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언제나 나에게 커브를 던지지. 멘붕 왔어!
살아가면서 아무 일이 없는 적이 없다.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은 살아가는 게 아닌 듯하다. 늘 계획과 다르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지만 초연해지기 힘들고 언제나 머릿속 한 가득 걱정들을 안고 지낸다. 꽁꽁 싸매고 있는 고민들을 털어놓으면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다. 해결되는 것은 없지만 마음이 편해진다. 아마 너도 나도 비슷한 삶을 살아감을 서로 확인하고 안도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딱 봐도 걱정 투성이인 친구를 만났다. 그냥 두면 터져버릴 것 같은 표정이다. 물어봐달라고 얼굴에 쓰여있다.
‘Bother’는 성가시게 굴다, 귀찮게 하다 정도의 의미가 있다. 뭐가 널 귀찮게 하느냐?, 걱정거리가 뭐야? 마음에 걸리는 일 있어? 등의 대화를 시작하는 말이 되겠다.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얼굴도 좀 편안해진다.
들어보니 참 별일이 다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꼬여 있다. 당장 뭐라 해줄 말이 없이 나도 멍해진다. 허탈해하는 그가 한 마디 던진다.
직역 그대로의 의미다. 쳐내기 어려운 변화구(커브볼)를 마구 던져서 힘들다는 말이다. 어쩜, 딱 맞는 말이다. 저런 변화구들이라면 삼진 아웃을 안 당할 수가 없다. 이 녀석 맘고생이 심하겠다.
해줄 말이 없으니 그저 듣기만 한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힘내라는 위로뿐이다. 혼이 나간 녀석의 입에서 툭 던져진 또 한 마디.
그래. 그럴 것 같다. 말 안 해도 알겠다. 당분간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난 이렇게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토닥여주는 수밖에 없다. 내가 힘들 때, 그가 나에게 해주듯이.
우리의 예상과 추측을 꽤나 맹신한다. 당연히 이럴 거라고 분명히 저럴 거라고.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계획하고 살아간다. 아쉽게도 우리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항상 예상 밖이며 적절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항상 반복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것을 짐작해도 저것을 예측해도 늘 틀린다. 여기 또 한 사람이 무너져 있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친구. 아주 상태가 좋지 않다. 다가가서 말없이 옆에 있어준다. 이 정도 상태는 처음이다.
스스로 녹아내리고 있단다. '멘탈붕괴', 즉 멘붕이 온 것이다. 지난번 의기양양하게 진행한 계획이 엉망이 되었나 보다. 얻을 수 있는 게 컸던 만큼 실망감도 아주 큰 모양이다.
괜히 지난번에 이런저런 훈수를 두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보기엔 위험천만해 보여서 이런저런 안 좋은 경우를 예상했으나 먹히지 않았었다. 이미 장밋빛 성공에 꽂힌 친구에게는 내 말이 들리지 않았다.
듣지 않는 친구에게 괜히 심통이 나서 던졌던 말이다. 그리고 그대로 벌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 따위를 할 때가 아니다. 그저 곁에서 자리를 지킬 뿐이다.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도 나도 그냥 우두커니 머물러 있었다. 꿈에서 깬 듯 그가 한마디 힘겹게 뱉었다.
그렇지. 우리가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그거지. 하지만 어쩌겠어. 그럴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나아가는 수밖에. 수고했어. 다시 시작하면 뒤는 모두 과정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