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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un 15. 2021

오늘은 한복 입는 날

사랑받기 위해태어난 너

한국에서 명절이면 아들에게 한복을 입혀왔다. 호주에 넘어오면서 입던 한복을 혹시 몰라서 챙겨 왔었다. 훌쩍훌쩍 크는 아이를 보며 한복 입힐 일 없는 이곳에서 반 포기 상태였다. 이미 작아졌을 것이기에 아쉽지만 남에게 물려줘야겠구나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레터가 날아왔다. 'Casual Clothes Day'에 전통 의상을 입고 와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파랑이 묵혀 두었던 한복을 꺼내어 아들에게 입혀봤다. 매년 입던 한복을 기억하던 아들은 '나 이 옷 입고 싶었어!'라며 반가워했다. 이번 딱 한 번 입을 수 있는 딱 맞는 상태였다. 하하.


대망의 D-day. 다른 날 보다 더 기분 좋게 학교 갈 준비를 마쳤다. 색깔이 좋은 한복을 입혀 놓으니 아들의 얼굴색과 잘 어울렸다. 괜히 우리나라 옷이 아니구나 싶었다. 제법 색과 태가 아들에게 잘 어울려서 꼬마 동자 같았다. 쑥스럽지만 자랑스러울 때의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아들은 학교로 향했다.


여느 날처럼 제일 마지막, 수업이 막 시작했을 때 우리는 도착했다. (빠지지 않고 연속 지각 중) 색동옷을 입은 아들이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쳐다봤다. 선생님께서 외치셨다. '와~ 이 멋진 친구를 봐!' 우리 부부는 뿌듯해하며 돌아섰다.


학교를 마치고 아들을 데리러 갔을 때 몹시 궁금했다. 한복에 대한 선생님과 친구들의 반응이 어땠을지. 하지만 하나도 전해 듣지 못했다. 적극적인 관심을 아들은 부끄러워하고 이야기하길 망설인다. 무언가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한다. 대충 살펴보니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날 몇 번 물어보다가 그냥 포기했다. 이런 친구인걸 알고 있으니 언젠가 원할 때 이야기해주겠거니 하고.


아, 선생님께서 미술시간에 물감이 아들 한복에 튀자 깜짝 놀라셨다고 한다. 한복이 겉으로 보면 무척이나 귀하고 연약해 보이기 때문에 아찔해하셨던 것 같다. 아들의 한복을 손수 벗기셔서 물감 묻은 부위를 빨아 주셨다고 한다. 이를 전하는 아들의 얼굴에는 사랑 받음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렇게 한복을 입고 간 그날, 아들은 모두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온 게 틀림없었다. 괜히 뿌듯하고 기분 좋은 하루의 추억이었다. 파랑은 내년에 입힐 다음 한복을 마련할 궁리를 하고 있다.


와~ 이 멋진 친구를 봐!






아들의 눈부신 성장



1. 이심전심


어느 날 달리는 차 안에서 나와 아들은 평소처럼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 '아들~ 했어?'

[아들] '응~ 했지!.'


옆에 같이 있던 파랑은 당황스러워했다. 어떻게 주어도 없이 어떤 맥락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일상처럼 자연스럽기에 우린 그런 줄도 몰랐다. 역시 붙어 있는 보람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관계의 경지라니. 그런데 왜 서로 삐지고 다투는 것도 같이 늘까?




2. 날 닮은 너


산책을 하다가 잠시 쉴 수 있는 쉼터가 나왔다. 다 같이 잠시 앉아서 쉬다 가기로 했다.


[아들] '우리 이제 같이 노는 거야~'


나와 파랑이 아무 반응 없자...


[아들] '제대로 들은 거 맞지? ‘같이’ 논다고 했어~ ‘같이’!'


아, 이런 말 강조하는 식은 딱 난데... 큰일이네. 너무 붙어 있었어.




3. YES DAY


넷플릭스에 빠져 있는 파랑이 나와 아들을 모니터 앞으로 데려왔다. 'YES DAY'라는 영화를 같이 보면 좋겠다면서. 육아를 하며 항상 'NO'를 외치는 부모가 한 달에 한번 'YES'만을 하는 날을 정해서 아이들과 가까워진다는 이야기였다.


영화가 끝난 후 우리 집도 'YES DAY'가 시작되었다. 이 날을 위해서는 아들이 해야 하는 일을 꾸준히 잘 해내면 된다. 그게 뭐 따로 특별한 일은 아니고 원래 하던 것들이다. (밥 잘 먹기, 한글 놀이, 정리하기)


우리 집 첫 YES DAY는 2주 뒤 방학 첫날로 잡혔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파랑이 카페에서 어린 남자에게 '헌팅'을 당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가끔 이런 일이 있으면 자랑스러워하면서 내게 알리던 그녀였다. 


호주 살이 2년 동안 제대로 된 미용실을 못 가다가 이번에 한인 미용실을 다녀온 후였다. 내가 좋아하는 짧은 머리로 아주 잘 다듬어진 상태였다. 역시 남자든 여자든 머리빨이 중요하다.


네가 기분 좋다니 나도 기분 좋아.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아마 언어가 달라서 더 깊은 대화는 못했을 거야.


나는 정말 괜찮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아들! 우리 둘이 지낼 뻔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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