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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r 28. 2022

빨간 편지 줄까?

과속 벌금 딱지

요즘 같은 시대에 아날로그 종이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한국이 아닌 이곳 호주에 와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초기 정착 시에만 몇몇 중요한 우편물, 예를 들어 운전면허증을 받았을 뿐이다. 스팸 광고 전단지를 제외하면 우편함에 꽂히는 의미 있는 편지는 거의 없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주 가끔 낭중지추, 군계일학, 백미처럼 독보적으로 빼어나게 우리의 마음을 뜯어가는 녀석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빨간 편지. 얼핏 봉투만 훑어도 느낌이 온다. 찜찜하고 찐득한 며칠 떡진 머리 같은 기분이다. 펼치는 순간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음을 후벼 판다. 그럼에도 혹시 놓치는 바가 있을까 봐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를 정성 들여 정독하게 된다. 좋아하는 문구를 마음에 새기려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행여나 까먹을지 몰라 온몸에 저장하려는 듯이. 언젠가 날아 들어온 이 편지를 펼칠 때도 그랬다.


이번 강렬한 붉은색 편지를 꺼내 놓기에 앞서 먼저 경험했던 썰을 풀어본다. 긴급한 메시지를 담은 빨간 편지는 마음이 급해서 받을 사람에게 직접 전해지기도 했다. 해리포터에서 부엉이가 편지를 전해 줄 학생을 열심히 찾아서 직접 내려놓는 것처럼. 그렇게 두 번이나 소중한 편지를 바로 전달받은 사람(?)은 우리 차, 빨강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 때문에 더 자주 받는 건가 싶다)


최초의 빨간 편지는 파랑의 학교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채로, 두 번째는 1월 1일 새해 첫날 공원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채로. 두 번 모두 ‘빨강이’ 앞 유리창에 ‘빨간 편지’가 떨어져 나갈 새라 아주 꼭꼭 붙어있었다. 둘 다 공휴일 주차 위반 덕이었다. 어쩐지 쉬는 날은 정해진 시간보다 더 주차해도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사이좋게 파랑이 한번, 내가 한번 원인을 제공해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동등한 위치를 와장창 비틀어버리는 세 번째 새빨간 편지가 날아들기 전까진.


편지를 읽는 내내 두려웠다. 곳곳에 사용된 빨간색이 덜덜 떨게 만들었다. 다시 떠올리는 지금도 두근두근거린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야, 이놈아! 이렇게 과속했으니 벌금을 꼭 내렴! 제 때 안내면 추가 벌금과 강력한 조치가 있을 거야!’


70km/h 도로를 79km/h로 달려서 177불(약 15만 원)을 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은 더 심한 과속 위반(+13km/h)의 경우 받는 운전면허 벌점은 피한 점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납부했다. 납부 방식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가능하다. 핑계는 없다.


요즘엔 뒤에서 욕을 하든 빵빵거리든 꼭 규정속도로 달린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 아니 아니 안전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빨간 편지는 받고 싶지 않다.


(+이어지는 슬픈 이야기) 이후에 한번 더 같은 색의 편지를 받았다. 무너진 균형을 맞춰주려는 파랑의 애씀에 감사를 표한다.



옛날 이야기 속에 등장할 법한 무서운 빨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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