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Jun 09. 2021

우리 집이 험악해지는 순간

오늘도 불안불안

어지간하면 웃음과 여유가 넘치는 곳이 우리 집이다. 


이렇게 여유롭다


우리 부부가 회사를 가지 않으면서 절대적인 스트레스가 100에서 0으로 줄었다.(밥벌이는 힘들어) 아들은 원래 0이었다.(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 스트레스 없는 생활 속에는 늘 평화와 배려가 가득하다. 그러다 딱 2가지 일이 벌어지면 공기 자체가 달라진다.






하나는 밥 먹는 시간. 


아들은 먹는 것에 관심이 없다.(나를 닮아) 정확히는 매 끼 식사를 즐기지 않는다.(달달한 간식은 알아서 즐김) 식탁으로 오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앉아서 첫 입을 먹을 때까지도 하세월이다. 차려져 있는 반찬들 전체를 둘러보지 않고 눈 앞에 주어진 것만 바라보고 해치운다.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모두 골고루 즐기면서 먹어주면 좋으련만... 이런 기대는 없어진 지 오래고 그저 앞에 가져다준 매 끼 양만이라도 다 먹어주면 좋겠다. 


먹는 시간도 내버려 두면 아마 1시간은 기본이고 2시간까지도 갈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어떤 진수성찬도 차갑게 식어 가장 맛없는 상태가 된다. 중간에 다시 데워주는 것도 항상 벌어지는 일. 이런 시간이 매 끼 반복되면서 식사시간에는 언제나 긴장감이 돈다. 먹기 싫다면 언제든 일어서서 내려갈 수 있지만 무슨 고집인지 끝까지 먹는다고 할 때가 많다.


그나마 몸이 크면서 먹는 양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빼빼 마른 아들은 보면 우리 부부는 한숨을 쉰다. 아이를 보며 힘들어하다가도 내 어릴 적엔 더 심했던 적을 생각하면 아차 싶다.(아들보다 못 먹는 것도 많고 양도 적었었다) 어머니는 나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한숨을 쉬셨을까. 이렇게 따로 '너 닮은 자식 낳아서 길러봐라'라는 주문 없이도 고대로 나온 아들을 보며 매 끼 생각에 잠긴다.


역시 군대 다녀올 때까진 참아야 하나...(군대 이후 급격히 변한 내 식습관처럼)






다른 하나는 한글 놀이 시간.


아들은 이곳 호주에 와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사람, 바로 나다. 아들은 이제 읽고 쓰고 할 수 있다.(듣고 말하기는 원래 원어민)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잘 익히고 사용해서 놀란다. 


문제는 아무리 한글 '놀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다른 진짜 '놀이'보다는 재미없다는 사실이다. 목표는 일주일에 3~4번 30분씩이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양과 스케줄이다.(컨디션 좋으면 순식간에 해치운다) 그러나 자리에 앉기까지 어렵고, 앉아서도 집중력이 흩어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처음에는 딴짓하거나 집중을 못하고 있으면 그때그때 이야기를 했었는데 너무 잔소리 같아서 그대로 둔다. 중간중간 시간을 알려주면서 빨리하고 신나게 놀자고 독려한다.


쉽지 않다. 하면 하는데 그 하기가 참 쉽지 않다.(이건 나 말고 다른 사람 쏙 닮음) 시간이 점점 늘어지면 아들은 힘이 빠지고 아빠는 인내심이 빠진다. 너무 오래 시간이 흐르면 오늘은 그만 하자고 내가 항복을 먼저 하기 일쑤다. 그러면 또 끝까지 하겠다고 한다.(살려줘 ㅜㅜ) 이런 출처 없는 고집은 또 나를 닮았다. 하루 걸러 하루 하는 식인데 안 하는 날은 나도 아들도 행복하다.(실제로 아들은 아침부터 신난다 - '와~ 한글 놀이 안 하는 날이다~')


이렇게 힘겹게 지나온 시간들도 아들이 한글 책을 읽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게 포장된다.






이런 험악한 시간 없이 하루가 흘러가길 바란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밥과 한글) 아들 머리가 점점 커지면서 논리와 의지가 강해져 겪는 순간들이다. 오늘도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다른 시간들처럼 웃음과 행복으로 바꿀 수 있을지.


아들, 같이 잘해보자. 우린 어쩔 수 없이 한 배를 탔어. 지금 내리면 좀 곤란하거든. 저기까지만 가보자. (어딘지 나도 잘 모름~ 가다 보면 나오겠지)


이대로 축구 선수로?!




진화하는 아들의 말들



1.

아주 잠깐 슈퍼에 들릴 일이 있었다. 물건 하나만 빨리 사 오면 되는 일이라서 아들을 데리고 다녀오기 번거로울 정도였다.


[나] '아들~ 아빠 순식간에 갔다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릴래?'

[아들] 어이없어하며 카시트에 붙은 경고 문구를 두드렸다. <어린이를 차에 혼자 두지 마시오!>

[나] '으악!! 아빠가 잘못했다. ㅜㅜ'



2.

놀이터에서 아들이 높은 곳까지 휙휙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파랑이 말했다.


[파랑] '아들~ 보고 있으니까 엄마 마음이 쫄깃쫄깃해.'

[아들] '쫄깃쫄깃? 찹쌀떡처럼?'


대단한 표현력! 배우고 싶어요!



3.

아들이 반으로 자른 과자를 보며 물었다.


[아들] '아빠 이거 어떤 게 더 큰 거야?

[나] '거의 비슷해~'

[아들] '음... <거의> 라면 어쨌든 둘 중 어느 게 더 많다는 거잖아. 알려줘!'


앗, 이런 건 내가 하는 방식의 말인데... 녀석에게 내 향기가 난다. 걱정이다.






지난 토요일엔 날이 많이 좋아서 온 가족이 넓은 공원으로 출동했다. 축구, 자전거, 킥보드 모두 챙겨가서 즐겼다. 체력이 부쩍 좋아진 아들 덕에 엄마 아빠가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운동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커다란 파란 체육복을 입혔는데 제법 잘 어울렸다. 커다란 옷 덕분인지 아들이 괜히 부쩍 크게 느껴진 하루였다.


크고 있구나 아들. 크는 아쉬움보다 더 많이 지금을 사랑하도록 할게!


돌고 뛰고 날고
아들과 파랑의 대결






나를 책으로 만들었다

나만의 첫 이야기

진짜 책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들과 어울리는 아이를 보는 시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