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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04. 2021

고쳐 써야 하는 아빠

나는 나 맞는데... 아빠이기도 하니까

애를 돌보니 뭐니 한다고 해도 나는 나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진 않는다. 기본적인 내 생각, 행동, 말투는 크게 바뀌기 어렵다.


물론 아이 앞에서 자제하거나 변형을 시키는 노력을 꽤 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유일하게 애정을 다해 대하는 사람이 와이프, 파랑이었다면 지금은 파랑보다도 아이에게 제일 유하고 따뜻하게 대한다.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상대적인 - 난 여전히 겁나게 까칠한 사람)


이게 요즘 흔들린다. 아들이 크면서 생각도 빨라지고 대화도 통하다 보니 더 이상 아이라고 생각지 못할 때가 많다. 좋은 의미로 눈높이를 내려 아이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같은 어른 정도로 생각해서 아이를 억지로 높여다 붙이는 셈이다.


특히 방이 이럴 때 많이 흔들린다



1.

먼저 난 어떤 원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동안의 기록을 모아서 이야기하는 오랜 버릇이 있다. (좋다고는 안 했음) 내 기억에 같은 식의 행위나 말투를 일정 기준 이상 여러 번 반복해 왔다고 판단되면 꼭 이 말이 붙는다.


‘항상, 늘, 맨날’


잘못된 말이다. 아들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 상황에 감정이 격해진 나는 거르지 못하고 내뱉곤 한다. 그러면 바로 아들은 말한다. 항상은 아니라고, 맨날은 아니라고. 그 당시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과거의 것까지 몽땅 끌어와 이야기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부부싸움의 나쁜 예 - ‘넌 항상 그런 식이야’)


나름 핑계를 대보자면 그 상황 전까지는 나름의 기준으로 10번이면 10번을 웃으며 넘겨오다가 어느 경계를 넘자 수용하지 못하고 넘쳐 버린 것이다. 아이는 내가 그동안 참은 건지 뭔지 알 길이 없는데 갑자기 한 방 먹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 상황에는 그때의 이야기만 하는 것을 거듭 연습해야 한다.



2.

또 하나는 아들과의 약속에 대한 과한 엄격함이다. 내가 아들에게 한 약속이 아닌 아들이 내게 한 약속에 대해서다. 밥을 잘 먹겠다든지, 글자놀이에 집중하겠다든지, 방 정리 잘하겠다든지 늘 반복되는 것들이다.


한번 그러겠다고 한 약속을 모두 지키며 살기는 어렵다. 나도 그렇지 못한 데 커가는 아이는 오죽할까. (아이가 괜히 아이겠는가) 그러다가도 가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것도 상황이 반복해서 쌓여오다가 어느 순간 터진다)


‘너 이러이러하겠다고 약속했잖아? 약속 어길 거야?’


이렇게 다그치고 나면 많이 미안해진다. 어른인 자기도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준답시고 강요한 것 같아서. 그런 날은 정말 후회가 막심하다.




3.

나도 잘 그러지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기대하는 경우도 많다. 난 변화와 도전, 새로운 상황을 아주 싫어한다.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그렇게 한다. 아들도 내 성향을 많이 닮았는지 그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면 어쩔 줄을 몰라하고 눈물이 난다.


주말에 수영 레슨 보강이 있어서 수영장을 찾았다. 상급반으로 올라간 아들의 보강수업은 야외 수영장이었다. 항상 따뜻한 실내에서만 했었는데 야외는 처음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들은 벌써부터 부들부들 떨며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아들의 심정을 잘 알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는 게 내 생각이다. 아들도 용기를 내어해 보겠다고 물에 들어갔지만 이미 몸과 마음은 새로운 낯섦에 공격당하고 있었다.


결국 선생님께서 5분 만에 오늘은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아들을 따뜻한 샤워실로 데려가면서도 아쉬움이 남았다. 조금만 더 했다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른 친구들은 잘만 하던데...


