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Oct 18. 2021

이렇게 아픈 날엔

호주 코로나 백신 접종 완료

이렇게 오래도록 가라앉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무얼 해도 힘이 나지 않았고 어지러워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어지간하면 먹지 않는 진통제를 틈이 생길까 효력이 없어지기 무섭게 챙겨 먹었다. 안 아프려고 맞은 주사가 이러다 생사람을 잡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나아지겠지 한 것이 삼일, 다시 일주일, 그리고 열흘이 지났다. 이제야 내 안에 들어온 외부의 물질과의 타협이 끝난 것인지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은 타의로 반은 자의로 선택한 이 여정을 기록해둔다.






백신 접종 희망 등록


언제 맞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맞을 거라는 희망도 점점 옅어졌다. 옆에 있는 아내가 접종을 맞기로 결정했다. 그때 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겠구나 싶었다. 퀸즐랜드 주정부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내 정보를 입력하고 코로나 백신을 맞겠다고 알렸다. 이게 올해 중순의 일이다. 그리고 연락을 기다렸다.



* 퀸즐랜드 코로나 백신 접종 희망 등록 사이트 : https://www.vaccinebookings.health.qld.gov.au/registerforvaccination


* 등록 완료 안내 이메일





접종 장소 및 일정 예약


얼마가 지났을까. 희망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예약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정보는 간단했고 충분했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장 빠른 날짜로 골랐다. 내가 고른 곳에서 그날 빠짐없이 보자는 확인을 받고 다시 기다렸다.



*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 시스템 안내 메일 / 코로나 백신 1차 접종 예약 확인 메일





1차 백신 접종 - 화이자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우선 가기 전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알림이 왔다. 시시각각으로 내가 언제 어디서 주사를 맞기로 약속했다며 혹시라도 까먹을세라 알려주었다. 호주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서 병원에 간 날이었다. 모두 친절했고 마스크를 쓴 탓에 조금 더 알아듣기 어려웠다. 왼팔과 오른팔을 고르라는 질문부터 각종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대부분 나와 관계없는 과거의 행적을 물었고 대부분 아니라고 답했다. 그중에 딱 한 가지 질문, '오늘 백신 맞는 것에 동의하니?'가 숨어 있었다. 다행히 놓치지 않았고 영어 듣기 평가를 무사히 마쳤다. 고통이라고 할 것도 없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내 어깨에 붙은 반창고로 일련의 과정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내 가슴에 붙여준 시간이 적힌 스티커로 내 탈출 가능 시간을 알 수 있었다. 호주답게 사탕과 물이 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설마 별일이 있겠어라는 생각을 이리저리 뒤집어보다가 시간이 끝났다. 운명은 가볍게 나를 스쳐갔고 곧 다음 안내 메시지를 자동으로 받았다. 한 달 뒤. 정확히 한 달 뒤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 코로나 백신 2차 접종 예약 안내





2차 백신 접종 - 화이자


1차를 맞고 나서는 별일이 없었다. 1주일 정도 과한 활동을 조심했을 뿐 특별히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안일한 생각으로 마지막 2차 접종을 맞이했다. 병원과 간호사, 그리고 주사와 사탕까지 1차와 판박이처럼 똑같았다. 2차는 맞고 나서 좀 더 아플 거라는 경고만 빼고. 맞고 난 다음날부터 아팠다.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계속 아팠다. 막 온몸이 아파 죽겠는 느낌이라기보다는 힘이 쭉쭉 빠지는 무기력함이라고 할까. 몸이 좋지 않으니 머리를 쓰는 행위는 어려웠다. 며칠 글쓰기를 쉬기도 했다. 안 써서 아프면 쓰기도 했지만 쓰고 나면 다시 아팠다. 그렇게 2주를 보냈다. 고통은 끝났고 이렇게 그 기록을 남길 정도로 멀쩡해졌다.



* 수기로 기록된 코로나 백신 접종 정보





백신 접종 완료 증빙


혼자서 아프고 말았던 사실을 일일이 떠벌리고 다닐 수 없었다. 보여주는 순간 '너 다 맞았어'라고 알아줄 그런 게 필요했다. 병원에서 안내해 준 기억을 꼼꼼하게 살펴서 나의 기록을 증명했다. 다행히 등록 당시 입력된 정보와 일치만 시키면 어렵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곳에서 코로나 백신을 모두 완료했다. 머지않은 시일에 3차, 그러니까 부스터를 맞는 것도 필수가 될 거라는 간호사의 말이 떠오른다. 이 시기와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떻게 나아가는 걸까 싶은 오랜만의 딴생각이 찾아왔다. 몸에 들어왔다가 가라앉은 아픔이 사라지면서 닿기 어려운 이야기는 곧 사그라들었다. 그저 오늘의 건강에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행했다는 사실에 자족할 뿐이다. 삶은 늘 그렇듯 다시 이어진다.



* 호주 코로나 백신 증빙 사이트 : https://www.servicesaustralia.gov.au/ihs


* 백신 접종 완료 증빙 문서 / 애플 월렛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커다란 섬에서 살려면 꼭 필요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