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친, 전여친, 평생 친구, 인생친구
살면서 최근 십 년 동안 가장 많이 붙어 있는 친구가 있다. 그것도 이성인 ‘여사친’이다.
주변의 학창 시절부터의 남자 친구들은 그 녀석들이 어떻게 생겼든지 성격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같이 어울려서 보냈던 추억으로 평생 함께 지낸다.
그런데 이 ‘여사친’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취향에, 그리고 그녀의 취향에 서로 부합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서로를 당겨서 붙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나의 어떤 부분이 어필이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고 내가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녀는 충분히 내 취향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대충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방심하는 순간 예상 밖의 모습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와 나는 공통점이 있어 공감대가 적지 않다.
우선 우리는 나이가 같다. (생일은 내가 느리다)
똑같은 시기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기업그룹에서 유사한 산업 영역의 회사에서 일했다.
그리고 다른 점도 적지 않다.
나는 먹는 것을 쫓지 않지만 그녀는 쫓는 편이다.
나는 얇고 길게 집중하지만, 그녀는 굵고 짧게 집중한다.
나는 잠이 많지 않지만, 그녀는 잠이 많다.
별로 재미없는 같은 점, 다른 점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오늘 내가 ‘그녀’에 대해 뭔가 쓰고 싶었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그녀’에 대해 남겨 놓고 싶어서였다.
1.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뭐든 있어 보임’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주변에 그런 사람이 꼭 있지 않은가? 같은 것을 해도 남들보다 더 괜찮게 하는 사람. 디테일이 뛰어나거나, 애초에 아이디어가 남다르거나... 그 이유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알면 나도 있어 보이게 할 수 있을 테니) 그녀가 작든, 크든 어떤 일을 하면 정말 있어 보인다.
그냥 한 두 번의 사례나, 성공이면 가끔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할 텐데 그녀를 만나고 나서 지금까지 항상 그랬다.
음... 좀 쉽고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면 정말 싼 옷이나 신발, 가방 등 패션 아이템을 그녀가 하면 이게 싸구려라고 파악하기가 힘들다. 물론 이미 그녀의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 골라진 아이템이겠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이상으로 보인다.
뭐 이건 순전히 내 시선, 기억에 의해서지만 정말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있어 보임’이 필요한 일은 항상 그녀가 마무리한다.
2. 다음은 비슷한 맥락일 수 있는데, ‘(자기가 원한) 최고를 추구하는 자세’이다.
이건 또 무슨 소리냐 하면 극과 극인 나를 예로 들면 되겠다.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나는 대충 결정한다. (그러나 이 대세는 내 기준이다) 어떤 물건이 최소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일단 만족하고 추가적인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서 더 낫게끔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라고 뭔가 열심히 이야기 하지만 귀찮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기준에 맞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그게 몇 시간이든, 며칠이든 상관없이.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옳다. 디자인, 색상, 기능, 가격 등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 이런 자세가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들을 보다 낫게 채워왔다. 앞으로 나도 변하지 않겠지만 그녀도 변하지 않길 바란다.
3. 내가 그녀를 표현하는 용어가 있다. ‘잔머리 대마왕(=아이디어 뱅크)’이다.
이것 역시 나는 대충 정해졌다 싶으면 빨리 하고 끝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순간적인 또는 장기적인 머리 굴림으로 온갖 경우의 수와 방법을 고려한다. 그리고는 결과적으로 최선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게 대부분 맞다. (이러고 나니 나는 너무 대충 사는 것 같은데, 그녀가 보지 못한 부분을 내가 가끔 보기도 한다, 정말이다)
그녀가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상태일 때, 좋은 방법을 요청하면 합당한 결과물이 돌아온다.
4. 그리고 이 친구는 정말 ‘하면 하는 친구’다.
그런데 정말 그 ‘하면’이 정말 어렵다. 그렇게 만드는 것도 어렵고, 그렇게 본인이 마음먹는 것도 어렵다. 그 집중하는 순간도 정말 순간일 만큼 길지 않다. 그래도 하기 시작하면 해내고 만다. 약간 ‘천재과’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안 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나 혼자 안달이 나서 답답할 때도 있다. 그녀를 진득이 믿고 있으면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그게 참 마냥 평온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 위의 다른 모든 특징과 매력은 부수적인 요소이다. 그런 사람은 주변에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내가 그녀와 십 년간 친구였고 앞으로도 친구일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여사친’을 만날 때 마음이 착해서 만나기 시작하겠는가? 나도 물론 그녀의 외모가 착해서 사귀게 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만나면서,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하면서 꾸준히 놀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녀는 심성이 정말 착한 사람이다. 가까이 지내는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배려하고 신경을 많이 쓴다. 누군가를 챙기고 도움을 주는 것이 몸에 배어있다. 이렇지 못한 나는 가끔 어색하기도, 놀라기도 하지만 그래도 옆에서 많이 보고 배우고 있다. 그녀 덕분에 조금씩 변화한 것도 작지만 분명히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녀가 이런 사람이라서 앞으로도 행복하게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인연으로 우리가 이렇게 만나 함께하게 되었는지 아직도 신기하다.
길고 긴 인생이랑 여행의 동반자로서 전에도 함께 잘 헤쳐 나왔듯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웃고 울며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