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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02. 2021

지각에 익숙해져 간다

혹시 아들은 게으른 천재?

그날도 아들을 무사히 등교시키고 돌아왔다. 한 숨 돌리고 소파에 앉으려는데 파랑이 말을 건넸다.


[파랑] ‘요즘엔 별 말 안 하네?’ 

[나] ‘응? 뭐?’ 

[파랑] ‘매번 문 닫으면서 늦게 들어간다고 동동댔었잖아’ 

[나] '뭐 익숙해져 가는 거지. 하하'


지각을 싫어한다. 약속된 시간에 늦는 것을 싫어한다. (관련 글 : 시간은 생명이다) 아이에게도 시간의 중요성을 알려주고자 제시간에 등교시키려고 했었다. 그런데 포기했다.




아들은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 시간이 소중함을 몰라서라기 보다는 그냥 느긋하다. 어떤 하나의 일을 하다가도 관심이 여기도 한번 저기도 한번 쏟느라 바쁘다. 그러다 원래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잊는다. 등교 전 준비시간에 깜빡하고 입었던 교복을 다시 벗는 경우가 허다하다. (잠옷인 줄 알고...) 이러다 보니 작년 PREP(학교 예비기간) 때도 지금 1학년 때도 딱 수업 시작 시간에 맞춰 겨우 들어간다. 매번 속 타는 나와는 다르게 아들은 늘 여유롭다. 옆에서 투덜대는 내가 신경 쓰일 법도 한데 놀랍도록 차분하다.


그게 1년 넘게 반복이 되면서 나도 같이 늘어져버렸다. 나도 마음이 그렇게 바쁘지 않다. 대충 이 정도면 됐지 하는 마음이다. 아들 덕분에 '동동대기 선수'인 내가 변했다. 아무도 없는 등굣길이 익숙하고 편안하기까지 하다. (모두 학교에 들어간 시간...) 아들과 농담도 나눌 수 있다. '아들~ 우린 학교 안에 살아야겠는데? ㅎㅎ' (지금도 충분히 가까이 살고 있지만 ^^;;)


늦으면 늦는 대로 삶은 흘러간다. 그래도 별 큰 일 없다는 게 요즘에 아들로부터 배운 지혜다.




이런 아주 많이 천천히 지내는 아들이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매주 한 명, 반에서 '스타 스튜던트'를 뽑는데 이번 주 영광이 아들에게 돌아왔다고 한다!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본인도 많이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해줬다. 그래서 어젠 스타 스튜던트 전용 망토를 두르고 하루 종일 생활했다고 한다. 자기 의자에 망토가 걸려있고 다음날 가면 또 할 거라고. 하하.


작년에는 영어도 배우기 전이고 적응 전이어서 학년 절반이 넘어서야 되었건 것 같은데 이번엔 무척 빠르다. 본인도 놀라며 말한다. '이렇게 벌써 빨리 되다니!'  고슴도치 아빠의 심정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이 녀석 혹시 굉장한 게으름뱅이 천재가 아닐까??'


게으른 천재의 여유






별일이 다 있는 호주 학교


아들이 전해주는 학교 이야기는 늘 흥미진진하다. 앞뒤가 궁금할 때도 있고 (앞뒤 없음), 실제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힌다. (과장도 큼) 



1. 학교에 나타난 뱀

어느 날은 노는 시간에 뱀이 나타났었다고 한다. 아주 작은 초록뱀이었는데 밖에 풀어주려고 했으나 결국 죽이고 말았다고... (선생님들께서) 그리고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고 한다! @.@ (이놈의 호주 대자연!)



2. 말썽꾸러기 친구

교실 한편에 '반성의 방'이 있다고 한다. 장난이 심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그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한 친구가 '꺼억'하는 트림을 수업시간에 심하게 해서 그 방에 들어갔다고 한다. (페파 피그 아빠 흉내) 그 방이 아들 자리랑 가까웠는데 그 방에서도 계속 '꺼억'대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그 친구는 제2의 반성의 방으로 옮겨졌다고...



3. 대쪽 같은 친구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대쪽 같은 삼학사'부분의 '대쪽 같은'에 대해 설명해주었더니 갑자기 이런다. '나랑 노는 친구들도 대쪽 같아. 서로 구부리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거 하고 놀거든~' 푸하하. 서로 하고 싶은 놀이가 달라서 그냥 따로 놀았다는 이야기다.


게임 / 바다 / 수영장




생각과 대화


1. 잠자리가 전하는 안부

오랜만에 타운 하우스 단지 내 수영장에 혼자 여유롭게 다녀왔다. 여긴 이제 가을이 왔는지 잠자리가 많이 보였다. 나중에 아들에게 잠자리 이야기를 해주니... '아빠~ 잠자리한테 학교에서 가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보고 와 달라고 해~' 학교에서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아들이 메신저 역할을 부탁하고 싶었나 보다. 며칠 뒤 아들이 말했다. '아빠~ 오늘 잠자리한테 부탁했어? 학교에서 잠자리가 내 손에 앉았었거든~'




2. 걱정과 흥분

좋아하는 미술 레슨이 방과 후에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부터 아들은 긴장상태다. 아빠가 더 이상 바로 근처에 앉아있지 않고 주차장 차 안에서 기다릴 예정이라서 그렇다. 학교가 마치자 비장하면서도 당당한 얼굴로 말한다. '나 이제 걱정이 닫혔고 익사이팅이 열렸어! 왜냐하면 미술 수업은 학교 수업보다 짧으니까!' 훨씬 긴 학교도 혼자서 잘 지낸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3. 적당히가 제일 어려워

쌀쌀한 아침이면 가끔 수프를 끓여 먹는다. 지난번에는 파랑이 물을 많이 잡아서 실패. 이번에는 내가 물을 적게 잡아서 실패. 아들이 눈웃음 지으며 말한다. ‘적당한 수프는 어디 갔을까~?’



4.BTS 형아들

요즘 난리다 난리. 뒤늦게 BTS, 다이너마이트에 빠진 아들 덕분이다. 피아노로 연주하고, 목소리로 따라 부르고, 몸으로 흔들어댄다. 맨날 형아들 형아들 하면서 뭐라 뭐라 말한다. 얼마 전엔 무대를 만들어서 양가 어르신들에게 화상 공연도 했다.


음악에도 재능이 있는 걸까? @.@ 아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몸이 뻣뻣한 것이 나를 쏙 빼닮았다. 아무래도 춤은 안될 것 같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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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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