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Jun 27. 2021

내 멋대로 써라

마음대로 쓰지 못한 글이 무슨 소용인가

가끔 이곳저곳에서 글을 읽다 보면 의외의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혀 둡니다.

깜짝 놀란다. 뭐지? 지금 무엇을 본 거지? 누군가에 의해 쓰인 글이 다른 사람 의견일 수가 있나? 글쓴이의 의견이 아니라면 누구의 의견 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것을 적은 글도 있나? 전문 인용, 필사? 그러니까 이 안내문이 없으면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지? 그런데 무슨 오해를 할 수 있지?


사실 잘 알고 있다. 이 말을 남기는 의도와 목적을. 괜히 내 생각이 모나 보일까 봐 그렇다. 누군가에게 밉보여 안 좋은 소리 듣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다. 혹시 모를 다른 의견에 상처 받을까 봐. 그래서 의미가 있든 없든 뭐라도 하나 걸어두는 거다. 소용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방어막을 일단 쳐 놓는다. 누군가 '이거 아닌데?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라고 하면 그 뒤에 숨기 위해서. '그래서 여기 말해 두었잖아요. 내 생각이라고요. 그러니 뭐라고 하지 마세요.' 나도 처음엔 많이 사용했었다. 그게 내 글과 생각을 철저하게 보호할 것이라고 믿고.


이젠 그러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라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라서. 의미가 없어서. 글에 담는 건 내 생각뿐임을 알기에. 이런 의미 없는 내용으로 소중한 글자를 낭비하지 않는다.





또 다른 식의 고뇌가 들어있는 <걱정문>도 있다.


악플이 무서워서 솔직한 글을 적기 어려워요.

악플이 달리면 많이 힘들다. 온갖 신경이 그곳으로 향하고 이럴 바엔 글을 쓰지 말까 싶을 때가 찾아온다. 기본적인 인간됨을 배우지 못한 무례하고 막무가내 악플은 상처가 된다. 내용을 떠나 그 매너와 말투가 저 밑바닥의 것이라서 기분을 한 없이 헤집어 놓는다. 이런 순수한 '악플'은 무시 말고는 답이 없다. 나를 지키려면 그대로 날뛰게 두는 수밖에 없다. 눈길을 두지 않고 반응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 좋다. 즐길 수 없다면 피할 것은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의견은 어떠한가? 예의 바르고 공손한, 하지만 논리적이면서 조목조목 반박하는 반응이라면. 이에 대한 기분이 어떨까? 분명 공감하고 지지하는 글과는 다르다. 들어보면 맞는 말이고 그 부분을 놓친 내 글이 좀 엉성해 보이기도 하다. 그대로 내 부족함을 순순히 인정하긴 어렵다. 나름 열심히 생각하고 쓴 글을 그 의견에 흔들리고 싶지 않다. 쪼르르 그 말을 따르면서 고치는 것은 좀 끔찍하다.


한마디로 기분이 별로다. '잘한다. 잘한다.' 소리에 비하면 결국 딴지 걸린 느낌이다. 하나의 다른 의견인 것을 알지만 파렴치한 악플만큼이나 마음을 쾅하고 들이받는다. 그럼 이것도 악플인가? 대놓고 비방하고 험담하지 않았으니 그렇게까지는 아니겠다. 내 찜찜하고 가라앉는 기분은 어찌할까? 감당해야 한다. 공감과 응원의 반응을 원한다면 다른 쪽의 목소리도 들어야만 한다. 좋은 소리와 싫은 소리는 같이 들어온다. 하나만 골라서 받을 수 없다. 둘 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예 둘 다 포기하자. (댓글창을 닫든지, 아예 안 보든지) 아쉽게도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위의 <안내문>과 <걱정문>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내 글에 대한 반응의 불확실에서 비롯된다. 불안하다. 내 글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달콤하고 귀에 착 감기는 그런 말만 듣고 싶다. 유리 멘탈에 금가고 바스러질까 조마조마하다.


