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돼서야 알게 된 학교의 소중함
드디어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개학 첫날이면 온 동네에 안심스러운 활기가 넘친다. 아이들은 집에서 노나 학교에서 노나 별 감흥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 놓을 수 있다는 부모들의 기쁨을 난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확실하게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놀고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학생일 때는 몰랐는데 이제 아빠가 되고 보니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을 때 부모가 숨을 돌릴 수 있다. 하하.
제법 1학년에 적응한 아들은 커다란 가방도 곧잘 매고 다닌다. 처음엔 몸보다 큰 가방이 안쓰러웠는데 점점 어울려 간다. 저 큰 가방엔 뭐가 들어 있냐고? 먹을 것뿐이다. 도시락과 물병! 나머지는 모두 교실에 놓고 다닌다. 소풍 가듯이 먹거리만 싸서 왔다 갔다 하는 거다.
다시 학교 가면서 이런저런 재미있었던 일을 전해준다. 역시 가장 즐거운 이야기는 '장난꾸러기' 친구들 에피소드다. 아들 본인은 아니라면서 들려주는데 우선 믿어주고 있다. (정말 관찰만 할까?) 아직 어린아이들 티가 남아있는 아이들은 곧잘 선생님께 장난을 친다고 한다.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 데 교실 구석구석에 숨어서 선생님께서 찾으러 다니서야 한다고. 찾은 다음 이제 하지 말라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이번엔 다른 곳에 숨는 다고. (같은 곳에 숨지 않겠다는 약속일뿐)
파랑과 늘 이야기 하지만 수많은 아이들을 한 번에 보시는 '선생님'들은 대단한 분들이시다. 보통의 인내와 관용이 아니면 해낼 수 없을 테다. 전 세계의 모든 선생님들 존경합니다! (원하시면 더 오래 데리고 있으셔도 됩니다!)
개학 첫 주에는 'Cross Country'라는 단체 달리기 행사가 있었다. 부모들도 초청되어 관람할 수 있었다. 시간 맞춰 학교에 들어서니 지난날의 운동회 느낌이 풍겼다. 반 친구들과 줄 맞춰 앉아서 재잘대는 아들과 눈을 맞추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곧 뭐라 해야 하나... 집단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정해진 트랙을 아들은 집중해서 열심히 달렸다. 골인 지점에서 마주한 아들에게 잘했다고 인사하자 특유의 '해냈음' 표정으로 웃어줬다.
아들은 학교에서 건강하고 밝게 잘 크고 있었다. 친구들과도 점점 친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 등하굣길에 만난 새로운 친구가 자꾸 자기 집에 언제든 놀라오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 집과 5분 거리였다. 당장 마음의 준비는 안 돼있으니 '언젠가 같이 놀자'하고 인사하면 돌아서길 몇 번했다. 그런데 하필 수영 레슨에서도 마주쳤다. 수영 레슨 마치고 자기 집에 놀러 오면 좋겠다고 다시 제안했다. 아들... 인기 많은 가봐. 너만 괜찮다면 데려다줄 테니 실컷 놀다 와도 돼. 아빤 거기 들어가 앉아 있을 생각 하니 벌써부터 입이 바짝 마른다. 대충 자기 소개한 녹음 파일을 네 손에 들려 보내고 싶네...
1. 어려운 이별
뭔가를 만들고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집안에는 점점 뭔가 쌓인다. 한 번씩 정리를 해줘야 우리가 숨 쉴 공간이 생기는데... 이번 주말에 파랑의 진두지휘 하에 정리를 하다가 일이 생겼다. 찰흙으로 만든 것들을 부서진 것들은 좀 버리려고 했는데... 아들이 뭔가 꾹 참고 알겠다고 하더니 인사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뒤에서 가만히 살펴봤다.
작은 조각 하나씩 들여다보고 만져보면서 뭐라고 중얼대더니 돌아섰다. 울상이 된 얼굴에는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안아주면서 물어보니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는데 슬프다고 했다. '물건은 물건일 뿐이라고' 늘 하던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그냥 잠시 꼭 안아줬다. 결국 한 개도 못 버리고 별도 장소를 마련해서 잘 전시해 두었다. 다음에 정리하지 뭐. (파랑한테는 내가 혼났음 ㅎㅎ)
2. 계속 까먹네
아들은 제법 기억도 잘하고 두뇌 회전도 빠른 것 같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관심이 없는 것은 계속 몰라서 물어본다. 예를 들어 오른쪽과 왼쪽이라든지 기도할 때 쓰는 단어라든지. 그동안 백 번이면 백 번, 천 번이면 천 번을 알려줬는데 어느 날은 직접 떠올려보라고 시간을 줬다. 잠시 뒤에 잘 모르겠다고 해서 다음번엔 기억하라고 알려줬다. 듣자마자 이렇게 외쳤다.
‘계속 까먹네. 어디 적어 놓아야겠다!!’
3. 속담에 빠지다
아들이 눈만 뜨면, 시도 때도 없이 집어 드는 책이 있다. 바로 한글 만화로 된 '속담 책'이다. 아들에겐 첫 만화책이나 다름없다. 내가 봐도 재밌는 캐릭터들로 쉽고 재밌게 잘 만들어진 책이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책을 들고 옆에 와서 같이 읽는다. 본인이 좋아하는 책이라는 자부심도 있는 것 같다. 하하.
배운 만큼 우리와의 대화 속에 속담을 자주 써먹는 데 정말 귀엽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구름사다리 같은 것을 같이 건너려는데... '아빠! 잠깐!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라고 해서 한참을 웃었다.
방 정리를 파랑과 둘이 시합하듯이 했는데 아들이 이길 것 같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이길 거야~ 매운 고추가 더 맵거든~’ ㅋㅋ 순간 작은 고추를 헷갈렸던 모양이다. 요즘엔 말의 절반이 속담이다. 하하.
오랜만의 파랑의 시간적 여유와 이곳의 안작데이 연휴로 여행을 다녀왔다. (안작데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현충일) 시골을 떠나 도심 속에서 무한 휴식을 취하고 왔다. 학교에 가지 않았던 어제 월요일에도 늘어져라 쉬었다. 어쩐 일인지 자전거를 타겠다는 아들을 데리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이 모든 여유로움이 좋았다. 가끔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시간은 흐른다. 이 잡지 못할 시간 속에 너와 나도 함께 흘러간다. 둥둥 떠가며 서로를 바라보는 그 느낌이 좋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