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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Apr 07. 2021

출간 방향, 그것이 알고 싶다

Feat. 눈 밝은 출판사와 편집자

실패에 익숙하지 않다. 실패할 도전을 안 했기 때문에 늘 성공만 했다. 언제나 모든 준비를 해놓고 확실한 것만 시도해왔다. 오죽했으면 브런치 작가 신청 탈락이 기억에 남는 실패겠는가. 지금 겪는 출간 도전의 고통이 당연한 과정이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이러다가 실패하는 거 아닐까?’가 가득하다. 결국 난 성공할 거라며 끝까지 도도해지고 싶지만 쉽지 않은 나날이 이어진다. 이럴 때면 더욱 생각은 날개를 단 듯 가지 않아도 될 곳까지 헤매다 오곤 한다.


도대체 글이 모여 책으로 ‘출간’된다는 건 무엇일까? 출간을 마음먹으면서 스스로 설득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혼자 써대는 내 글이 다른 이에게 통할지, 그래서 팔릴 만할지 궁금해졌다. 글에 담은 내 생각이 세상에 퍼질 만한 것인지 호기심이 일어났다. 남에게 읽히고자 쓰는 글의 더 큰 가능성을 알고 싶어졌다. 핵심은 글자로 옮겨진 내가 타인이 선뜻 돈을 내고 읽을 만한 가치를 가졌느냐였다.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는다면 분명히 책이 될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렇다면 출간되지 못하면 담은 생각이 가치가 없다는 말인가. 생각이 모자란 것인가 아니면 글이 모자란 것인가. 고민할 필요 없이 둘 다 형편없는 건가. 책의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추거나 아예 공짜로 만드는 건 가능한가. 어떻게도 안 되니 영원히 일기장에만 적어두고 혼자 보며 위안으로 삼아야만 하는가.


파고들고 조여드는 자괴감이 산으로 바다로 향하는 중에도 거절은 계속되었다. 예상치 못한 다채로운 이유가 많았지만, 그중에도 가장 애매모호한 말이 있었다.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 맞지 않아서...' 출간 방향이란 무엇인가? 대체 동서남북 어느 쪽일까.  딴에는 출판사를 꼼꼼하게 살피고 투고했는데 다른  따져보기도 전에 아예 방향이 다르다니. 얼마나  맞는지 서로의 방향 맞춰라도 보게 시원하게 알려주면 소원이 없겠다. 미리 홈페이지에 나아가 방향을 공개해주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 누군 동쪽이고 누군 북쪽인지. 세밀하게 서남쪽이든지. 답답함에 헛소리와 망상이 계속된다. 나도 안다. 그저 완곡한 말투의 거절이라는 것을.  글은  팔릴 거라는 말과 같다는 것도.


아무리 슬퍼도 유머는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마침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거절 인사 말미에 꼭 따라오는 바람에 다 같이 모여 미리 짰다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다. ‘저희보다 눈 밝은 출판사와 편집자를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게 무슨 밝은 소리일까. 더 눈이 밝으면 어둡고 어두운 나를 알아보게 된다는 말인가. 도무지 들여다봐도 책을 낼 만할 건더기가 없는 내 글을 살피고 살펴서 끝끝내 건져낼 수 있는 초능력을 말하는 건지. 그게 뭐든 간에 눈 밝은 출판사와 편집자는 대관절 어디에 숨어 있을까. 마치 나보다 더 그들이 원하는 것처럼 눈 밝은 이를 향한 소망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아마 그들도 간절히 찾고 있는 걸 테지. 그렇게 믿고 싶다. 어디 있나요, 눈 밝으신 분. 우리 아이가 당근을 좋아해서 눈이 좋은데 기회가 되면 출판업을 추천해야겠다.  


제정신과 멀어져 있는 와중에도 이해할 수 없는 무리는 계속 접근했다. 잊을만하면 오는 자비 출판 권유는 지긋지긋하다. 원고가 마음에 든다면서 돈 낼 생각이 있는지부터 물어보는 것은 왜일까. 내 돈으로 마음대로 책을 낼 거였으면 굳이 어렵게 투고를 했을 리가 없는데. 아닌 척하다가 갑자기 최소한 3백 권은 사야 한다는 협박엔 놀라지도 않는다. 앞뒤가 맞지 않는 갖가지 핑계를 늘어놓는 쪽도 있다. 신인이라서(그럼 난 어디서 경력을 쌓나요?), 짧아서(더 쓸 거라고 했잖아요), 한국에 없어서(네? 그냥 싫으면 싫다고 합시다) 등.


새로운 세상에도 눈을 떴다. 글쓰기와 책 쓰기에 달인이라는 선생과 코치, 그리고 이들이 운영하는 학원과 학교가 엄청나게 많다. 절대 이런 데 가서 돈 쓰고, 시키는 대로 찍어내고 싶지 않다. 차라리 책을 안 내고 못 내고 말 지언정. 그렇게 싫다면서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다면 고백해야 한다. 성공률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도 광고가 따라붙길래 정신 놓은 김에 둘러보고 왔다. 기겁하고 돌아왔으니 본전은 뽑은 셈이다. 책은 나라는 사람을 고스란히 담아서 그대로 드러낸다고 믿는다. 남이 짜 놓은 대로 따라 할 거면 책이고 뭐고 예전처럼 조용히 회사나 다니면서 주는 일이나 하고 사는 게 차라리 낫다.


어색한 실패 상태에 허우적대면서 알맞은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했다. 알아봐 주는 이는 기별도 없고, 걸리적대는 자를 쳐내면서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었다. 추가 투고를 하면 할수록 차가운 메일은 더욱 쌓여만 갔다. 여느 날처럼 그날도 이미 지겨워진 이메일 알람이 또 울렸다. 보나 마나 일 테지만 안 볼 수는 없으니 멍하니 편지함을 열었다. 어라? 이번엔 좀 다른 답장이 왔다. 무엇보다도 바로 있어야 할 '하지만'이 보이지 않았다.


<출판사 거절 단골 멘트>

'하지만'이 있으면 확실한 거절이다.

- '원고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 '옥고를 꼼꼼하게 잘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 '소중한 원고의 검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 '편집부에서 논의한 결과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지만 보면 볼수록 스스로가 짠해서 이만 줄인다.

*명색이 출간 도전기인데 뭐라도 좀 정보 같은 게 들어있어야 할 것 아닌가?


평소와 다르게 답장 내용도 꽤 길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정해져 있는 멘트를 복사해 붙인 게 아니었다. 고민해서 쓰인 내용이 낯설었다. ‘하지만’이 없는 답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내게도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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