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예상을 넘는 속도
어느 날부터 아들이 자기 침대에서 혼자 자기 시작했다. 여전히 같은 침실에서 우리 침대와 붙어있긴 하지만. 어떤 계기인 줄 모르겠으나 본인 베개 3개와 인형 7종을 취향 껏 배치한 뒤 잠에 든다. 아들의 잠 친구들이 거치적거려서 우리와 함께 잘 때는 좀 줄여달라고 구박 아닌 구박을 받았던 게 이유였나 싶다. 어쨌든 이렇게 수면 독립이 이루어지면서 각방을 쓰게 되는 걸까 하며 기대를 품고 있다. 어느 날은 나와 등교를 함께 하다가 같은 반 친구를 교문에서 만났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나와 손을 잡고 교실 문까지 갔었다. 그날은 갑자기 '나 OO 친구랑 같이 갈 수 있어.'라고 했다. 혼자 할 수 있고 하겠다는 일은 무조건 지지하기에 얼른 마음이 바뀔까 손을 놓아주었다. 친구와 붙어서 뭐라 뭐라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며 그 하루를 보냈다. 낯선 환경에 취약한 아들이 조금씩 단단해져 간다. 늘 하던 곳이 아닌 새로운 장소에서 축구 수업을 받으러 갔다. 예전 같으면 눈물을 글썽이며 내 다리에 붙어서 어색해서 못하겠다고 못해도 10분은 붙어있는 게 아들이다. 이번엔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심호흡을 하더니 한 번에 번쩍 운동장으로 나섰다. 씩씩해진 아들이 문득 어색해지면서도 뿌듯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언제나 아이는 부모의 예상을 넘는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마음이 단단해지면서 자아가 강해진다. 솔직히 예전엔 어떤 식으로든 정신없게 홀려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유도할 수 있었다. 이젠 그 방법이 완전히 막혔다. 이 분은 자신의 생각이 확실하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때로는 휩쓸려서 힘들어한다. 이때 가지는 감정의 노출과 조절을 옆에 있는 우리가 잘 받아주어야 하는 데 처음이라 어렵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크게 울거나 떼를 쓰거나 짜증을 내는 법이 없었다. 손이 덜 가는 아이였고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쉽게 지내왔다. 이런 부드러운 경험이 요즘에 맞닥뜨리는 강한 표현의 아들을 마주할 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 그랬는데 왜 이러지?'라는 생각으로 대하다 보니 지금의 아들을 보기보다는 과거와 비교를 먼저 한다. 우리 부부도 연습이 덜 되어 있다 보니 조금만 억지를 부려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때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인지하고 있다. 부모이자 어른인 우리가 조금씩 더 참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노력을 들이려고 한다. 육아의 길은 언제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새로움 투성이다.
조금 큰 것 같지만 여전히 아기 같은 면이 많다. 여행에 함께 다녀온 아끼는 인형을 세탁기에 빨았더니 눈이 희미해졌다. 어찌나 서럽게 울고 슬퍼하든지. 이제 인형은 꼭 손빨래다. 아들은 바닥을 보며 걷는다. 혹시라도 반짝이는 돌, 이지만 보물이라고 부르는 것을 찾기 위해서다. 그렇게 쌓인 금, 은, 보석이 집에 이미 한 가득이다. 같이 다닐 땐 함께 찾아야 하고 찾고 나서는 그것의 감정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 잠들기 직전엔 꿈에서 만날 장소를 정해준다. 최근엔 온갖 과자와 사탕, 달콤한 것들이 모여있는 환상의 가게를 묘사했다. 꿀물이 흐르는 연못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왔었냐고 묻는다. 무엇을 보았냐고 어땠냐고 내 반응을 궁금해한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어버버버 대답하기 어려워 하지만 최선을 다해 본다.
아기, 아이, 소년 여러 가지가 섞여서 아들이 크고 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 다른 모습이 튀어나온다. 옆에서 보고 배우며 따라가려고 애를 써보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다. 아들은 그런 우리 모습이 어때 보일까? 한 없이 자기편인 것 같다가도 이따금 엄하게 구는 모습이 헷갈리진 않을까? 똑같은 일도 우리의 기분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게 혼란스럽진 않을까? 함께 지내는 방법은 하나다. 더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다. 그러려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오해만 쌓인다. 오늘도 먼저 훌쩍 걸어가는 아들에게 뒤에서 말을 걸며 따라가야겠다. 좀 귀찮아하더라도 같이 가고 싶다고 찰싹 붙어가면서.
가족들의 챙겨줌으로 멋진 생일 선물도 받고 기념 여행도 다녀왔다. 어쩌다 이런 가족들을 만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사나 싶다. 내버려 두면 자기만 알고 살아갈 내가 이들 덕분에 같이 지내는 법을 배운다.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의 배려로 성도님들께 책에 서명을 해서 나눠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자리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지만 귀하게 여겨주시는 마음이 감사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마음에 넣고 사는 법을 늦게나마 배우며 산다. 아주 오랜만에 더워진 날씨에 바다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쨍쨍한 태양 아래 맛나게 먹고 신나게 뛰어놀았다. 생생한 이 시간들이 내가 살아있음을 알게 해 준다. 오늘을 당연해하지 않고 감사히 지낼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며.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