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Nov 29. 2020

말하듯이 쓰는 것은 당연하다

말과 글은 원래 하나다

음성 지원된다. 옆에서 네가 말하는 것 같아.

나를 원래 아는 지인이 내 글을 읽고 나면 꼭 하는 말이다. 내 말투와 목소리를 통해 글이 들리듯이 읽힌다는 말이다. 처음 몇 번 들었을 때는 나도 신기했다. 글자로 쓰인 것이 것이 나와의 실제 대화 경험으로 인해 실감 나게 전달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반응이 지속적으로 계속되자 반대의 의문이 들었다. ‘글이 말하는 것과 다를 수 있는가?’ 아니라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내게 있어 ‘말은 곧 글’이었고, ‘글은 곧 말'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글이란 무엇인가? 내 생각을 글자로 옮겨 적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은 무엇인가? 내 생각을 음성에 담아내는 것이다. 둘 다 내 생각에서 시작되며 그것의 배출되는 형태만 다른 것이다. 동일한 사람에게 태어난 말과 글은 같은 생각을 담았다. 그러므로 본질적인 의미는 같은 것이다. 내가 말로 하든 글로 하든 그것은 모두 내가 하는 나의 표현이다. 내가 다르지 않다면 그것들은 모두 같다. 말하듯이 쓰는 것이 당연하고, 쓰듯이 말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는 꽤 오래전에 해둔 메모였는데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오래 써오신 작가님의 책이기에 내 생각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닌 듯하여 안도했다. 읽진 않았지만 어쩐지 내용을 알 것 같다.)





모두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어떤 글을 읽었을 때 단박에 이것을 누가 썼는지 알 것 같을 때.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미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글에서 그것을 보았던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건 절대 그 사람이 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때. 그 사람이 말하는 것과 달라 찾아오는 어색함이 크게 느껴진다. 말이 진짜인지 글이 진짜인지 헷갈린다. 무엇이 진짜이든 간에 그 안 어울리는 느낌은 썩 깔끔하지 않다. 아마 나도 분명히 그런 경험을 전달한 적이 있으리라.


말과 글이 다르면 혼란이 온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자신도, 그리고 받아들이는 남들도. 어떤 것이 진짜 내 생각인지 알 수 없게 된다. 혹자는 그것이 문어체, 구어체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다. 내 생각을 나 스스로 확인하고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 이럴 때와 저럴 때가 다르다면 믿음에 문제가 생긴다. 내가 나를 믿는 ‘신념’에 금이 가고, 남이 나를 믿는 ‘신뢰’에 흠이 보인다. 어떤 생각이 여기에서와 저기에서가 다르다면 어떻겠는가? 말과 글이 다르다는 것은 단순한 형태의 차이가 아니다. 그 안의 내 생각이 무르익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차이를 없애기 위함이다.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더라도 내 생각은 어디에서나 같기를 원한다.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이 똑같아지길 염원한다. 항상 말은 쉽다. 뒤따라 오는 글은 어렵다. 이런 말과 글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쓰는 것이 내 노력이다. 내가 말하듯이 내 글을 쓰고 싶다. ‘음성 지원된다. 옆에서 네가 말하는 것 같아.’ 이 말을 더 많이 계속 듣고 싶다. 


내 글과 내 말이 빈틈없는 똑같음을 유지하길 바란다. 나에게 태어난 ‘말과 글’이 언제나 같은 내 생각을 담기를. 그리고 더 나아가 ‘말’, ‘글’, ‘나’ 이것들이 완전한 하나가 되기를.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하듯이 쓴다. 그게 나인 것처럼. 그리고 그게 내가 되도록.




쓰지 않을 수 없어 쓰며 지은 책들




<글쓰기를 시작하며 읽으면 좋은 글 모음>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