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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26. 2021

집 나간 아내가 돌아왔다

어색한 우리 사이

드디어 끝났다. 정말 모든 게 끝났다. 준비하고 계획했던 과정이 완전히 끝났다. 물론 다음 스텝이 있지만 잠시 멈춰서 쉬기로 했다. 그렇게 집 나갔던 파랑이 돌아왔다. 나도 아들도 이런 아내와 엄마에 적응하는 중이다.


지난 토요일은 파랑의 생일날이었다. 아침부터 나와 아들은 바빴다. 아들은 소중하게 모아 온 용돈으로 중고 가게에서 신중하게 엄마 선물을 골랐다. 나는 꽃 선물을 받고 싶어 했던 아내에게 줄 꽃다발을 골랐다. 친절한 이웃집에서 생일 파티를 열어 주셔서 귀한 치킨과 미역국을 대접받았다.


꽃다발을 잘못 샀고(역시나 잘못된 내 기억) 미역국도 못 끓여준(굳이 중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나는 힘들게 파랑의 생일날을 버텨내다가 새벽에 쓴 백 년 만의 손편지로 겨우 만회했다. 그래도 긴 기간의 과정이 끝난 파랑의 홀가분함 덕분인지 별 탈없이 잘 넘어간 느낌이다.


학생에서 백수가 되었다며 즐거워하는 파랑을 보면 그게 훨씬 잘 어울려 보이기도 하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행처럼 둘이서 브런치를 함께했다.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했으며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모임 일정을 함께 짰다. 오늘이나 내일은 코스트코에 출몰해서 코스트코를 사 올 예정이다.


귀한 용돈으로 조심스레 준비한 엄마 생일 선물



늘 함께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꼭 붙어있게 되니 어색하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없는 적이 많았던 파랑이 집안 곳곳에 있다. 돌아보면 이곳 호주에 도착한 그 날부터 마음 편히 지내보지 못한 그녀였다. 말은 늘 할 수 있다고 응원했지만 정말로 해내는 녀석을 보면 대견하고 놀랍다. 안 할 때가 정말 길고 많지만 할 때는 제대로 하는 너, 수고 많았어!


진심으로 넷플릭스 봐도 되니까 그만 눈치 보고 결제해서 마음껏 봐. 괜히 유료 웹소설 하나씩 결제해서 계속 보는 게 더 돈 많이 쓸 것 같아. 이게 다 내 사랑의 표현이니 이해하길.


나 아들 너






아들 이야기


아, 이건 육아일기인데 깜박할 뻔했다.



1. 자전거 보조 바퀴 해제


분기에 한 번 정도 타는 자전거에는 아직 보조 바퀴가 달린 4발 자전거였다. 어느 날 갑자기 떼어 달라고 했다. 한 번쯤 연습을 시켜줘야지 했는데 잘 되었다 싶어서 바로 떼주고 집 앞에서 조금 연습시켜줬다. 그리고 벌써 일주일 지났는데 분기에 한 번씩 타면 두 발 자전거를 언젠가 탈 수 있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2. 8살 이하 축하 행사


학교에서 0학년부터 2학년까지 아이들을 위한 작은 축제가 열렸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못 했기에 이번이 우린 처음이었다. 부모님도 방문할 수 있어서 파랑과 가보았다. 뛰고 놀고 만들고 먹고 아이들 천국이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이곳저곳 다니며 즐겼다. 아는 부모,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우리도 여기 꽤 오래 지냈구나 싶었다.



3. 한국 꿈과 택배


어느 날 아들이 아침잠에서 깨자마자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쉬운 꿈을 꾸었어. 한국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한국 밥을 먹었는데 맛있었어. 아빠 좋아하는 김칫국도 있었는데 아빠는 세 그릇 먹었어. 엄마 좋아하는 케이크도 세 개나 있었어. 꿈이어서 아쉬웠어.'


매번 양가 어르신께 영상통화 드릴 때마다 '한국 가서 뵙고 맛있는 밥 먹고 싶어요'라고 한 것을 기억한 듯하다. 그리고 한국이 그리운 이유는 따로 또 있다.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한국 장난감이 들어 있는 택배 때문이다. 매일 하교 때마다 ‘왔어?’라고 묻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어서 도착해주길!


그냥 모여서 놀고 즐기는 '8시 이하 어린이 축하 행사'






지난주에 파랑의 학교 동기인 동생을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함께 했다. 우리 집에 잠시 머무르며 지내기도 했던 친구인데 성실하고 바른 모습에 우리 가족이 아끼고 좋아한다. 그 친구에게 생각지도 못한 축하와 선물을 받았다.


바로 내 출간 계약 소식을 듣고 준비한 '출간 계약 기념 케이크'였다. 파랑의 동기들이 내 블로그나 브런치를 가끔 보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많이 놀랐다. 역시 그동안 보아온 내 느낌이 맞았다. 이 친구는 참 크게 될 친구였다. 진심으로 남을 축하해줄 수 있는 마음이라면 무엇을 해도 그러고 말 것이다. 절대 따로 가장 먼저 축하해줬다고 이러는 게 아니다.


덕분에 아직도 남아있는 잔잔한 기쁨과 행복으로 오늘도 즐겁게 쓴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센스 넘치는 Book의 'B 캔들'



혹시 누가 또 축하해 줄지 몰라서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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