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 노세 지금 당장 노세
이번 아들의 방학은 뭐라고 해야 할까...
뭐 이런 콘셉트, 테마였다. 2주의 시간을 다양한 친구, 동생, 누나, 형아들과 계속 놀았다. 대충 열거만 해 놓아도 이 곳이 부족할 판이다.
지난주는 같은 반 동네 친구를 초대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외동인 그 친구는 아들과 성향이 비슷한 점이 많았다. 바깥보단 집에서 머물기를 좋아하고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둘이 2층에서 놀면 별소리도 없이 조용하게 한참을 놀았다. 둘 다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데 같이 나가는 조건으로 날 좋은 다른 날에는 함께 공원, 놀이터 나들이를 갔다. 아들과 그 친구는 바닥에 보이는 반짝이는 물건을 찾는 취미도 똑같았다. 하하. 그들이 노는 동안 난 그 집 엄마와 힘겨운 대화를 해나갔다. (나보단 그분이 더 힘드셨겠지... 미안합니다)
더 가까운 이웃사촌 누나와도 며칠을 놀았다. 우리 집에서 놀다가 그 집 가서도 놀고 참 잘 놀았다. 여기도 둘이 쿵작이 잘 맞아서 특별한 잡음 없이 오랫동안 잘 지냈다. 온전한 주말 휴식을 오랜만에 맞이하는 파랑이 저녁 식사 초대를 2번 했는데 그때도 그 집 아이들과 또 놀았다. 같은 이웃사촌 누나랑도 또 놀고, 어린 동생과도 같이 놀았다. 누구랑 붙여 놓아도 아들은 변화무쌍하게 잘 어울렸다. 언제 그렇게 혼자 놀기를 잘했나 싶을 정도로.
어제 일요일 오전도 아주 화려하게 장식했다. 작년 같은 반 친구들 2명을 집으로 초대했다. 이 친구들은 아들과 놀기를 항상 원하는 아이들이다. 그들은 신나게 뛰고 소리 내고 먹고 즐겼다. 3시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번 방학 마지막 플레이 데이트였다.
아들은 누군가 집에 오는 날이면 아침부터 시계를 보며 설렌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놀아도 헤어지는 시간이면 아쉬워한다. 하루 종일 놀았어도 잠드는 시간이면 늘 아쉽다고 한다. 이것도 하고 싶었고 저것도 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고. 내일 또 놀자고 이야기를 하지만 잘 먹히지 않는다. 아들의 시계에는 '바로, 지금'밖에 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다 못 논게 있어서 오늘 일찍 일어난다고 하던데 참...
자는 시간을 빼고는 정말 모두 노는 아들. 2가지 시간은 우리와의 약속으로 예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글자 놀이 시간' 아주 조금씩 한글을 배우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복습한다. 아들이 집중하면 30분이면 모두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놀지 않는 시간' 이 시간에 집중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어렵게 자리에 앉으면 고정 레퍼토리가 시작된다. 곳곳을 물들이는 낙서는 기본이다. 안 아프던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다녀온다. 평소에 거의 그럴 일이 없는 배가 고파지기도 한다. 얼른 마치고 계속 놀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그러고 앉아있는 아들도, 지켜보는 나도 그렇다. 우리에게 하루 중 가장 어려운 시간이다.
아! 사실 더 어려운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은 더 자주 돌아온다. 바로 '밥 먹는 시간'이다. 아들은 먹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신기하게 편식은 하지 않지만 밥 먹는 것을 힘들어한다. 이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와 똑같다. 식사 시간이 되면 우리 가족은 괜히 긴장한다. 즐거운 식탁이 어떻게 뒤집힐지 몰라서. 이곳에서도 아들의 고정 멘트가 쏟아진다. '이거 다 먹어야 돼? 이것만 먹으면 안 돼? 나 주스 줘!' 열심히 차려 놓은 밥상 앞에서 입에 대보기도 전에 밥맛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힘들다. 내가 더 힘든 이유는 아들에게 있지 않다. 그렇게도 밥 먹는 것에 관심 없던 내 어릴 적과 똑같아서 그렇다. 분명 나보단 훨씬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아쉽다. 더 튼튼하고 건강하게 먹으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밥상머리마다 흘러나온다. 그런 시간을 하루에 3번 꼬박꼬박 맞이하니 참 마음이 마음이 아니다.
아들은 두 번째 이빨이 빠졌다. 자고 나니 빠져있는 이빨을 찾아달라고 해서 온 침대방을 뒤져서 찾아줬다. 결국 그날 투스 페어리(이빨 요정)에게 넘기고 용돈을 받아 내고 말았다. 급격한 신체의 변화는 아이의 자람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토요일 오전에는 세 식구가 오랜만에 빨래방 산책을 다녀왔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에 다니던 나들이 스타일이다. 코인 세탁소에서 여름 이불을 돌려놓고 근처 공원에서 놀았다. 자전거도 타고 물에도 들어가고 놀이터도 갔다. 날씨가 딱 좋아서 상쾌한 날이었다. 그때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놀이기구를 타는 아들을 보며 흘러간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여유로움은 풍부한 시간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에 있다는 깨달음을 괜히 얻기도 했다.
오늘부터 다시 Term 2 개학이다. 아들은 이제 학교를 겁내지 않는다. 친구들과 만나서 놀 생각에 부풀어 있다. 맞다. 지금은 놀 시간이다. 평생 지치지 않고 놀기를. 놀면서 살아가기를!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