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니와 눈물이 없어진 아들
지난주에는 아들 인생의 큰 변화가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는 '첫니'가 빠졌다. 아랫니 중 하나가 건들건들하던 게 일주일 정도 되었었다.
뽑기 전에 전반적인 치아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호주에서 처음으로 치과를 찾았다. 우리 모두를 위해(원활한 의사소통) 교회에서 만나 뵈었던 한인 의사 선생님께 예약을 했다. 급 윗니 충치 치료도 마취 주사와 함께 받았는데도 아들은 씩씩하게 진료를 잘 받았다.
이틀 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놀라운 사실을 전했다. '나 학교에서 놀다가 이빨 빠졌어~' 아주 기쁜 얼굴이었다. 그에겐 그 첫니로 이룰 굉장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첫니가 빠진 친구들에게 많이 들어왔던 '투스 페어리(tooth fairy)'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누구는 얼마를 받았고, 어떤 친구는 아빠 엄마가 몰래 돈을 놓고 가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는 소문들이었다.
무한한 상상을 펼치며 잠든 그날. 난 어렵게 잠과 싸운 뒤 아들이 잠든 후 살금살금 돈을 넣어두고 임무 완수했다며 편히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들이 잠에서 깨자 마다 놓고 간 20달러와 두고 간 이빨을 보며 파랑에게 말했다.
'와~~ 20달러! 근데... 이빨을 두고 갔네? 이거 아빠가 한 거 아니겠지??'
이번이 처음이던 초보 투스 페어리 대행의 실수였다. ㅡㅜ 아들에게도 이번에 처음인 요정의 실수일 거라고 알려줬고 그날 밤 다시 올려놓고 자면 가져갈 거라고 했다. 아들은 자기 마음대로 오늘 다시 와서 돈을 또 주고 가지 않을까 상상하며 잠들었다. 이빨만 챙겨둘까 하다가 마음 약한 초보 투스 페어리 대행은 1달러를 넣어 두었다. 아들은 전날보다 더 기쁜 표정으로 골드 코인을 들고 달려왔다.
'아빠~ 이번엔 이빨 잘 가져갔고 두 번째로 돈을 또 놓고 갔어~'
나머지 다른 큰 변화는 '눈물 없는 아침 등교'다. 지난주 5일 내내 아침에 눈물을 보이지 않고 웃으며 우리와 헤어졌다. 물론 배경에는 숨은 거래가 있었는데...
아들은 현재 '칭찬 코인'을 받고 있다. 우리 기준으로는 그 조건이 아주 쉽다. 밥을 잘 먹거나 물을 잘 마시거나 방 정리를 잘하거나 등등. 지난주부터 눈물 없는 아침 등교도 칭찬 코인을 받는 조건에 넣어 두었던 것이다.
특히 감동의 순간은 선생님이 안 계시는 동안 교실 앞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앉아서 기다리는 것을 해낸 것이다. 우리나 선생님이 근처에 있어야 마음의 안정이 되었던 초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아들은 시간의 흐름과 본인의 의지로 이를 해냈다. 요즘엔 작년과 다르게 등교, 하굣길에 친구들에게 먼저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여전히 아직 어리게만 보이고 걱정이 가득한 우리에게 아들은 성장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준다.
첫니와 눈물이 없어진 아들. 그 대신 더 많은 용기와 웃음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반에도 적응을 많이 했는지 요즘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많이 이야기해준다. 듣다 보면 우스운 일도 걱정되는 일도 기가 막힌 일도 있다. 괜히 끼어들어서 이러니 저러니 하고 싶지만 슬기롭게 헤쳐나갈 아들을 믿고 그 입을 다문다.
요즘 며칠 괜히 감정이 올라오면 아들이 예뻐 보여서 사랑한다는 둥 같이 있어서 좋다는 둥 말을 건네기도 했다. 아들은 그냥 듣고 넘기는 건지 아님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러는 건지 별 대꾸는 없다.
난 너의 소중한 지금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1. 쇼핑의 달인(=파랑의 아들)
투스 페어리가 주고 간 돈과 그동안 모은 돈을 합쳐서 큰 기대를 가지고 마트에 행차했다. 뭔가 그동안 사지 못한 엄청나게 큰 장난감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아들이 가진 것은 꽤나 부족했다.
우리 부부가 칭찬 코인을 시작한 취지에 걸맞게 아들은 돈에 대한 현실감각을 곤두 세웠다. 무엇이 얼마 정도의 가치이며 가진 것과 가지고 싶은 것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게 되었다. 차가운 현실과 마주하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방송에서는 곧 마트가 닫을 거라고 나오고 아들은 점점 더 조급해져 갔다.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모든 것을 결정했다는 표정으로 사고 싶은 것들을 주섬주섬 들고 왔다. 처음에는 좀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조합을 보고 많이 놀랐다. 난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으며 이를 보고 바로 파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최고의 조합을 찾는 것은 파랑의 특기다. 쇼핑의 결과 사진을 바로 파랑에게 보내줬고 답이 왔다.
'내 아들 맞네!'
2. 미디어 없는 한 주
파랑 방학과 아들 방학에 맞춰서 티브이, 핸드폰, 아이패드가 많이 자유로운 시절이 이어져왔었다. 문득 보니 이것들 없이도 잘 놀던 아들이 이것들이 없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모습을 보이자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지난주에는 이 모든 것을 켜지 않았다. 며칠 되지 않아서 다시 아들은 장난감, 그림, 책으로 돌아갔다.
일주일을 잘 지켜준 아들에게 이렇게 한 이유를 설명해주었고 다시 서로 약속한 만큼 사용하자고 다짐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화두가 될 것이다. (무언가를 보지 않는 나는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더 어렵다.)
3. 마음을 다 잡는 방법
아들이 학교에서 배워온 것을 가끔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번에도 놀라운 방법을 전했다. 뭔가 마음대로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아빠~ 그럴 때는 밖에 나가서 한 바퀴 뛸 수 있는 최대 속도로 신나게 뛰고 오면 마음이 잡혀서 잘 될 거야!'
오... 그럴듯한데? 난 매번 잠을 자곤 했는데, 다음엔 한 번 뛰어볼게!
며칠 전 아들 꿈에 한국에서 다니던 공동육아 굴렁쇠 어린이집 선생님, 단풍잎께서 나오셨다고 한다. 지금 다니는 학교에 오셔서 아들을 데리고 굴렁쇠에 같이 놀러 갔다고 ^^;; 아들도 선생님도 서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돌아가면 멋지게 반가운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했다.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어서 끝나기를!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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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