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따뜻해지는 풍요로운 소비습관, 기부와 후원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만화 ‘키다리 아저씨’와 소설 ‘위대한 유산’의 공통점은?
힌트는 사정이 어려운 아이가 등장하다는 점이다.
정답은 그 아이가 누군가의 기부와 후원으로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내게도 누군가를 돕고, 기부/후원을 하는 것은 딱 이런 이야기 속의 내용 정도로 나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어릴 적 가끔 하는 불우이웃 돕기가 전부였다. 사회생활하면서 내 돈이 생기고 나서도 남을 돕는 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내 한 몸 챙기기도 바쁘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와이프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직장생활과 거의 동시에 연애를 시작하게 되어 우리 둘에겐 월급이 있었다. 데이트를 하는데 부족함 없이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모두 누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강남인가 종로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길거리에 나와있던 한 자선단체의 부스에 와이프의 요청으로 함께 설명을 듣게 되었고 그게 내 기부, 후원 생활의 시작이 되었다.
연애와 결혼이 지속되어 10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기부/후원은 계속되었다. 월급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내 마음이 조금씩 열리면서 기부/후원하는 단체와 금액도 조금씩 늘어났다. 세이브 더 칠드런, 초록우산 재단, 유니세프, 유엔 난민기구, 국경 없는 이사회 등등. 가끔 받아보는 소식지와 도움을 받는 아이들의 사진/편지 등을 보는 행복감도 있었고 매년 하는 연말정산 때 확인하는 기부 내역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기부를 한 만큼 돌려받는 기쁨도 물론 있었다. 직장생활 10년 동안 환급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정확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그냥 내 마음대로 기부/후원을 해서라고 믿고 있다.
그러다가 작년에 와이프와 내가 휴직을 결정하면서 우리의 기부/후원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우리의 월급이 사라졌다. 결국 우리의 기부/후원 활동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수중에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 알았다. 돈으로 돕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돕는 거구나. 깨달으면서도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10년간의 기부/후원 활동을 모두 정리하고 호주로 왔다. 괜한 죄책감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감정으로 언젠지 모르지만 꼭 다시 시작하겠다며 다짐을 하면서...
호주에서 지낸 지 두어 달 되었을 무렵이었다. 교회에서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컴패션’이라는 단체에서 다른 나라 어려운 아이들을 1:1 결연 방식으로 기부/후원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컴패션’이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 전쟁고아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작된 단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항상 가슴속에서 불편했던 마음이 다시 찾아왔다. ‘정말 내가 누구를 도울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인가? 이 모든 게 편한 핑계일 뿐인 것인가?’. 그날 돌아와서 와이프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앞으로 우리 상황은 계속 변하고 불안정할 텐데 계속 기부와 후원을 미루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다시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고. 무슨 이야기인지 잘 알고, 먼저 이야기 꺼내 줘서 고맙다고 했다. (현재 우리 집 재정부 장관은 나다)
그렇게 호주에서 우리의 기부/후원은 다시 시작되었다. 첫 결연 친구는 탄자니아에 있는 아들보다 1살 어린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스리랑카에 있는 똑같이 1살 어린 남자아이와 아들 이름으로 추가 결연을 하였다. 가끔씩 아들과 함께 결연 아이들에게 편지와 사진을 보내며, 그리고 결연 아이들의 편지와 사진을 받아보며 우리 가족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멀리 있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내게 기부/후원은 그저 처음에는 돈을 쓰는 대상 중 하나로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소비활동과는 많이 달랐다. 배가 부르고 몸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착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기분이 좋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마음이 건강해지고 좋아지는 소비라면 한 번쯤 구매를 고려해봐도 좋지 않을까?
사실 기부/후원은 알아서 스스로 하는 것이다. 내가 한다고 뽐내고 자랑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가 하지 않는다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기부/후원을 해나가다 보면 조금 욕심과 걱정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주변에 알려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했으면 하는 욕심과 혹시 나처럼 안 해보고 생각지도 않아서 시작을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고민을 시작해주었으면 한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큰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