일단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남들은 내 글에 별로 관심이 없다. 여기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세상 누구나 다 아는 대작가가 아닐 것이다. 그런 우리의 글에 세상은 관심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남인 나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당연히 내가 써대는 글의 존재 조차 모른다. 지인들이 글을 잘 읽어 주는가? 그게 현실이다. 아는 사람도 내 글을 읽지 않는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글을 읽을 리 만무하고, 혹시 읽더라도 반응이 있을 리 없다.


그럼 그 사람들의 관심은 다 어디 있을까? 우리와 똑같다. 자신에게 집중한다. 우리가 자신의 글에 집착하듯이. 나 스스로보다 내 글에 더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남의 글에 관심을 보이고 그것으로부터 느끼고 배우지만 내 글에 대한 그것을 넘을 수 없다. (스스로 쓴 글을 읽어도 읽어도 지겹지 않고 예뻐 보이는 그 마음이 그것이다. 어찌나 그렇게 잘 썼는지 볼 때마다 놀랍다.) 모두 나만 보느라 바쁘다. 그러느라 남에게 신경 쓸 여력이 많지 않다. 우리의 무한한 스스로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관심 없다'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의 차이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다. 세상은 생각보다 내게, 그리고 내 글에 관심이 없다. 걱정이 무색할 만큼 충분히 무관심하다.


 글에 나만 당당하면 된다. 나만 벌벌 떨지 않으면 되고, 혹시 떨어도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쫄지 말자. 관심이 없는 게 문제지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무플이 좋을까 반대되는 의견이 달리는 게 좋을까? (사람 같지 않은 악플 빼고) 난 내가 생각지 못한 쪽을 알려주는 의견을 환영한다. 겨울에 눈 내리는 이야기 같아서 할 말 없이 텅텅 비어있는 것보다는. 너도 나도 아는 당연한 도덕책 이야기라서 '오 그렇지요.'라고 앵무새 답글이 달리는 것보다는. 읽고 나서 '잠깐, 이건 좀 다르게 볼 수 있는데요?'라고 무언가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글로 남기를 바란다.





모두를 만족시키고 기분 좋게 하는 글은 없다. 아니 혹시 있더라도 그건 매력적이지 않다. 별로 할 말이 없는 교과서는 아무도 재미있어하지 않는다. (이 글도 너무 뻔할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지만 이게 지금의 내 역량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내 깜냥에 맞춰 쓸 뿐이다.) 이제는 입만 아픈 말, 우리는 모두 다르고 우리가 쓴 글도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생각은 서로 같을 수 없다. 읽는 사람의 그것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글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명이라도 더 공감하고 좋게 봐주길 원한다. 하지만 그건 쓰는 자의 영역이 아니다. 읽는 자의 모두 다른 생각을 알 수 없다. 누가 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그런 짐작과 추측은 시간 낭비다.


그냥 나를 만족시키는 글을 쓰는 게 맞다. 아쉽게도 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다. 충분히 나만의 생각이 담겼는지, 눈치 보며 조절했는지 살피자. 가지고 있는 날카로움을 괜한 우려와 불안으로 구부리거나 뭉툭하게 만들었는지 돌아보자. 쓰는 자가 고스란히 들어있는 뾰족한 글은 만족스럽다. 있을지 없을지 모를 반응의 예측을 접어두면 스스로 즐길 만하다. 이런 당당함을 가진 그때서야 작은 기대를 해본다. 나만의 생각이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를. 온전한 나만의 글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게 되기를.


살면서 깜빡이 안 켜고 내 차선에 들어와서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는 사람들이 참 많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좋은 의도 선한 의도 다 좋지만 일단 듣기 싫은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 글과 나 사이에는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한다. 내가 쓴 글은 고스란히 남는다. 내가 고치지 않으면 글은 그대로다. 글 속에는 나 밖에 없다. 글의 최고 장점이자 매력이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글쓰기의 포기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나를 쓰자. 내가 쓰는 글은 나만 쓸 수 있다.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쓰자.




쓰지 않을 수 없어 쓰며 지은 책들




<글쓰기를 시작하며 읽으면 좋은 글 모음>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