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터지는순간순간
몇 년 전 사진과 동영상을 폰에서 가끔 추억처럼 보여준다.
나나 파랑의 그때 그 시절 사진 속엔 아들이 가득하다. 서로 깜짝 놀라며 보내주는 그것들 속에는 여전한 아들이 들어있다. 지금과 똑같은 그 말투와 웃음소리, 그리고 장난기까지.
사진도 사진이지만 영상에는 좀 더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있는 그대로 자신을 느끼고 표현하는 아들을 볼 수 있다.
순수하고 맑은 아이의 풍성한 자기표현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나보다는 파랑을 닮은 덕에 이런 부분이 도드라지는 것일 테다. 아니면 내 어릴 적 이런 면을 내가 잃어버린 것일 수도.
우리 집에서 가장 뜨겁고 열정 넘치는 아들의 감성을 쭈욱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들을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하는 순간을 즐긴다. 별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시답잖은 농담들을 나누면서 지나가는 시간이 좋다. 오고 가는 대화라기보다는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로 한다. 가끔은 아들이 던지는 예상치 못한 멘트에 가슴이 쿵하기도 한다. 한 번은 라디오에서 종종 들으면서 좋다고 생각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뒤에서 아들이 흥얼흥얼 대면서 말했다. '나 이거 좋아하는 노래야, 이 부분이 좋아~' 제법 그럴듯하게 따라 부르는데 정말 느끼고 있는 모양이 멋졌다. 감성 터지는 그런 매력적인 순간이라고나 할까?
한 번은 마트에서 나와 파랑은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아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 뽑기 장난감을 샀다. 계산하기 전에 좀 더 둘러보고 있으니 아들이 외쳤다. '나 궁금증이 폭발하고 있어!' 얼마 전에 배운 한글 표현을 고대로 가져다 썼다. 자신의 감정을 풍성하게 드러내는 순간이 '헉'하고 내겐 다가온다. 그런 솔직하고 충실한 매력에 빠져든다. 감성적인 아들 녀석에게 푹 빠져있다.
아들은 풍성해지는 마음만큼이나 몸도 단단해지고 있다. 요즘 들어 밥 먹는 양도 늘었고 잘 먹고 있다. (물론 여전히 서로 가장 힘든 순간임에는 분명하다) 먹는 것과 요리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기호가 분명하다. 한 번은 곧 떠날 여행 계획을 들려주면서 파랑이 특별히 더 맛있는 먹거리 계획을 세워뒀다고 예고해줬다. 잠시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말했다. '음... 스페셜 한 음식이라면 미역국인가?' 아들에겐 특별하면서도 가장 맛있는 음식이 미역국이다. 몇 번을 연속으로 차려 줘도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먹는다. 밥을 잘 먹고 나면 바로 이어지는 의식 같은 행동이 있다. 바로 간식장을 열고는 그 앞에서 열심히 고민을 시작한다. 우리 집에서 밥을 다 먹고 나면 간식은 무한 자유다. 소중한 보물을 찾듯이 간식장을 바라보는 아들의 뒷모습은 귀여움 그 자체다. 아직 빼빼로 같은 아들은 한참 많이 먹어도 된다.
아들이 지금처럼 계속 몸과 마음이 살찌면서 자라나길 바란다. 느끼고 떠오르는 것들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그만큼 남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너의 감성을 오랫동안 내가 즐길 수 있기를.
지난 일요일 오후에는 아들 친구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파랑은 다른 스케줄이 겹쳐서 빠지게 되었고 내가 단독으로 참석했다. 아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이리저리 친구들과 쉴 새 없이 놀며 즐겼다. 나에겐 네이티브 스피커분들과의 공짜 영어회화 수업이 주어졌다. 각자의 익사이팅한 순간을 보내고 서로 다르게 지쳐서 돌아왔다. 그저 혼자서도 해낸 스스로가 기특할 뿐이다. 하하.
아들에게 내가 책을 쓰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 책엔 무슨 내용이 들어가는지 궁금해했다. 아들과 우리 이야기도 들어간다고 알려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혹시 그거? 아들의 눈물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정말 깜짝 놀랐다. 얼마 전에 본 내 글의 제목을 줄줄 말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아주 잠시 스쳐가면서 보았을 텐데... 이 녀석 뭔가 싶었다. 인간 사진기인가? 늘 조심해야겠다. 옆에서 아들이 모든 것을 흡수하고 있다.
길고 길었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파랑의 일정이 마무리되어 간다. 끝까지 잘 마칠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한다. 넌 정말 대단한 친구야! 잘 마치고 생일 여행 떠납시다 ^^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