱 내가 썼구나 싶을 테다. 글만 봐도 내 이름이 튀어나오게 하고 싶다. 눈을 감고도 내 글을 알아보고 싶다. 난 그런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