나도 어려워하는 새로움을 아이는 잘 이겨내길 바라는 못난 기대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지낸다.


치명적인 앞태와 뒷태


아이 덕분에 대충 모른 척하고 포기하고 지내던 내 모자란 부분이 마구 드러난다. 아니었다면 별 불편함 없이 평생 가지고 살아갈 것들이다. 이젠 그러기가 어려워졌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 분명하다. 나에서 이것들을 끊어내지 못하면 원치 않는 대물림을 하게 될 것이다. 고집 그만 부리고 나쁜 것은 이제 고치자.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지만 아빠는 고쳐 써야만 한다.


아니라면 아빠를 관두는 게 아이에게 낫겠다.




오고 가는 학교 에피소드


즐거운 금요일 하굣길. 아들과 만나서 학교를 빠져나오는 데 저기서 자주 보는 아들 친구 녀석이 헐레벌떡 달려온다. 팔찌를 만들었다며 아들에게 선물했다. (아쉽게도 남자 친구...) 아들에게 혹시 왜 선물을 한 지 아냐고 물어보니 그 대답이 참 귀엽다.


'아, 우리 플레이 타임에 항상 같이 놀기로 핑키 프로미스했거든~'


'핑키 프로미스'는 우리말로 '새끼손가락 고리 걸어서 한 약속' 정도 되겠다. 함께 놀기로 약속한 단짝 친구에게 준 선물인 셈이다. 귀여운 녀석들. 하하.



화창하던 아침 등굣길. 갑자기 비가 아주 조금 내렸다. 바로 아들이 속담 신공을 발휘했다.


‘이거 가랑비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거든!’


속담 책을 이미 통째로 외워버린 모양이다. 파랑처럼 뭐든 빠지면 제대로다. 오래가지 않는 것도 엄마를 닮았나? (좀 아니다 싶은 건 미뤄보기)


친구가 선물한 하트 팔찌 / 호주에 있는 포켓몬 뽑기 다 하는 중




지난 한주는 요가와 명상으로 보냈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휴식을 취했다. (장염으로 추정됨 - 게장, 육회 날 것을 많이 드심) 요가와 명상을 아무리 해도 아이와 함께 하면 5분 만에 원래의 아빠로 돌아가서 다 소용없긴 했지만...


어제는 아들이 학교에 가줘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이곳의 노동절이었기에 하루 더 쉬었다. 집 안에만 붙어 있으려는 아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세 가족이 산책을 다녀왔다. 나가면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노는 아들이다. 비 오는 날이 계속되다가 하루 해가 쨍하니 마음도 덕분에 뽀송뽀송 마른 것 같다.


가끔 보는 예전 아들 사진에 우리는 놀란다. 이때 이렇게 아이였나 싶으면서 그 아기아기함에 귀여워하며. 시간이 또 지나면 지금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이를 반복할 것이다. 결국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뿐이다. 못 마땅해하고 마음에 안 들어해서 뭐하겠는가.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면 누굴 어떻게 돕고 나누겠는가.


오늘도 마음을 다잡아 본다. 아들은 아이고, 나는 아빠다. 같이 맞먹으려 들지 말자. 한 번씩만 더 품어주고 참아주고 웃어주자. 그렇게 쌓이면 나도 좀 변하지 않을까?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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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제가 쓴 책이 나왔습니다. 애만 만들고 아빠인 척하던 제가 변해가는 이야기입니다. 아닌 척 모른 척했지만 저도 그저 엄마가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함께하는 육아가 당연해지는 날을 꿈 꿉니다. 책 표지에 적어 둔 것처럼 인세 수익은 모두 필요한 아이들에게 기부합니다. 다른 욕심 없이 오로지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서 세상이 변하길 바랍니다. 아이가 있거나 아직 없거나 다 컸거나 심지어 없을 예정이어도 읽으면 좋습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육아를 아이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해해야만 바뀌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필요한 분들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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